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훈 경남대 사회학과 교수 |
현대자동차그룹은 2022년 생산량 기준 세계 3위의 ‘자동차 메이커’로 등극했다. 지난해 현대차·기아는 26조원이 넘는 합산 영업이익을 올리면서 역대 최고 실적 기록을 갈아치웠다.
주요 판매 차종이 SUV(스포츠유틸리티차량)와 친환경차라는 점에서도, 현재와 미래의 관점에서 적절한 대응을 하고 있다고 판단할 수 있다. 최근 주춤하고 있는 미국 테슬라와 일본 토요타자동차의 상황을 보건데 현대차의 약진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현대차의 높은 수익률은 비단 친환경차 전환에 기인하는 것은 아니다. 자동화와 IT 기술에 기반을 둔 유연하고 빠르고, 품질까지 챙기는 현대차 특유의 ‘기민한 생산방식’을 빼놓을 수 없다.
21세기 내내 구축돼 온 현대차의 공정 혁신은 한 편에서는 제품 설계와 시제품 생산을 넘어 전 세계 공장에서 파일럿 양산까지 테스팅을 할 수 있는 엔지니어링 능력과 인프라가 있기에 가능했다.
다른 한 편으로 높은 수준의 모듈화를 진행해 표준화된 부품들을 미리 조립하고 완성차 공장에서는 최소한의 공정만 수행할 수 있게 만들어 놓은 촘촘한 ‘가치사슬망의 통합 관리’가 있다.
그리고 이 지점에서 부품 협력사와의 긴밀한 관계가 중요해진다. 최근 학계와 업계 일각에서 나오는 현대차에 대한 우려는 현대차 자체에 대한 우려보다는 가치사슬망 속 생태계에 위치한 부품협력사들의 경쟁력 문제와 구인난이라고 봐야 정확하다.
요컨대 기존 내연기관에 들어가던 기자재 부품을 공급하던 부품협력사들의 경쟁력이 떨어지고 있고, 2·3차 협력사들 이하로는 인력을 구하기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이는 부품협력사들의 ‘산업 전환’에 문제가 생긴 것이고, 다른 한 편에서는 노후화되고 위험한 인프라가 완전히 대체되지 않아 소위 ‘3D 업종’으로 분류되는 협력사에 대한 구직자들의 기피가 심화한 것이다.
기존 내연기관차 때부터 현대차에 부품을 납품하는 N차 협력사들은 현대차가 성장하던 1980년대와 1990년대에 설비 투자에 나선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그 이후 낮은 이익률과 비교적 크지 않은 규모 때문에 연구·개발(R&D) 투자가 부족했고 2010년대 화두였던 스마트공장 적용에서도 부진했다.
이에 구직자들은 2차 이후 협력사들을 사실상 ‘3D 공장’으로 분류하기 시작했고, 협력사들은 청년들을 고용하기 어려워지자 외국인 노동자들에 점차 더 많이 의존하게 됐다.
주요 완성차 공장이 RE100 등 탈탄소에 전력을 다하기 시작했지만, 기존 내연기관 시절부터 부품을 공급했던 업체 중 많은 경우는 스마트팩토리와 RE100가 구체적으로 공정에 어떻게 적용되며, 어떻게 달성해야 할지 자체에 대해 막연한 경우도 많다,
즉 자동차 산업 생태계 ‘소부장(소재·부품·장비)’의 핵심인 협력사들이 당면한 전환에 대한 이해, R&D 및 설비 투자, 신규 청년 채용에 있어서 난항에 봉착한 상황이라고 볼 수 있다. 국내 부품협력사 생태계의 경쟁력이 약화하면, 당장 제조업 일자리가 줄어든다는 문제점을 들 수도 있겠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지정학적 리스크가 경제에 반영되는 상황 속에서 현대차가 선택할 수 있는 부품 기자재 조달 옵션이 줄어든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런 상황 속에서 그래도 업계의 숨통을 틔우는 조치들이 진행되고 있다. 현대차·기아·협력업체가 고용노동부와 함께 지난 25일 ‘자동차산업 상생협약’을 체결한 것이 대표적이다.
이번 상생협약은 자동차산업의 이중구조를 개선해 노동시장을 개선하고 산업 생태계의 보존을 위해 추진됐다. 협약을 통해 현대차는 협력사 맞춤형 복지사업 추진, 청년들의 직무교육 지원, 산업전환을 위한 협력사 교육 및 컨설팅 확대, 노후 공정 개선 등을 위한 비용을 지원하는 것을 약속했다.
노동부는 원하청의 상생협약 성실 이행을 전제로 산업 생태계 속 지속가능하고 약자를 두텁게 보호하는 조치들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기 위한 행정과 재정 뒷받침도 진행한다.
물론 풀어야 할 자동차산업의 근본적인 숙제는 많다. 현대차의 경우 내‧외부 이해관계자와의 소통, 중소‧중견기업 협력사의 글로벌 경쟁력 향상, 자동차산업 전환에 따른 경영환경의 변화 등이 그렇다.
그럼에도 자동차산업의 노동시장에 대해 소통할 수 있는 채널이 이번에 생겨났다는 점에 대해서는 적절한 평가가 반드시 필요해 보인다.
이제 한국에서 30%에 가까운 부가가치를 만들고 있는 제조업에 관심을 가진 모든 이들은 이번 협약이 어떻게 이행되는지에 대해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적대적 공생이 아닌 상생이 실제로 가능하기 위해서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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