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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피카소도 ‘이 그림’에 “대박!” 감탄했다는데[이원율의 후암동 미술관-피카소·마티스 편]
야수주의·입체주의 심화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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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페르메이르의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를 본 뒤 관련 책과 영화를 모두 찾아봤습니다. 잘 그린 건 알겠는데 이 그림이 왜 유명한지 궁금했습니다. 그림 한 장에 얽힌 이야기가 그렇게 많은지 몰랐습니다. 즐거웠습니다. 세상을 보는 눈이 조금은 달라졌다는 느낌도 받았습니다. 이 경험을 나누고자 글을 씁니다. 미술사에서 가장 논란이 된 작품, 그래서 가장 혁신적인 작품, 결국에는 가장 유명해진 작품들을 함께 살펴봅니다.
앙리 마티스, 생의 기쁨(일부 확대), 1906

[헤럴드경제=이원율 기자]1900년대 초 프랑스 파리. 시인 막스 자코브(1876~1944)가 산책 도중 한 화가와 마주합니다. 금빛 태양 아래 우연히 만난 둘은 반갑게 악수합니다. 둘은 같은 길을 가게 됩니다. 어차피 두 사람 다 길동무가 없어 아쉬웠던 차였습니다.

"선생. 무엇을 유심히 보시오?" 자코브가 이 화가에게 묻습니다. 대화 주제로 예술이 오르자마자 파리의 기성 화단을 신랄하게 꾸짖던 이 남자가 갑자기 멍한 표정을 지었기 때문입니다. "저기 호수 위로 부서지는 윤슬을 보시오. 퍼즐 조각 같지 않소? 나는 말이오. 나야말로 기성 화단을 깨뜨릴 수 있는 선구자일 것으로 생각했소. 그런데, 요즘 저런 입체적인 풍경을 보면 말이야. 피카소야말로 '진짜'가 아닐까…. 그런데 자코브. 왜 웃으시오?" 자코브의 킬킬대는 소리를 들은 화가가 묻습니다.

"하하. 마티스 선생. 내가 얼마 전에 이 근처에서 피카소를 봤는데 말이오. 그 녀석이 뭐라고 했는지 아시오? 크흠. '자코브, 저기 감동적인 태양을 보세요. 마티스의 강렬한 색채가 떠올라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마티스는 정말 대단한 사람이에요.' 둘이 짰을 리는 없을 테죠. 서로를 그토록 경계하는 사이인데, 알고 보면 서로를 그렇게나 흠모하는 관계라니!"

야수주의 선구자 앙리 마티스(1869~1954)와 입체주의 선구자 파블로 피카소(1881~1973). 달라도 너무 다른 두 사람은 평생 상대방을 영혼의 라이벌로 놓고 살았습니다. 이 둘이 미술사에 남긴 발자국이 유독 진한 건 서로 끝없이 자극하고 자극받은 결과이기도 합니다.

마티스의 도발-피카소의 답변
앙리 마티스, 생의 기쁨, 1906

'포도주의 신' 바쿠스의 파티 장면을 옮겨 담은 듯한 이 그림은 뜨거운 색상으로 가득합니다.

물을 가득 채운 수통을 뒤엎어 표현한 듯한 하늘과 바다, 눈이 아플 만큼 붉고 노란 나무와 풀, 자유분방한 자세의 사람…. 이국적이라는 말도 부족합니다. 눈 감고 무지개다리를 건널 때쯤에야 볼 수 있을 법한 풍경입니다.

마티스의 '생의 기쁨(1906)'입니다. 마티스는 시인 보들레르의 '여행으로의 초대', 말라르메의 '목신의 오후'에서 영감을 받았습니다. 삶의 희망, 인간의 욕망을 함께 그렸다고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이 그림을 처음 본 사람은 혼란에 빠집니다. "이 화가, 죽었다 깨어났어? 세상에 이런 풍경이 어디 있어?"라며 웅성댔습니다.

다만 몇몇은 경이로움에 젖어 듭니다. 기성 화단의 고루함에 불만을 품은 젊은 화가들이었습니다. 물론, 피카소도 그 무리에 있었습니다. "나만큼이나 눈을 뜬 화가가 있었잖아?" 피카소는 이 그림을 보고 중얼거립니다. 당장 작업실로 달려가 이 그림을 뛰어넘는 문제작을 그리고 싶었습니다.

파블로 피카소, 아비뇽의 처녀들, 1907

살구색 가득한 이 그림에서 언뜻 알 수 있는 건 다섯 여인이 각자의 포즈로 있다는 것뿐입니다.

누드화 같긴 한데 구성이 뒤죽박죽입니다. 여성들의 몸은 물론 이를 감싸는 천과 커튼 등 눈에 보이는 대부분이 하나의 면 위에 뒤섞인 채 칠해졌습니다. 여성들은 앞에서 본 듯한 각도인데, 과일 바구니는 또 위에서 내려다본 각도입니다. 여성 각각의 얼굴 모양도 범상치 않습니다.

피카소가 스페인 바르셀로나 안 사창가 여인들을 모델로 그린 '아비뇽의 처녀들(1907)'입니다. 마티스의 '생의 기쁨'이 공개되고 1년 뒤 등장한 이 그림은 단번에 문제작으로 떠오릅니다. "이게 대중에게 공개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생각하나!", "예술이 장난이야?"라는 식의 욕도 많이 먹었습니다.

하지만 당시 마티스와 피카소를 잘 알던 사람들은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이 그림은 피카소가 마티스의 '생의 기쁨'을 본 직후 답변일 것이라는 점을요. 몇몇은 감동에 겨워 박수를 쳤습니다.

영혼의 라이벌, 색채의 왕국·새로운 구성의 제국 세우다

마티스와 피카소는 평생 서로 싸우며 혁신했고, 끝없이 경쟁하며 통념을 무너뜨렸습니다.

천재적 그림 실력을 갖춘 데 모자라 회화를 보는 눈, 시대의 흐름을 꿰뚫어 보는 감각마저 똑같이 괴물같았던 겁니다. 마티스는 야수파의 수장이 돼 색채의 왕국을 세웁니다. 피카소는 입체파의 지도자가 돼 새로운 구성의 제국을 일굽니다.

둘은 '이렇게나 다를 수 있구나!'라는 생각이 절로 들 만큼 달랐는데요. 프랑스 태생의 마티스는 학자의 성향, 스페인 출신의 피카소는 배우의 기질을 지녔습니다. 법 공부를 하던 마티스가 병원 침대에서 우연히 그림에 눈을 떴지만, 왕립 아카데미에 조기 입학한 피카소는 사실상 필연적으로 화가의 길을 걸었습니다.

앙리 마티스, 푸른 누드 XII
파블로 피카소, 꿈(꿈꾸는 여인)

지향점도 달랐고, 생활상도 달랐습니다.

마티스는 금욕주의, 피카소는 쾌락주의에 가까웠습니다. 마티스가 사색을 즐길 때 피카소는 사람들과 술 먹고 떠들었습니다. 마티스가 빛이 쨍쨍한 낮에 그림을 그렸다면, 피카소는 별과 촛불이 반짝이는 밤에 붓을 들었습니다.

마티스의 집은 깔끔했습니다. 강박증이 있는 양 물건의 제 자리에 집착했습니다. 피카소의 집은 혼돈 그 자체였습니다. 붓, 물감, 단지, 캔버스 등 온갖 물건이 굴러다녔지요. 출처를 알 수 없는 옷(대부분은 피카소를 만나고 간 여자들의 옷이었습니다)과 음식 등이 산처럼 쌓였습니다.

스타인 집에서 불꽃 ‘찌릿’, 한 번 붙어봐?

'이 사람이면 한 판 붙어봐도 되겠는데?'

1903년 3월. 미국인이자 프랑스의 화상(畵商) 거트루드 스타인의 영향으로 둘은 서로를 라이벌로 의식합니다. 당시 스타인의 집은 예술가의 사랑방과 같았습니다. 마티스와 피카소가 제대로 이야기를 나눈 곳 또한 이 장소였습니다. 안목 있는 스타인이 두 화가의 가능성을 놓칠 리 없었습니다.

앙리 마티스, 모자를 쓴 여인
파블로 피카소, 거트루트 스타인의 초상

스타인은 자기 뜻과 상관없이 둘 사이 경쟁을 부추기는데요.

1라운드는 마티스의 압승, 2라운드는 박빙, 마지막 3라운드에선 피카소가 크게 이겼다는 말이 나옵니다. 스타인과 그의 친구들은 먼저 마티스의 '모자를 쓴 여인(1905)', '생의 기쁨' 등을 보고 엄지를 척 듭니다. 스타인 측은 '모자를 쓴 여인'을 500프랑에 산 뒤 집에 걸어두는 등 남다른 애정을 표합니다. 승리욕의 화신이던 피카소가 '아비뇽의 처녀들' 작업에 그렇게 속도를 낸 건 이러한 기류도 한몫한 게 아닐까 합니다.

하지만, 피카소가 마티스를 앞지르는 건 예상할 수 있는 결과였습니다.

대중과 언론도 학자 성향의 마티스보다는 배우 스타일의 피카소를 더 주목합니다. 마티스에게는 피카소만큼의 스타성이 없었던 겁니다. 시간도 피카소의 편이었습니다. 마티스보다 피카소가 한참 젊었습니다. 혈기왕성한 피카소는 마티스와 나란히 걷는 것을 넘어 어느새 자신만의 ‘마티스 스타일’을 창조할 만큼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앙리 마티스, 음악
파블로 피카소, 게르니카

이와 관련한 사례가 있는데요.

피카소가 그린 그의 연인 프랑수아즈 질로의 초상화, '여인, 꽃(La Femme, Fleur)'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피카소는 마티스와 토론도 할 겸, 그가 또 무슨 짓을 벌이는지 살펴보기 위해 종종 마티스의 작업실을 찾았습니다. 1946년 3월. 피카소는 질로와 함께 그곳을 방문합니다. 똑똑. 문을 두드리자 마티스가 맞아줍니다. 이들은 나란히 앉아 차를 마시다가 그림 이야기를 하게 됩니다.

『"피카소. 내가 질로의 초상화를 그려봐도 되겠나?"

"마티스 선생. 당신은 질로의 초상화를 어떻게 그리고 싶어요?"

"글쎄. 나는 그녀의 머리카락을 초록색으로 하고 싶어. 그녀의 머리가 흥미를 끌거든. 질로의 삐죽한 눈썹도 무척 재미있어. 전체적인 형태는 추상적으로 단순화해도 좋겠는데."

"그렇군요. 다음에 또 찾아오겠으니, 그때 초상화를 그려보시지요."

피카소는 질로의 손을 이끈 채 마티스의 작업실에서 퇴장했다. 며칠 후 피카소는 질로에게 모델이 돼달라고 부탁했다. 피카소는 캔버스 앞에 선 질로를 오랜 기간 쳐다봤다. 피카소는 질로에게 이제 옷을 입어도 된다고 했다. 같은 날 오후. 피카소는 질로에 대한 초상화 작업을 시작했다.

파블로 피카소, 여인-꽃, 1946

처음에는 매우 사실적인 형태의 스케치였다. 하지만 피카소는 이내 결심한 듯 질로의 머리를 초록색으로 칠했고, 그는 질로가 꽃의 상징적 형태가 될 때까지 그림을 단순화하고 추상화했다. 마티스가 그리려고 한 질로의 모습이 피카소의 손으로 탄생했다. 심지어 마티스의 작업 방식마저 따라했다. 피카소는 작업을 마친 후 질로에게 외치듯 말했다.

"당신의 머리카락을 초록색으로 그릴 수 있는 사람은 마티스만이 아니야!"』 (잭 플램, Matisse and Picasso : The Story of their Rivalry and Friendship 중 일부 발췌)

둘 사이에 끊임없는 신경전이 있었다지만, 아무리 그래도 꽤 유치한 구석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가 하면, 마티스는 어떤 전시든 자기 그림이 피카소 그림과 나란히 걸리는 일을 싫어했다고 합니다. 자신만의 강렬함이 피카소의 자유분방함에 묻힌다고 생각했을까요. 함께 그림을 걸 수밖에 없는 전시라면, 마티스는 피카소가 쓰는 액자를 알아낸 뒤 이보다 더 화려한 액자를 구하려고 했다는 말도 있습니다.

서로에게 찬사, 동반자 색도 품게 돼
앙리 마티스
파블로 피카소
"딱 한 사람만 나를 평가할 권리가 있다. 바로 피카소다."
앙리 마티스
"모든 것을 두루 생각해봤는데, 오직 마티스 밖에 없었다."
파블로 피카소

둘의 관계는 시간이 흐를수록 경쟁자만큼이나 동반자의 색도 띠게 됩니다. 따지고 보면 두 사람은 서로에게 고마워해야 할 관계였습니다. 같은 시대에 이런 거장 두 명이 함께 사는 건 흔치 않은 일입니다.

앙리 마티스, 초록색 띠
파블로 피카소, 우는 여인

마티스는 1954년 11월에 눈을 감는데요.

"내가 죽은 이후에도 내 그림과 피카소의 그림을 함께 걸어두지 말게. 불꽃같이 강렬하고 번득이는 그의 작품 옆에서 내 작품이 초라해 보이지 않도록…." 이쯤 피카소를 향한 고백과 함께 사실상의 찬사를 남겼다고 합니다.

피카소는 마티스의 죽음을 가장 먼저 알게 된 사람 중 한 명입니다. 그는 소식을 들은 후 그저 창밖을 보며 "마티스가 죽었어…. 마티스가 죽었다고…"라고 한참을 중얼거렸다고 합니다.

"당시 마티스와 내가 작업하고 있는 것은 그게 무엇이든 나란히 놓고 견줘볼 수 있다. 나는 누구보다 더 주의 깊게 마티스의 그림을 본 사람이다. 마티스는 누구보다 더 주의 깊게 내 그림을 본 사람이다." 마티스가 죽은 뒤 19년 후인 1973년 4월 세상을 떠난 피카소가 마티스에 대해 남긴 찬사였습니다.

〈후암동 미술관 읽는 순서(연재 중)〉

1)천사가 이렇게까지 운다고? 무섭게 왜 그래[후암동 미술관-조토 편] - 르네상스 선구자(2022. 7. 2.)

2)뻥 아냐, 600년전인데 이 정도 ‘입체 그림’ 있었다[후암동 미술관-마사초 편] - 원근법 선구자(2022. 8. 27)

3)세계서 가장 유명한 이 ‘레이저 눈빛’, 그것은 사랑?[후암동 미술관-얀 반 에이크 편] - 유화 선구자 (2022.5.21.)

4)‘레드벨벳’도 춤추게 한 이 화가의 정체…"악마의 아들? 나 원 참" [후암동 미술관-보스 편] - 초현실주의 선구자 (2022.5.28.)

5)아리따운 금발 여인, 외간남자 목을 베고 있는거야?[후암동 미술관-카라바조 편] - 바로크 선구자 (2022.6.11.)

6)표류 D+13, 왜 몰랐지? 뗏목 위 널린 게 먹을건데[후암동 미술관-테오도르 제리코 편] - 낭만주의 선구자 (2022.5.14.)

7)“천사요? 데려오면 그려드리죠” 이놈의 똥고집[후암동 미술관-귀스타브 쿠르베 편] - 사실주의 선구자 (2022.5.7.)

8)벌거벗은 이 여자, 뭐 때문에 빤히 쳐다보나[후암동 미술관-에두아르 마네 편] - 인상주의 선구자(2022. 4. 23.)

9)“못 그렸는데 폼만 잡아” 욕먹던 이 그림, 3300억이요? [후암동 미술관-클로드 모네 편] - 인상주의 선구자⑵ (2022.4.30.)

10)‘점투성이’ 수상한 커플 정체는? [후암동 미술관-조르주 쇠라 편] - 신인상주의 선구자 (2022. 6. 25.)

11)반 고흐 최애작, 별밤·해바라기 아닌 ‘이 사람들’ [후암동 미술관-빈센트 반 고흐 편] - 표현주의 선구자 (2022.6.4.)

12)이 ‘사과’ 때문에 세상이 뒤집혔다, 도대체 왜?[후암동 미술관-폴 세잔 편] - 근대 회화 선구자(2022. 7.9.)

13)화끈한 키스, ‘이 여성’ 사르르 녹아내리다[후암동 미술관-구스타프 클림트 편] - 빈 분리파 선구자 (2022. 8. 13.)

14)나체 여인, 어쩌다 사자 득실대는 정글 한복판에[후암동 미술관-앙리 루소 편] - 근대 초현실주의 선구자 (2022. 7. 30.)

15)당신은 모르실거야, 키스하는 두 사람 왜 이 꼴인지[후암동 미술관-르네 마그리트 편] - 근대 초현실주의 심화편 (2022. 9. 3)

16)헐크색 피부 갖게 된 ‘이 여성’…이 놈의 ‘남편’ 때문에[후암동 미술관-앙리 마티스 편] - 야수주의 선구자 (2022. 7. 16.)

17)피카소도 ‘이 그림’에 “대박!” 감탄, 각성했다는데[후암동 미술관-피카소·마티스 편] - 야수주의·입체주의 심화 편 (2022. 9. 10)

18)잘생긴 법학 교수님, ‘이것’ 그렸더니 미술계 '발칵'[후암동 미술관-바실리 칸딘스키 편] - 추상회화 선구자 (2022.7. 23.)

19)“이건 나도 그리겠다!” 1순위 그림, 그 놀라운 비밀[후암동 미술관-몬드리안 편] - 추상회화 선구자⑵ (2022. 8. 6.)

20)권총도 채찍도 버텼는데, ‘이 남자’ 행동에 무너졌다[후암동 미술관-마리나 아브라모비치 편] - 행위예술 대모 (2022. 8. 20.)

21)이건희 컬렉션, 이 ‘다섯 작품’ 놓치지 마시라[후암동 미술관-‘어느 수집가의 초대’ 출장 편] - 전시 특집 (2022. 6. 18.)

yul@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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