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0월 이후 사법리스크에 발목
“1등 삼성 위해 책임경영 필요” 목소리
그룹 아우르는 새 컨트롤타워 필요성도
이재용 삼성 회장은 지난해 10월 삼성전자 기흥캠퍼스를 찾아 차세대 반도체 R&D 단지 건설 현장을 점검하고 있다. [삼성전자 제공] |
[헤럴드경제=김현일·김민지·김성우 기자] 이재용 삼성 회장이 삼성그룹 부당합병 및 회계부정 사건 1심에서 무죄를 선고 받으면서 재계는 이제 이 회장의 등기이사 복귀 시점에 주목하고 있다. 이 회장은 현재 SK, 현대자동차, LG그룹 등 4대 그룹 경영인(회장) 중 유일하게 미등기 임원이다.
지난 2016년 10월 삼성전자 사내이사를 맡으며 등기이사에 이름을 올렸던 이 회장은 같은 해 11월 9조원에 달하는 미국 전장 전문기업 하만을 인수하고, 2019년 4월 시스템반도체 2030년 세계 1위 비전을 선포하며 그룹 전반에 걸쳐 청사진을 제시했다.
그러나 2019년 10월 임기 만료로 등기이사에서 물러난 이후 현재 미등기 임원 신분이자 무보수로 삼성전자를 이끌고 있다.
국정농단 사태로 2021년 1월 징역 2년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아 등기이사에 복귀하지 못했으나 2022년 8·15 광복절 특별사면으로 취업제한 걸림돌은 사라졌다. 이 회장은 그 해 10월 삼성전자 회장으로 승진했지만 등기이사 복귀는 서두르지 않았다. 삼성그룹 부당합병 및 회계부정 사건에 대한 법원의 판단을 염두에 둔 결정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이 회장이 이번에 무죄를 선고받은 만큼 등기이사 복귀 논의는 한층 탄력을 받을 전망이다. 다음달 있을 주주총회에서 이 회장의 등기이사 복귀가 안건으로 상정될지도 주목된다. 다만 검찰의 항소로 사법리스크가 이어질 경우 등기이사 복귀가 당장은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재계에서는 이 회장이 등기이사 복귀를 통해 회장 취임 이후 본격적인 책임경영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최근 반도체·가전·스마트폰 사업 전반에 걸쳐 고조된 위기감을 쇄신하고, 미래 투자와 비전을 제시하는 데 있어 이 회장의 역할이 여느 때보다 요구된다는 설명이다.
박재근 한국반도체디스플레이기술학회 회장(한양대 융합전자공학부 교수)은 “최근 삼성이 반도체 분야에서 개발 속도가 늦어지고 글로벌 리더십도 많이 약화된 만큼 삼성이 다시 1등으로 복귀할 수 있도록 이 회장이 책임경영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삼성의 미래 성장전략을 세우고 각 계열사들의 사업을 조율하는 새로운 컨트롤타워의 등장 가능성도 거론된다. 앞서 미래전략실로 불렸던 삼성의 컨트롤타워 조직은 국정농단 사태로 2017년 2월 해체됐다. 이후 삼성은 각 계열사를 중심으로 한 자율 경영체제로 전환했다. 현재 삼성전자의 사업지원TF, 삼성물산의 EPC(설계·조달·시공) 경쟁력 강화TF, 삼성생명의 금융 경쟁력 제고 TF 등으로 흩어져 가동되고 있다.
그러나 삼성 전체를 아우르는 컨트롤타워 부재로 인해 계열사들 간의 복잡하게 얽혀 있는 사업 조율이 늦어지거나 중장기 성장전략 수립에 어려움을 겪는 등 부작용이 발생하고 있다는 지적이 줄곧 제기돼 왔다.
삼성그룹의 준법경영을 감시하는 이찬희 삼성 준법감시위원회(준감위) 위원장도 컨트롤타워 필요성을 언급한 바 있다. 이 위원장은 “작은 돛단배에는 컨트롤타워가 필요 없지만 삼성은 어마어마하게 큰 항공모함”이라며 “많은 조직이 완전히 분리되지 않는 한 컨트롤타워가 없으면 효율성과 통일성 측면에서 문제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에 3기 준감위에서도 컨트롤타워 재건을 위한 검토도 진행될 것으로 예상된다.
결국 거대한 규모의 그룹 전체를 총괄할 핵심조직을 신설하고 새로운 성장전략을 바탕으로 돌파구를 모색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이병태 KAIST 경영학과 교수는 “삼성이 지금 휴대폰과 시스템 반도체 사업 전반에 걸쳐 부진한 상황에서 이 회장이 그걸 다 잡는 경영을 해야 한다”며 “예전처럼 야성이 있는 조직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챙겨야 한다”고 말했다.
경제단체들도 이번 재판부의 판결에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면서 이 회장을 중심으로 첨단산업 주도권 확보에 빠르게 나서야 한다고 주문했다. 강석구 대한상공회의소 조사본부장은 “이번 판결은 첨단산업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한 우리 기업들의 글로벌 경쟁과 이제 막 회복세에 들고 있는 우리 경제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한국경영자총연합회는 “경영계는 법원의 판단을 존중하며, 금번 판결을 통해 지금까지 제기되었던 의혹과 오해들이 해소되어 다행”이라고 했다. 아울러 “삼성그룹은 그동안 사법 리스크로 인한 경영상 불확실성을 벗어나 적극적인 투자와 일자리 창출 등 국가 경제 발전에 더욱 매진해 줄 것을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김고현 한국무역협회 전무이사는 “최근 반도체 수요가 회복되고 첨단산업 투자에 대한 글로벌 경쟁이 치열한 현재의 여건을 감안하면 판결에 대해 다행스럽게 생각한다”며 “앞으로 삼성이 더욱 진취적인 전략을 통해 AI 등 첨단기술을 선도하는 글로벌 리딩 기업으로서 국민 신뢰를 받길 바란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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