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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헤럴드광장] 비행기 수장고
B-747 동체의 단면 [국립항공박물관 제공]

박물관의 근간(根幹)은 수장고(收藏庫)다. 박물관의 모든 자료와 유물은 반드시 수장고를 거쳐서 전시로 연출되고 교육과 체험으로 실현된다. 박물관마다 적게는 수천 점에서 많게는 수십만 점에 이르는 자료가 수장고의 포화상태를 불러왔다. 근래 국립중앙박물관을 중심으로 권역별 수장고가 완공됐는데 충청권은 공주, 영남권은 경주, 호남권은 나주에 건립되었다.

최근 ‘개방형 수장고(Open Storage)’, ‘보이는 수장고(Visible Storage)’라는 개념이 도입되면서 관심을 일으키고 있다. 개방형 수장고는 박물관 내부 연구자 중심으로 운영하던 수장고를 외부인에게 열어서 관람객이 직접 수장고에 출입하는 형태의 수장고를 말하는 것이고, 보이는 수장고는 관람객이 수장고 내부에 출입하되 동선에 따라 정해진 공간에서 자료의 수장상태나 내부 연구자들의 보존처리 작업 등을 지켜볼 수 있는 형태의 수장고를 말한다. 박물관 자료의 성격, 수장고의 구조, 정책 등에 따라 다양한 형태의 수장고를 시대가 요구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국립현대미술관 청주관은 옛 연초제조창 건물을 리모델링하여 개관하였는데 미술관 전체면적의 40% 이상을 소장품의 수장과 보존을 위한 공간으로 설계했다. 일반적으로 박물관과 미술관은 공간 배분에 있어서 전시가 중심을 이루는데, 청주관은 수장 중심의 미술관을 지향하고 있다. 국립민속박물관 파주관은 박물관의 집적된 민속유물과 아카이브 자료를 보관하고 활용하기 위한 수장고를 파주에 건립하였는데 전시기법을 접목한 수장고로 관람자와의 거리를 좁히는 개방형 공간을 지향하고 있다. 14만 점의 민속유물은 개방형 수장고 7개, 보이는 수장고 3개, 비공개 수장고 6개에 나눠 배치하고 있으며 아카이브 자료를 포함하면 100만 점이 훌쩍 넘는 수량을 자랑하는 수장고이다. 서울시에서 추진하고 있는 ‘서리풀 보이는 수장고’는 서초구의 옛 국군정보사령부 부지에 서울역사박물관·서울공예박물관·서울시립미술관 등의 자료로 채워질 예정인데, 해외 유명 건축가가 설계 공모에 당선돼 밑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미국 애리조나주 투산에는 이른바 ‘비행기 무덤(Aircraft Boneyard)’이라고 불리는 곳이 있다. 수명을 다한 항공기가 다른 용도로 사용되기 위해 폐기를 기다리거나 장기간 사용하지 않는 비행기를 임시 보관하는 장소다. 지난 코로나-19 때에는 항공 여객과 항공 물류 등 항공산업이 전반적으로 침체기를 겪으면서 비행기 무덤이 크게 붐볐다는 기록도 전한다. 국립항공박물관에는 보잉사의 B747-400 기종의 동체를 2m 단면으로 적출해서 항공기의 구조를 보여주는 전시물이 있는데 비행기 무덤에서 가져온 것이다. 747은 폭이 넓은 광동체(廣胴體·Wide-body Aircraft) 항공기인데, 1층은 화물칸, 2층은 이코노미석, 3층은 비즈니스석으로 구성된 모습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연출해 놓았다.

항공기나 항공 자료를 수집하고 전시하는 박물관 입장에서 비행기 무덤은 어쩌면 박물관의 성격을 지니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 보았다. 그러나 박물관의 활동은 학문적·예술적 가치가 깃들어 있는 자료를 바탕으로 출발한다는 점에서 비행기 무덤은 박물관이 될 수 없다. 폐차장을 자동차박물관이라고 할 수 없는 이유와 같다. 세계 유수의 항공우주박물관들이 공항이나 공군기지 옆에 넓은 야외 전시장을 마련하고 항공기를 전시하는 모습을 부러운 마음으로 바라볼 뿐이었다.

지난 가을 서울공항에서 열린 ‘국제 항공우주 및 방위산업 전시회(ADEX)’에서 미공군의 전략수송기 C-5M 슈퍼 캘럭시를 본 적이 있다. 록히드마틴에서 제작한 이 수송기는 길이 75m, 날개폭 68m로서 내부 화물칸은 길이 43.8m, 폭 5.8m, 높이는 4.1m인데, 아파치 헬기 5대를 실을 수 있는 공간이라고 한다. 에어버스사의 A380은 광동체로서 길이 73m, 날개폭 79.8m, 꼬리 높이 24.1m인데, 이코노미석 기준으로 최대 850명의 승객이 탈 수 있고, B747은 길이 70.6m, 날개폭 64.4m, 꼬리 높이 19.4m의 위용을 자랑한다.

우리 박물관 수장고를 고민하는 이즈음, 퇴역한 대형 여객기나 수송기를 개조해서 그 내부를 수장고로 만드는 ‘열린 비행기 수장고’는 어떨까? 오로지 상상력으로만 제안을 던져본다. 보안·방화·항온항습 설비와 접근성 등을 예견하고 걱정하는 박물관 연구원들의 목소리가 귓전에 들려올 것만 같다. 나도 되묻는 준비를 한다. “요즘의 개방형 수장고와 보이는 수장고는 상상이나 했던 일이었나?”

안태현 국립항공박물관장

yjc@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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