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오전 서울 용산구에서 건물에 걸린 대형 현수막을 철거하고 있다. 주소현 기자 |
[헤럴드경제=주소현 기자] 12일 오전 5시 서울 용산구 한강대로. 아직 인적이 드문 거리에 비상등을 켠 크레인트럭이 모습을 드러냈다. 건물에 걸린 대형현수막을 철거하기 위해서다.
5층 짜리 상가 건물에는 대로변에 한 장, 골목을 면한 벽에 한 장씩 건물 4층 높이의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외벽에 고정된 끈 등을 풀고 현수막을 걷어내는 데 걸린 시간은 삼십 분 남짓.
현수막에 그려진 대파에서 짐작할 수 있듯, 걸려 있던 시간도 길지 않았다. 선거기간이 시작 전날인 지난달 27일부터, 선거를 마치고 이틀이 지난 12일 오전까지 보름 남짓이다.
떼어낸 현수막은 바로 쓰레기행이었다. 현수막 업체 관계자는 “현수막 제작과 설치뿐 아니라 철거와 폐기까지 한다”며 “현수막도 산업폐기물이라 평소에는 마대 자루에, 물량이 많을 때는 1t 트럭 단위로 버린다”고 설명했다.
12일 오전 서울 용산구에서 건물에 걸린 대형 현수막을 철거하고 있다. 주소현 기자 |
두 장이라고 적은 양이 아니다. 현수막들의 크기는 각각 가로 50m, 세로 11m과 가로 4m, 세로 14m로, 현수막 게시대나 가로등에 흔히 걸려 있는 선거 현수막(10㎡)과 비교하면 5.5~55배에 이른다. 선거사무소나 정당사무소 등에 거는 현수막은 규격 제한이 없기 때문이다.
이 현수막 두 장에서 나오는 탄소배출량을 따져보면 더더욱 그렇다. 이 현수막 두장을 제작하고 폐기하기까지 배출되는 약 3800kgCO₂e다. 이는 300㎖아이스컵 7만3186개를 만들고 버리는 데 나오는 탄소배출량과 같다.
이같은 대형현수막은 선거를 치르면서 나오는 쓰레기의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다. 선거현수막과 선거복, 벽보, 공보물 모두 선거 한번을 위해 만들어지고 바로 버려진다.
선거에서 나오는 일회용 쓰레기들을 줄여야 한다는 여론이 커지고 있지만, 이번 총선에도 어김없이 수많은 쓰레기들이 버려졌다.
12일 오전 서울 용산구에서 건물에 걸린 대형 현수막을 철거하고 있다. 주소현 기자 |
이는 현행 법에는 선거홍보물이 쓰레기가 된다는 인식이 깔려있지 않기 때문이다. 먼저 선거사무소나 정당사무소 등에 거는 대형현수막은 수량과 규격에 제한이 전혀 없다.
선거 현수막의 경우 10㎡ 이내의 크기로 선거구 내 읍면동 수의 2배 이내로 달 수 있도록 돼 있지만, 이도 충분치 않다. 걸려 있는 현수막의 수량을 세기 때문이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서 배부 받은 표지를 계속 사용한다면 계속 새로운 현수막으로 교체하더라도 문제되지 않는다.
재질에 대한 규정도 모호하다. 천으로 규정돼 있지만, 폴리에스테르 등 합성섬유를 사용하다 보니 전부 플라스틱 쓰레기다. 폴리에스테르는 매각해도 썩지 않고 소각 시 다이옥신과 같은 유해물질이 발생한다.
22대 총선을 앞둔 지난달 28일 오후 서울 관악구 신림1교 위에 후보자들의 현수막이 걸려 있다. [연합] |
플라스틱 오염을 줄여야 하는 시대가 된 만큼 현수막을 비롯한 선거홍보물을 규정하고 있는 공직선거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재생 플라스틱이나 재생 용지를 사용해 현수막, 공보물 등을 만들도록 하거나, 선거 후 후보자가 일정 비율 이상 재활용을 책임지게 하는 식이다.
서울환경연합 자원순환팀 허혜윤 활동가는 “프랑스의 경우 재생 섬유가 50% 이상 포함돼 있거나 지속가능성 인증을 받은 종이를 사용해야 선거 비용을 보전해준다”며 “총선을 마친 지금이 선거 쓰레기에 대한 논의가 시작돼야 할 시점”이라고 설명했다.
제22대 국회의원 선거를 열흘 앞둔 31일 오전 서울 마포구 한 아파트 우편함에 투표 안내문·선거 공보물이 꽂혀 있다. 연합뉴스 |
선거홍보물의 수량이나 크기를 줄이거나 재활용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현수막과 벽보 등을 붙이는 식의 선거운동 자체를 전환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허승은 녹색연합 녹색사회팀장은 “선거 홍보물을 굳이 규제하지 않아도 쓰레기를 만들지 않는 나라들이 많다. 유세 문화가 다른 것”이라며 “유세 차량을 타고 연설을 할 수도 있고, 문자를 보내거나 전자 공보물 배부하는 등 방식도 고려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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