기적적으로 심장 이식수술 후 재활, 생명나눔 전도사 활동
아버지도 장기기증 등록, 라디오 하며 ‘희망을 주는 DJ’ 꿈꿔
“기증 유가족이 위로 받고 공감 받고 보상 받으면 좋겠다”
오수진 전 기상캐스터가 24일 오후 서울 용산구 헤럴드스퀘어에서 헤럴드경제와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임세준 기자 |
[헤럴드경제 =김용재 기자] “일반인 심장의 18% 밖에 기능을 못 합니다.”
오수진 전 KBS 기상캐스터는 1년 전 확장성 심근병증 진단을 받고, 약물치료를 받고 있었다.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지만, 평소 건강 관리에도 진심이었던 터라 꾸준히 운동하고 치료하면 괜찮을 거로 생각했다. 희귀병이라고 불렸음에도 오히려 아무런 통증이 없었다. 진단을 받고도 ‘날씨 전하러 가야 하는데’ 하는 생각만 가득했다. 치료를 받다 보니 몸도 좋아지고 있다고 느꼈다.
여느 날과 다를 것 없는 일상에서 갑자기 다리도 많이 붇고 숨이 많이 차서 호흡이 가빠짐을 느꼈다. 병원을 찾았더니 심장 기능이 일반인의 20%도 안된다는 말을 들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오 전 기상캐스터는 ‘긍정 파워’로 버텨낼 수 있을 것이라 여겼다. ‘의사 말 잘 듣고, 건강 관리하면 되겠지’ 생각했다. 얼른 직장으로 복귀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그런데 병원에서 링거를 맞아도 열이 떨어지지 않았다. 몸에 연결되는 장치는 늘어만 갔다. 몸은 더 이상 말을 듣지 않았고, 신장 투석을 했다. 폐에 물이 차고 기침은 떨어지지 않았다. 그렇게 한없이 긍정적이던 오 전 기상캐스터의 마음에 부정적인 생각이 들어섰다. ‘병원을 못 나갈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던 그 순간부터 건강은 급격히 악화됐다. 의식은 자꾸 사라져 갔고, 정신의 불꽃은 꺼질듯 위태로웠다.
오수진 전 기상캐스터가 24일 오후 서울 용산구 헤럴드스퀘어에서 헤럴드경제와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임세준 기자 |
한숨 푹 자고 일어났다. 아버지가 환하게 웃으며 들어오시는 모습이 다시 타오른 불꽃의 첫 장면이었다. 아버지는 “너 심장이식 수술 받았다”라고 말했다. ‘이게 가능한 일인가’ 어안이 벙벙했다. 의심부터 들었다. ‘이게 정말 내 몸이 맞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수술한 자국도 확인하지 못했다. 일주일이 지나고 전보다 숨 쉬는 것이 나아졌다. 깜빡이던 의식은 점점 뚜렷해졌다.
한 달이 지나자 ‘두 번째 삶의 준비’를 시작할 수 있었다. 퇴원 날짜가 잡히고나서야 벌어진 일을 실감했다. 주변에서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지만, 오 전 기상캐스터의 마음은 부채의식으로 가득했다.
“누군가는 가족을 잃었는데, 나는 새롭게 사는 것이 맞는가 하는 생각이 끊이질 않았어요.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는 고민이 길어지던 시기였어요. 얼른 다시 일상으로 씩씩하게 복귀해서 기증자에게, 기증자 가족에게 건강해진 모습을 보여주겠다는 생각만 가득했어요.”
3.4%. 지난해 기준 전 국민 가운데 장기기증 희망 등록자 수치다. 인구 100만명당 뇌사 장기기증인 수치는 7.8명으로 OECD 국가 중 하위권으로 꼽힌다. 올해는 상황이 더 심각하다. 올해 들어 상반기까지 국내 장기기증 희망 등록자는 3만7820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4만65명) 보다 2200여명 줄어 5.6% 감소했다. 상반기 실제 뇌사 장기기증은 226명, 생존 시 신장 기증인은 474명에 그쳤다.
오수진 전 기상캐스터가 24일 오후 서울 용산구 헤럴드스퀘어에서 헤럴드경제와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임세준 기자 |
새로운 삶의 시작은 순탄치 않았다. 면역력을 일정 수준 이하로 낮춰야 살 수 있었다. 이식 수술이 잘됐음에도, 이식받은 장기를 원래 있던 면역 세포들이 공격하기 때문에 평생 면역억제제를 복용해야 한다. 감염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병원에서는 최소 1년은 쉬라고 조언했지만, 오 전 기상캐스터는 병원 밖으로 나왔다.
“심장이식 수혜자라는 사실을 인지한 순간부터 새롭게 선물처럼 빌려 받은 이 삶을 소중하게 쓰고 싶다는 마음으로 가득했어요. 기증받은 사실을 처음에는 알리는 것도 어려웠어요. 근데 그렇다고 마음 가득히 부채감만 안고 살 수는 없다고 생각했어요. 고민 끝에 이력을 공개하고 내가 받은 선물 같은 이 삶을 다시 쓰고 싶어졌어요.”
심장을 선물 받고 그녀는 생명 나눔 전도사로 활동하고 있다. 한국장기조직기증원 홍보대사를 비롯해 봉사활동, 기부, 무료 강연 등 활발한 활동을 이어갔다. 장기조직 기증원 홍보대사 활동을 하며 기증자 가족들을 많이 만났다. 그분들은 오 전 기상캐스터를 자기 자식처럼 아껴준다. 그렇게 존재 자체가 ‘희망’이 되었다.
이식 수혜자가 공개적으로 자신의 병력을 드러내는 경우는 많지 않다. 그럼에도 오 전 기상캐스터는 장기기증이라는 숭고한 일의 가치를 위해 발 벗고 나섰다. 유가족에 대한 예우가 좋아져야 등록한 사람들도 세상을 떠나는 사람들도, 가족들도 더 마음이 놓이지 않을까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낸 슬픔을 해소해 줄 방법은 전혀 없겠지만, 유가족들이 위로 받고 공감 받고 (어떠한 형태라도) 보상으로 많은 걸 받았으면 좋겠어요.”
오수진 전 기상캐스터가 24일 오후 서울 용산구 헤럴드스퀘어에서 헤럴드경제와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임세준 기자 |
반면 가족 입장에서는 아직도 방송 일을 하는 오 전 기상캐스터를 걱정한다. 이식 수술을 받은지 6년이 지났음에도 부모님은 수술을 받은 병원인 세브란스 병원 인근도 가지 못한다. 코로나19 등 전염병이 창궐할 때도 방송 생활을 이어가는 딸에 대한 걱정은 여전했다.
생명 나눔 전도사로 활동하고 있는 딸의 모습을 지켜보던 오 전 기상캐스터의 아버지는 결국 장기조직기증 희망 등록을 결심했다. 유교 문화의 영향으로 현재 윗세대의 경우 장기기증에 대해 부정적이다. 당연히 기증률도 젊은 세대에 비해 매우 낮다.
“아버지는 제가 아팠다가 수술받고 일어나는 과정을 다 보신거죠. 하나밖에 없는 외동딸이 빛을 잃어가는 과정을 다 보셨는데, 기적같이 살아난 걸 보셨잖아요. 장기기증을 통해 한 생명이 다시 일어나는 과정 자체가 숭고하고 의미 있다고 생각하게 되셨어요.”
한국장기조직기증원에 따르면 1년에 약 3000명이 장기이식자를 기다리다가 숨을 거둔다. 하루에 7~8명 꼴인 셈이다. 뇌사 장기기증자는 1년에 약 500명꼴인데, 장기이식 대기자는 4만명을 넘었다.
오수진 전 기상캐스터가 24일 오후 서울 용산구 헤럴드스퀘어에서 헤럴드경제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임세준 기자 |
오 전 기상캐스터는 지난해에는 13년간 몸담았던 KBS를 나와 cpbc 가톨릭평화방송 라디오 프로그램 ‘행복을 여는 아침’ DJ로 변신했다. 라디오 진행자는 오 전 기상캐스터의 오랜 꿈 중 하나였다.
“죽음에 관한 태도도 달라졌어요. 내가 살아있는게 어쩌면 온 우주가 날 돕는 것은 아닐까, 엄청난 행운으로 이렇게 살아있는 것은 아닌가 싶어요. 삶에 집중해서 살고 있달까요. 다시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아플지 모르지만, 그때 후회하지 않으려면 촘촘하고 알차게 살아야겠다라는 생각으로 가득해요. 삶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어요.”
오 전 기상캐스터는 청취자들에게 ‘희망을 주는 DJ’로 기억되는 것이 목표다. 유독 진행하는 라디오 프로그램 사연에는 병상에서 힘들어하는 환자들의 사연이 많다고 한다. 자신과 비슷한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더 열심히, 건강하게 활동해야 겠다는 다짐은 더 강해진다고 한다.
앞으로 라디오 활동과 더불어 장기기증을 향한 인식개선과 유가족에 대한 예우 개선을 위해 더 노력하는 것이 그녀의 목표다. 그녀는 두 번째 삶을 대하는 태도로 김영민 교수의 단문집 ‘가벼운 고백’에 나온 글귀를 꼽았다.
“희망이 있어서 희망을 갖는 게 아니다. 희망을 가진 사람이 되고 싶어서 희망을 갖는다. 절망한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아서 절망하지 않는다. 누구도 희망을 뺏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