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5' 키가 빠진 블루투스 키보드. 주소현 기자 |
[헤럴드경제=주소현 기자] “꽤 많은 키보드가 청소 한번 하면 잘 작동돼요”
자주 사용하는 만큼 자주 망가지는 전자제품 중 하나가 바로 키보드다. 일상적으로 사용하다 보니 과자 부스러기가 들어가거나 콜라나 커피 등이 튀기도 한다.
이렇게 키가 눌리지 않은 키보드, 가장 손쉬운 선택지는 폐기다. 그러나 키보드를 버리는 것도 가볍게 여길 일이 아니다. 재활용되지 않는 쓰레기기 때문이다. 대부분 플라스틱으로 구성돼 있기는, 하지만 내부에 전자기판 등에 여러 금속류가 포함돼 있다.
일부 키보드 ‘덕후’들이 아니라면 휴대전화나 컴퓨터만큼 값비싸지 않은 탓에 수리할 생각조차 하지 않는 게 대부분이다. 그런데, 망가진 줄만 알았던 키보드들, 수리는커녕 평소 청소만 제때 해도 잘 작동한다는 게 전문가의 설명이다.
지난 20일 사단법인 다시입다연구소 주최로 서울 성동구 언더스탠드에비뉴에서 열린 ‘키보드 수리와 세척 워크숍’. 주소현 기자 |
지난 20일 사단법인 다시입다연구소 주최로 서울 성동구 언더스탠드에비뉴에서 열린 ‘키보드 수리와 세척 워크숍’. 기자도 망가진 키보드들을 들고 참석했다. ‘Tab’ 키가 뻑뻑하게 눌리는 유선 기계식 청축 키보드와 ‘F5’ 키가 빠진 무선 블루투스 키보드 2개다.
처방은 의외로 간단했다. 먼저 키보드 버튼이 눌리지 않는 건 먼지 탓일 가능성이 가장 크다. 고치려면 키캡(키보드 스위치를 덮은 뚜껑, 손가락으로 두드리는 부분)을 다 뽑은 뒤 칫솔이나 붓, 진공청소기 등으로 먼지를 빨아들여야 한다.
지난 20일 사단법인 다시입다연구소 주최로 서울 성동구 언더스탠드에비뉴에서 열린 ‘키보드 수리와 세척 워크숍’. 주소현 기자 |
먼지가 잔뜩 쌓여있던 기계식 청축 유선 키보드. 칫솔로 솔질 전(왼쪽)과 후가 확연히 다르다. 주소현 기자 |
음료 등이 들어간 뒤 굳어버려서 버튼이 뻑뻑해진 경우도 있다. 이때는 응급 조치로 키캡을 벗긴 뒤 의료용 알코올을 살짝 붓는다. 버튼을 여러 번 누르면서 알코올을 바닥으로 흘려보내면 내부에 굳은 당분이 녹을 수 있다.
키보드를 가장 확실하게 청소하는 방법은 놀랍게도 ‘샤워’다. 거품을 내고 흐르는 물로 헹궈내면 솔이 닿지 않는 부분까지 말끔히 닦이기 때문이다. 단 물로 세척하기 전에 전원을 반드시 차단하고 3일 가량 완전히 건조한 뒤 연결해야 한다. 무선 키보드일 경우 배터리까지 확실히 빼낸 뒤 물에 적셔야 한다.
새로고침 기능이 있는 ‘F5’ 자리에 ‘F9’ 키캡을 끼웠다. 빈 자리에는 먼지가 들어가는 걸 막기 위해 테이프를 붙여뒀다. 주소현 기자 |
이가 빠진 키보드는, 키캡을 분실하지 않는 게 가장 중요하다. 인터넷으로 필요한 키캡을 개별 구매할 수 있지만 배송비까지 합치면 새 키보드 가격과 맞먹을 수 있다. 특히 한글로 된 키캡은 더욱 희귀한 편이라고 한다.
임시 방편 자주 쓰지 않는 키캡을 빠진 칸에 넣기로 했다. 새로고침 기능이 있는 ‘F5’ 자리에 ‘F9’ 키캡을 끼웠다. 빈 자리에는 먼지가 들어가는 걸 막기 위해 테이프를 붙여뒀다.
단, 혼자 수리할 때는 키캡을 뽑는 방법을 미리 찾아보는 게 좋다. 제조사별로 분리하는 방법이 다르다. 칼이나 집게 등 뾰족하고 납작한 도구를 지렛대로 삼아 키캡을 들어내야 한다. 애플의 경우 하단, 로지텍은 상단부터 분리해야 한다. 특히 납작한 키보드는 키캡을 함부로 뜯다가는 부서질 수 있다.
지난 20일 사단법인 다시입다연구소 주최로 서울 성동구 언더스탠드에비뉴에서 열린 ‘키보드 수리와 세척 워크숍’. 주소현 기자 |
수고를 들여 키보드를 고쳐 쓰는 이유, 쓰레기를 줄이기 위해서다. 유엔 국제전기통신연합(ITU)의 세계 전자폐기물 실태 보고서에 따르면 2022년 전 세계 전자폐기물 발생량이 6200만t으로 집계됐다. 전자쓰레기는 빠르게 늘어나는 추세다. 2010년만 해도 3400만t, 절반 수준이었다. 전자쓰레기를 줄이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2030년에는 8000만t을 넘어설 거란 전망이 나온다.
문제는 대부분 재활용이 어렵다는 점이다. 키보드는 길이 1m 이내 소형 가전인 터라 폐기물 스티커를 따로 붙이지 않아도 된다. 구청 등에 갖다 버리거나 무상 수거 신청을 해서 버리는 게 좋다. 급하게 버려야 한다면 종량제 봉투에 담아 버려야 한다.
전자폐기물 [123rf] |
전자쓰레기 재활용률은 4분의 1 남짓. 겉으로 보기에는 플라스틱 같지만 내부에는 금속이 잔뜩 들어있다. 이를 각 가정에서 분리배출해서 버리기는 쉽지 않다. 이에 재활용 걱정을 할 게 아니라, 쓰레기 자체를 줄이자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간단한 전자제품은 직접 고쳐서 쓰자는 ‘수리권’ 논의다.
이날 워크숍을 진행한 황혁주 리페어라이프앤디자인 대표는 “키보드는 휴대전화 등에 비해 저가의 소모품으로 여겨 고쳐쓰지 않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오히려 부피가 커 플라스틱 쓰레기가 더 많이 나온다”고 지적했다.
황혁주 대표는 “키보드처럼 간단한 전자제품부터 수리를 하기 시작하면 다른 전자제품들도 고쳐 쓸 수 있다는 인식과 용기가 생긴다”며 “오래 아껴 쓸 수 있는 전자제품을 처음부터 장만하는 게 가장 좋다”고 덧붙였다.
addressh@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