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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재홍 칼럼] CIA, 모사드...국가정보기관의 요건

미국 연방검찰이 한국계 미국 시민권자인 수미 테리 미국외교협회 선임연구원을 외국대리인등록법 위반 혐의로 기소했다. 검찰 공소장은 그가 한국 국가정보원(국정원)의 지시에 따라 광범위한 활동을 했다고 적시했다. 수미 테리의 CIA 경력과 전문성 등을 볼 때 미국 정보기관이 주시하리라는 것은 상식에 속한다. 국정원이 전신인 중앙정보부(중정)의 과거 행태를 지금도 답습하고 있는 것인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1976년 불거진 일명 박동선 사건이라 불리는 코리아게이트를 연상시키는 사건이다. 중정은 당시 유신독재 체제에 대한 미국 조야(朝野·행정부와 언론, 대학 등 시민사회 전반)의 비판을 누그러뜨리기 위해 전방위적인 로비에 나섰다. 당시 미국 내 반한 감정이란 사실 ‘반박정희’라고 해야 맞는 표현이다. 미 행정부는 박정희 정부가 중정을 내세워 정계와 학계, 그리고 언론계에 이르기까지 단순한 로비가 아니라 불법적인 뇌물 공세로 ‘미국의 여론을 매수한다’고 보았다. 의회에서는 한미관계 조사소위의 청문회가 벌어졌다. 청문회에는 코리아게이트의 중심인물인 박동선 씨를 위시해서 미국에 망명 중이던 김형욱 전 중정 부장 등이 출석해 중정의 공작활동에 대해 증언했다. 이번 수미 테리 사건에서 국정원은 48년전 중정과 똑같은 방식의 선물과 식사 제공으로 정보수집 활동을 벌인 것이다.

세계의 정보기관이 조직되고 발전된 배경은 1·2차 세계대전과 동서진영 간 냉전이었다. 냉엄한 국제사회에서 국가 생존을 위한 수단이었다. 2차대전 중 처칠 영국 총리는 루즈벨트 미국 대통령에게 상호 협력을 효율화하기 위해 종합정보기관의 창설이 필수라고 강력히 권유했다. 루즈벨트는 미국의 첫 정보기관으로 전략지원국(OSS)을 창설했고 이것이 후에 CIA로 확대 개편된다. CIA는 초창기에 미국 동부 명문대 출신들을 대거 받아들였다. 이들이 미국 국익을 대변하는 핵심 계층으로 간주됐다. 최근 미국의 총정보예산은 국방예산의 10%를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의 사랑을 받는 정보기관으로 이스라엘의 모사드를 꼽을 수 있다. 1976년 7월 팔레스타인 게릴라들이 승객 300여명이 탄 에어 프랑스기를 공중납치해 우간다의 엔테베 공항으로 끌고 갔다. 그중 이스라엘 인질은 모두 104명. 모사드는 특공대를 태운 군용기 3대를 급파했다. 모사드 특공대는 현지 도착 30여분만에 게릴라들을 사살한 뒤 인질 전원을 무사히 구출해 군용기에 싣고 엔테베 공항을 떠났다. 세계가 경탄했으며 모사드는 세계 정보기관들 사이에 외경스런 존재가 됐다. 이스라엘 국민의 신뢰와 사랑을 한 몸에 받은 것은 당연했다. 지난달 31일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의 고위 지도자 이스마일 하니야가 이란 수도 테헤란의 안가에 머물다 암살당했다. 지난해 12월 하마스를 궤멸시키겠다고 공언한 이스라엘의 또 다른 정보기관 신베트 책임자 로넨 바르 국장의 육성 녹음에 관심이 간다.

적대적이고 비우호적인 세력들에 둘러싸인 이스라엘과 한국은 똑같은 처지다. 그러나 국가 생존과 국익 수호의 사명을 수행해야 할 정보기관은 너무도 다르다는 점이 개탄스럽다. 정치공작에 더 열심이었던 과거 중정의 체질은 제대로 환골탈태 됐는가, 국군정보사령부의 이른바 블랙요원 명단과 공작활동의 기밀 유출 사건을 보면서 과연 정보기관의 기본은 있는지 묻고 싶다.

김재홍 ESG실천국민연대 상임의장(전 서울디지털대 총장)

raw@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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