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나주의 곰 농장에 갇힌 반달가슴곰 [곰보금자리프로젝트 제공] |
[헤럴드경제=주소현 기자]한때 웅담을 목적으로 철장에 갇힌 사육곰이 사회적 논란이 됐었다. 지금은 어떨까? 여전히 곰들은 철장 속에서 사육되고 있고, 웅담도 여전히 사고판다.
쓸개를 먹고자 갇혀 키워지는 곰들은 반달가슴곰. 전 세계적으로도 멸종위기종으로 지정된 귀한 몸이다. 그런데 국내에선 여전히 식용을 목적으로 300여마리의 반달가슴곰이 사육되고 있다.
전남 나주의 곰 농장에 갇힌 반달가슴곰 [곰보금자리프로젝트 제공] |
이 반달가슴곰들의 역사는 1980년대 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농가 소득을 늘리려는 목적으로 특이 가축 사육을 국가적으로 장려하면서 해외에서 반달가슴곰 500여마리가 국내로 들어왔다.
이후 서울올림픽 개최를 즈음해 멸종위기종인 반달가슴곰 식용에 논란이 일면서 반달가슴곰 수입(1985년)이나 수출(1993년)이 차례로 금지됐다.
수출입 없이 국내에서 사육된 반달가슴곰은 한때 1000마리를 넘기기도 했다. 작년 기준 현재 22개 농가에서 319마리가 남아 있다.
구조한 사육 반달가슴곰들을 옮기는 모습 [곰보금자리프로젝트 제공] |
반달가슴곰들은 농가에서 애물단지 취급을 받으며 철창에 갇힌 삶을 이어가고 있다.10살이 넘은 반달가슴곰에 한해 웅담만 약재로 팔 수 있고 그 외 가죽 등은 거래금지품목이라 경제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지난해 12월에는 불법 농가의 곰 3마리가 탈출해 농장주 부부가 숨진 사건까지 벌어졌다.
정부도 이 사육 곰들이 난감하기는 마찬가지다. 사유 재산으로 구분돼 함부로 몰수할 수 없다. 자연에 풀어주는 방법도 마땅치 않다. 야생성을 잃은 탓에 자연에서 스스로 생존할 가능성이 낮다.
게다가 혈통도 발목을 잡는다. 문화재보호법상 반달가슴곰은 한국 아종에 한해서 천연기념물로 지정돼 있다. 수입된 사육 반달가슴곰들은 같은 종인데도 출신이 다르다는 이유로 전혀 다른 삶을 살아가고 있는 셈이다.
강원 화천시에서 마련한 곰 방사장 내에 수영장을 만들고 있다. [곰보금자리프로젝트 제공] |
오갈 곳 없는 사육 반달가슴곰 보호는 민간으로 넘어왔다. 일부 동물 보호단체들은 자발적으로 사육 반달가슴곰들을 보호시설을 만들거나 해외로 내보내고 있다.
사단법인 ‘곰보금자리프로젝트’와 ‘동물권행동 카라’ 지난해 6월 강원 화천시에서 100평 규모의 임시 보호시설을 시작했다 사육을 포기한 농가의 곰들을 매입하고 그 부지를 빌려 마련된 곳이다.
나무라든지 수영을 하거나 먹이를 숨기는 장소 등을 조성해 야생에서 곰들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요소들을 인위적으로 만들어냈다. 곰들은 원래 무리 생활을 하지 않지만 이곳에서 살게 된 14마리의 반달가슴곰들은 함께 살 수 있도록 합사 훈련을 받고 있다.
지난 3월에는 사육 반달가슴곰 22마리가 미국으로 떠나기도 했다. 동물자유연대에서 2020년 강원도 동해시의 농장에서 구조한 곰들이다. 운이 좋은 이 곰들은 여생을 1000만평이 넘는 야생과 흡사한 환경에서 살아갈 수 있게 됐다.
강원 화천시 보호시설에 첫 발을 딛는 사육 반달가슴곰 [곰보금자리프로젝트 제공] |
사육 반달가슴곰들에게 더 나은 환경을 제공하기 앞서 급선무가 있다. 사육과 도살, 웅담 채취를 법적으로 금지하는 거다. 야생생물법에서는 이 모든 과정을 합법이라고 명시하고 있다.
정부는 지난해부터 곰 사육 종식을 위한 약속을 내놨다. 전남 구례군과 충남 서천군에 사육곰 보호 시설을 짓고, 2026년 이전에 법제화를 마무리하겠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법적 근거는 아직 전무한 상황이다. 지난해 5월 ‘곰 사육 금지 및 보호에 관한 특별법안’이 발의됐지만 통과되지 못한 채 계류 중이다. 이 법안을 두고 지난해 말에는 2만명이 국민동의청원을 통해 지지하기도 했다.
강원 화천시에 마련된 보호시설 '곰숲'에 생활하고 있는 반달가슴곰들 [곰보금자리프로젝트 제공] |
앞선 법이 통과되지 않은 채 환경부는 지난 2월 곰 사육을 금지하는 특별법 제정을 추진을 발표하고, 지난달 31일에는 또다른 야생생물법 개정안이 발의됐다.
최태규 곰보금자리프로젝트 대표는 “관련 법이 통과되지 않아 곰 사육 금지가 아직도 확정되지 않은 상황”이라며 “곰 사육 금지로 인한 보상을 기대하는 농가들이 오히려 곰 가격을 담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addressh@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