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기획자 겸 널위한문화예술 COO 이지현의 감상법
프란시스 알리스, 신념이 산을 옮길 때 [온라인 캡처] |
[헤럴드경제=이원율 기자]2002년 어느 날, 흰 셔츠를 입은 주민 500여명이 삽을 든 채 섰다.
눈앞에는 거대한 모래산이 펼쳐져 있었다. 이들의 표정은 결연했다. 일렬로 맞춘 후 군인처럼 진격했다. 산의 끝자락에 온 이들은 약속한 듯 삽을 땅속 깊이 찔러넣었다. 고작 한 삽 분량인 산의 조각들을 앞으로 옮겼다. 그렇게 한 걸음, 또 한 걸음…. 끈질기게 삽으로 산 일부를 깎고, 자르고, 조각내 휙 던졌다. 이들은 지금 산을 옮기려 하고 있다. 대체 왜? 지난 2000년, 예술가 프란시스 알리스는 페루 리마 땅을 밟았다. 알리스가 본 건 페루 정부의 부패였다. 더 심각하게 보인 건 이미 체념한 듯한 사회 분위기였다. 2년 뒤 다시 리마를 찾은 알리스는 사람들을 모아놓고 제안했다. "우리, 같이 산을 옮겨봅시다." 어차피 한가했던 사람들은 그 말에 큰 뜻 없이 삽을 쥐었다. "정신 나간 얘기", "시간 낭비를 위한 기발한 아이디어" 등 조롱 섞인 비난도 당연히 빗발쳤다. 알리스와 주민, 자원봉사자 등 500여명은 일단 일을 저질렀다. 그래봤자 하루짜리 퍼포먼스였다.
프란시스 알리스, 신념이 산을 옮길 때 [온라인 캡처] |
"거의 다 왔다!"
먼지가 잔뜩 묻은 한 주민이 소리쳤다. 어느새 산의 맞은편 끝자락이었다. 영원히 이어질 듯했던 삽질도 곧 끝이었다. "우리가 마지막 지점에 가까워졌을 때, 사람들은 '끝까지 계속하자'고 말했어요. 모두가 더 열심히 삽질을 했어요. 그리고 끝났을 때, 우리 모두가 소리를 질렀어요." 마지막 삽을 뜬 그 순간, 많은 이가 울음을 터뜨렸다. "뷰티풀(beautiful), 땡큐(thank you)." 누군가가 외쳤다. 서로가 서로를 끌어안고 환호했다. 이들 500여명은 이날 산을 옮겼다. 겨우 10㎝를 이동시켰지만, 절대 굴복하지 않을 듯했던 산을 보란 듯 제압했다. 우리가 힘을 모아 바꿨다, 이렇게만 연대하면 철옹성 같은 저 부패 권력 또한…. 주민들의 눈빛에 생기가 돌았다. 마음에 불씨가 일었다. 의미 없는 일이 의미 있는 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프란시스 알리스, 신념이 산을 옮길 때 [온라인 캡처] |
2016년 어느 날이었다.
당시 대학생이었던 이지현 '널위한문화예술' 최고운영책임자(COO)는 이러한 프란시스 알리스의 '신념(믿음)이 산을 옮길 때' 퍼포먼스에 깊은 여운을 느꼈다. 그는 경영학도였다. 등록금이 아깝다는 생각에 전공을 하나 더 갖자고 마음먹었다. 그래서 택한 게 회화과였다. 웅장한 계기는 없었다. 처음에는 경영학과 가까운 듯 먼 인문학을 배우고 싶었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미술사를 공부하고 싶었다. 문제는 학교에 미술사학과가 개설되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돌고 돌다보니 회화과로 온 셈이었다. 그리고 회화과의 이론 수업 중 알리스와 그의 작품을 접한 것이었다. "알리스와 500여명의 사람들을 당시 제 경영학적 관점에서 보면 비효율 그 자체죠. 있어선 안 될 일이지요. 그런데, 알리스는 그런 비효율을 통해 사람들에게 용기를 줬어요. 세상에 희망을 건넸어요." 경영학도의 눈으로 본 산을 옮기는 '삽질'은 무척 신선했다. 예술가의 머리에선 이런 생각이 나올 수 있다는 게 놀라웠다. 이쪽 세계에서 뭘 해보고 싶은데?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예술의 충격을 받고서 7년이 흘렀다.
그 사이 지현 씨의 삶은 생각하지 못한 방향으로 바뀌었다. 그는 예술이 사람에게 주는 힘을 공부했다. 예술의 가치가 사회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를 살펴봤다. 지현 씨는 문화예술 스타트업 '널위한문화예술'의 초기 멤버로 뛰었다. 현재 유튜브 채널 구독자만 78만5000명(널위한문화예술 31만6000명·예술의이유 46만9000명)인 규모로 동료들과 함께 키웠다. 그는 나아가 예술 감독, 국제아트페어 기획자, 600여명 수료생을 배출한 예술경영 스터디장(長), 책 출간 등을 경험했다. 지금은 아트컬렉팅에도 관심을 두고 사업화를 추진하고 있다. 현재 그는 업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독립 큐레이터 중 한 명이기도 하다. 보는 것, 하는 일, 만나는 사람 등 모든 게 예술로 통하는 중이다. 이달 초 서울 마포구의 한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 지현 씨는 예술로 인해 삶이 송두리째 바뀌었다. 그런 그에게 인간은 왜 예술을 곁에 둬야하는지를 물었다.
큐레이터 겸 널위한문화예술 COO 이지현 씨. [본인 제공] |
-지금은 문화예술 최전선에 있는 것이군요. 이것부터 물어볼게요. 바쁜 현대인이 그런데도 예술을 접해야 할 이유가 있다면 왜일까요?
▶사실 저는 사람은 일하려고 태어난 게 아니라 놀기 위해 태어난 것으로 생각해요.
일도 더 재미있게 놀고 더 편하게 쉬려고 하는 것일 뿐, 일 자체를 더 하기 위해 일하는 사례는 거의 없겠다고 생각해요. 그런데요. 어느 순간부터 대부분 사람은 마치 '일하기 위해' 태어난 듯 살고 있어요. 솔직히 말해 저는 우리 모두가 일중독 상태라고 봐요. 역사와 체제의 흐름 속에서 어느새 기계적으로 굳어지고 있는 것이지요.
예술은 자기도 모르게 부품화되는 이런 분들에게 각성의 계기를 던져줄 수 있다고 생각해요.
예술은 놀이에 가까워요. 효율성이 없어요. 숫자로 무슨 성과가 측정되는 게 아니고, 실생활에 획기적인 변화를 주지도 않아요. 투입한 양과 얻는 양을 분석하는 경제 활동과 빗대면 거의 무의미해보이기도 해요. 하지만 그런 예술에는 감동이 있어요. 때로는 행복함을 주고, 때로는 즐거움을 주지요. 예술은 어느덧 부품처럼 된 분들에게 그간 잊었던 무언가, 정작 중요하게 생각했던 무언가를 거듭 다시 떠올리게 해준다고 생각해요. 프리드리히 니체는 인간의 본성을 '놀이하는 인간'으로 정의했어요. 이를 참고하면, 예술은 사회적 분위기가 잊게끔 강요하는 인간의 본성을 되찾아주는 매개체가 되는 것이지요.
프란시스 알리스 |
-그런 경험을 직접 하신 적도 있는 듯한데요?
▶맞아요. 당장 지난해에도 비슷한 경험을 했어요.
당시 저는 베니스 비엔날레에 있었어요. 체력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지친 상태였지요. 여러 국가관(館)을 돌았는데, 저 멀리 벨기에관에서 어린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리기 시작했어요. 뭘까. 가보니 ('신념이 산을 옮길 때' 퍼포먼스를 선보인)프란시스 알리스의 새로운 작품이었어요. 전 세계를 돈 그가 각 나라의 아이들이 하는 놀이를 다큐멘터리처럼 찍어서 선보인 것이었지요. 흰색 보도블록만 밟기, 깨진 유리창으로 빛 반사하기, 타이어에 들어가 구르기 등이요. 이 예술 작품 덕에 (잠깐 잊고 있던)인간의 본성을 다시 되새길 수 있었어요. 왈칵 눈물이 날 정도였지요.
-감정의 환기라고 할까요. 그런 건 예술만이 갖고 있는 힘이라고도 볼 수 있겠어요.
▶일보다도 중요한, 자기 내면을 돌아보게 되는 것이지요.
이것 말고도 생각할 거리가 더 있어요. 이젠 주 4일제 이야기가 나오는 등, 우리 사회가 점점 더 일 시간을 줄이는 쪽으로 가고 있다는 것이에요. 어쩌면 가까운 미래에는 '앞으로 (계속 늘어나는)여가 시간에 무엇을 해야 할까'라는 생각이 최대 고민이 되는 세상이 올 수도 있어요. 특히나 의지와 상관없이 삶의 상당 부분을 일로 채워온 분들에게는 생각보다 깊은 고민이 될 수도 있다고 봐요. 그럴 때 빈 곳을 채울 수 있는 게 예술이라고 생각해요. 구체적으로는, 예술이 갖는 비생산성이라는 속성과 닮은 무언가를 할 수밖에 없게 될 것으로 생각해요. 이 또한 지금 우리 사회에서 예술과 친해지면 좋은 이유인 듯해요.
-은퇴하신 분, 혹은 은퇴를 앞두고 계신 분의 경우에도….
▶그렇지요.
실제로 저 또한 예술로 인한 '부모님의 변화' 사례를 많이 듣고 있어요. 제 또래 정도를 자녀로 둔 부모님이라면, 너무도 열심히 달려온 산업화 세대에 속한다고 볼 수 있어요. 이 중 적지 않은 분들이 사회 속 부품화를 이미 경험하셨지요. 이분들이 은퇴하시면 약간은 붕 뜨는 경우도 보여요. 일과 자식에 대한 절대적 희생을 어느 정도 내려놓고 보니, 정작 나를 위해 무언가 한다는 것 자체를 잊어버린 상황이 되기도 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은퇴 세대 중에는 쉬시는 과정 중 '이제 나는 쓸모가 없구나'라는 식의 슬픔에 젖는 일도 있는 듯해요. 어떻게 보면 앞서 말한 '일은 적어지고 나머지 시간은 많아지는' 미래를 미리 경험하시는 것이지요.
저는 이분들이 예술로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사례를 많이 봤어요.
예술을 하고, 보고, 공부하시는 등 놀이의 과정을 통해 삶의 새로운 동력을 얻으시는 분들을 접하고 있어요. 실제로 '은퇴하신 우리 엄마가 동네 미술관에서 주민 도슨트로 자원봉사를 시작하셨어요. 무척 즐거우시대요. 예술을 조금 더 일찍 접했다면 좋았을 터라는 말을 종종 하시는데….' 라는 식의 이야기도 많이 들었지요.
큐레이터 겸 널위한문화예술 COO 이지현 씨. [본인 제공] |
-많은 분이 이 부분도 궁금하게 생각해요. 예술을 접함으로 인해 보다 '바로 느낄 수 있는 변화'가 있다면 그건 무엇인지.
▶경영학과 예술의 비교로 이야기를 해볼까요.
경영학은 해결책을 위해 존재하는 학문이에요. 최고의 효율을 통해 최상의 해결책을 제시하고, 그 과정에서 낭비를 줄이는 게 목표지요. 경영학은 이 자체로도 세상에 꼭 필요한 학문인 건 확실해요.
예술은 그런 답을 찾는 게 아니라 외려 질문을 찾는 학문이었어요.
이걸 왜 그렸지, 어떻게 그렸는지, 무슨 생각을 표현하려고 했는지 등 더 넓게 질문하고, 더 깊이 생각하기를 우선으로 두는 듯했어요. 처음에는 저도 경영학에만 익숙했어요. (예술은)너무 뜬구름 잡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공부를 이어가다보니 마음이 바뀌었어요. 계속 질문하고, 관찰하고, 분석하다보니 세상을 더욱 입체적으로 볼 수 있었어요. 한 작품을 놓고도 수백가지 해석이 나오듯, 한 현안을 보고도 수백가지 다른 의견이 있을 수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포용력이 향상된 것이지요. 그렇게 내면의 소용돌이가 잦아들다보니 삶 전체에 여유도 생겼어요. 또, 좋은 해결책을 찾는 가장 빠른 방법은 좋은 질문을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어요. 세상 변화를 이끄는 최전선에 있는 학문은 좋은 질문을 탐구하는 예술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더 큰 담론, 더 큰 아젠다에 진심으로 관심을 두게 됐지요.
-그렇다면 또 하나 물어볼게요. 적지 않은 분들이 예술에는 '허들이 있다'고 생각하는 듯해요. 그러니까, 친해지고는 싶은데 어떻게 친해져야 할지 모르겠다는 고민이지요. 추천하는 방법이 있을까요?
▶약간만 더 쉽게 생각하셔도 될 것 같아요.
가령 누구를 공부해야 하고, 무슨 작품을 봐야 하고, 어디 전시회를 가야 할까 하는 고민도 좋지만요. 제가 하나 제안하자면, 일단 가장 편한 자세로 누워요. 유튜브를 켜요. 흥미를 느꼈던 지점을 검색해요. 빈센트 반 고흐는 왜 귀를 잘랐을까. 구스타프 클림트의 그림은 진짜 황금일까. 이를테면 이런 것이에요. 이렇게 시작해도 충분해요. 그리고, 어디 나갈 일이 있다면 가는 김에 들른다는 마음으로 근처 미술관, 갤러리를 슬쩍 찾아봐요. 직장인이라면 점심시간에 잠깐, 그게 아니어도 산책이나 운동 중에 잠깐 살펴보는 것이에요.
피에트 몬드리안, 빨강, 파랑, 노랑의 구성, 1930 |
널위한문화예술·예술의이유 유튜브 채널 캡처 |
-유튜브 채널 널위한문화예술도 도움이 되겠군요?
▶추천해요(웃음).
금융맨 제 남편도 예술과 거리가 멀어요. 저는 어딜 여행해도 미술관을 많이 가는 편이에요. 그때마다 함께해 준 남편이 어느 날 많이 봐도 이해가 잘 안 간다, 힘들다…. 이렇게 솔직히 말하더라고요. 그런 남편이 우연히 유튜브에서 '몬드리안이 대각선을 그리지 않은 이유'를 봤어요. 자기는 (예술을)잘은 모르지만, 이 내용은 정말 궁금했었다고 해요. 예술 콘텐츠를 보고 흥분하는 모습은 처음이었어요. 이 첫걸음 덕일까요. 이제는 금융맨들 사이 식사 자리에서 먼저 몬드리안 이야기를 꺼낼 정도가 됐다고 해요. '예술을 잘 아는 사람'으로 차별화된 브랜딩을 하게 된 점도 덤으로(웃음).
폴 세잔, Self-Portrait in a Casquette |
폴 세잔, 사과와 오렌지 |
-입문용 예술가로 추천하고 싶은 분이 있을까요?
▶음. 일단 폴 세잔을 이야기할게요. 많은 분이 빈센트 반 고흐, 파블로 피카소 등은 아실 것으로 생각해요. 인지도로 따지면 세잔은 이들보다 한 단계 아래에 있는 화가지요. 하지만 '사과'로 대표되는 그의 업적만큼은요.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현대)예술가 모두에게 영감을 줬다고 봐요. 세잔은 예술에서 결과만큼 과정도 중요하다는 걸 보여준 거의 최초의 화가였어요. 일부러 원근법을 무시하고, 알고도 불안정한 구도의 그림을 그리는 등 예술이 새로운 영역으로 나아가는 데 단초(端初)를 마련해준 사람이었지요.
앤디 워홀, 32 Soup Cans |
-그런 말도 많아요. 결국 모든 예술적 가치는 자본이 정하는 것 아니냐….
▶예술은 보기보다 굉장히 정교하게 발전한 학문이라는 점을 말하고 싶어요.
예술은 인류사상 가장 오래된 학문이자 지금껏 융성하게 이어지는 학문 중 하나지요. 이 말은 즉, 예술은 생각보다 허술하지 않았어요. 제도도, 검증 과정도 켜켜이 쌓인 역사만큼 탄탄할 수밖에 없어요. 자본의 침범에 힘없이 정복될 만큼 호락호락한 영역이 아니라는 걸 지금도 느끼고 있어요. 엄청난 부자가 작정하고 달려들면 약간의 영향은 줄 수 있겠지요. 하지만 이쪽 판의 뿌리까지 통째로 잡아 흔들기는 어려움이 아주 커요. 실제로 지금도 많은 예술가가 일련의 검증 끝에 조금씩, 조금씩 성장하고 있어요. 그런 건 있어요. 이를테면 앤디 워홀이요. 그런데 워홀 같은 사람들도 알고 보면 자본을 활용해 자본주의를 예찬하는, 어떻게 보면 굉장히 학문적인 접근을 한 것이었어요. 언뜻 보면 자본이 워홀 신화를 만든 듯 보이지만, 사실은 워홀이 선보인 예술 주제가 자본이었던 것이지요. 자본을 타고 유명해진 게 아니라, 자본을 활용해 유명해진 사례이지요.
큐레이터 겸 널위한문화예술 COO 이지현 씨. [본인 제공] |
지금은 서울과 홍콩 등을 오가고 아트페어와 비엔날레를 사무실 찾듯 방문하는 지현 씨지만, 그가 제대로 예술에 발을 딛은 계기는 스타트업 합류였다. 활발한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활동이 물꼬를 튼 것이었다. 당시 지현 씨는 대학원이 더 급했다. 원래는 한 주 1~2번 출근해 예술 콘텐츠를 만드는 식으로 가볍게 생각했다. 아르바이트 느낌이었다. 그런데 일이 잘 풀렸다. 여러 회사에서 협업 제의를 했다. 광고 문의도 들어왔다. "정신 차려보니 '풀타임'으로 전력투구하고 있었어요." 예상 못 한 일이었다.
-스타트업 일을 하면서 가장 보람을 느낀 건 언제였을까요.
▶기억나는 게 있어요.
'덕분에 처음으로 전시회를 찾아갔다'는 내용의 긴 댓글이었어요. '작품을 보고 울었다', '종일 감동에 젖어있었다'는 등 생생한 말씀도 감사해요. 이렇게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는 걸 매일 느끼는 일 또한 감사한 일이지요. 한번은 이런 분도 있었어요. '예술가가 되기로 마음먹었다'는 것이었어요. 새로웠어요. 학생분들 또한 예술을 충분히 느낄 수 있고, 즐길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들면서 저에게 새로운 미션도 주어지게 되었지요.
마르셀 뒤샹, 샘(Fountain,1917년 내놓은 원본을 재제작). [국립현대미술관] |
-그래도 지금까지 이 길이 쉽지만은 않으셨지요?
▶고민이 많았어요.
예술도 학문이기에 마냥 쉬울 수만은 없지요. 가령 마르셀 뒤샹의 샘(변기)이요. 이를 놓고 '그냥 감상해도 돼요'라고 말하는 건 솔직히 거짓말이에요. 그 작가가 이 변기를 통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는지, 최소한 배경은 있어야 더 흥미롭고 더 여운이 생기는 법이지요. 그렇다면 이 배경, 가령 뒤샹이 무슨 생각으로 변기를 냈는지를 쉽게 설명해보자는 것. 즉 '쉽게 전달하기 위한 전문성'을 갈고 닦아 독자에게 전달해보자는 것. 이를 해보겠다고 처음으로 등장한 스타트업이 저희라고 생각해요. 물론 지금까지 오기에 하나씩 말하기 힘들 만큼 너무 많은 곤경과 어려움도 있었어요(웃음). 얼마 전 강연을 할 때 그 주제를 '예술도 어렵고, 사업도 어려운데, 예술사업을 한다는 것에 관하여'로 잡을 정도였지요. 그런데도 '예술의 재미는 예술이 만드는 이야기'라는 일관된 비전으로 매일 더 발전하고 있어요.
-지현 씨가 생각하는 예술의 매력은 무엇인가요?
▶그런 생각을 해요.
'전시를 보고 오라'는 강요를 받고 미술관에 가는 일은 드물다고 봐요. 그런데도 너무 많은 분이 미술관을 찾고 있어요. 명확하게 정의할 수 없는, 그렇지만 계속해서 많은 사람이 예술을 찾게 되는…. 끊을 수 없는 무언가가 있다는 게 예술이 갖는 가장 큰 매력인 듯해요. 과학도, 기술도 발전해서 무엇이든 설명할 수 있는 세상이 왔지만, 예술에만은 아직도 (과학과 기술로는)설명할 수 없는 매력이 크다고 생각해요.
yul@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