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오후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한국집단에너지협회 주최로 열린 전력도매가격(SMP) 상한제 철회 촉구 집회에서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 |
[헤럴드경제=최준선 기자] 한국전력이 발전사로부터 전기를 구매하는 가격, 이른바 전력도매가격(SMP)에 상한을 두겠다는 정부 정책을 두고 논란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 정책은 막대한 적자를 기록 중인 한전의 재무건전성을 위해, 또 전기요금을 인상해야 하는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마련됐는데요. 어쩔 수 없이 시장가격보다 싼 가격에 전기를 팔아야 할 수도 있게 된 민간 발전사들은 강하게 반발하고 있습니다.
일반 전기 소비자 입장에선 SMP 상한제를 어떻게 바라볼 수 있을까요? 전기요금 인상 부담을 덜기 위한 제도라고 하니, 각 가계 사정에는 긍정적이라고 보면 될까요? 또 한전의 재무부담을 줄인다고 하는데, 한전에 투입될 세금이 줄어든다는 측면에서 반길 일일까요?
여러 시각이 있지만, 최소 기후변화 대응과 탄소 중립 측면에서는 다소 후퇴하는 정책이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습니다. SMP 상한제가 불편한 것은 모든 발전 사업자들이 마찬가지이겠지만, 그 중에서도 특히 탄소 배출량이 적은 신재생에너지나 LNG 발전사들이 더 많은 피해를 볼 것으로 예상되거든요. 이름만 들어도 복잡한 SMP 상한제. 오늘 [지구, 뭐래?]가 차근차근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논란의 시작은 지난달 24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이날 산업통상자원부는‘전력거래가격 상한에 관한 고시’ 개정안을 행정예고했는데, SMP가 비정상적으로 상승할 경우 한시적으로 가격 상한을 두는 ‘긴급정산상한가격 제도’가 핵심이었습니다.
SMP란 전력 도매가격을 말해요. 한전은 전력을 생산한 발전사들로부터 전력을 사들여 소비자에게 판매하는데, 전력을 사들이면서 치르는 정산금을 SMP를 토대로 계산하죠. SMP가 급등하면 한전이 발전사들에 제공할 정산금도 급증하는 구조입니다.
구체적으로는, 직전 3개월 간의 SMP 평균이 과거 10년간 월별 SMP 평균값의 상위 10%에 해당할 경우 1개월간 적용하게 되는데, 상한 가격은 평시 수준인 10년 가중평균 SMP의 1.25배 수준으로 정했습니다.
지난달 24일 기준 전력거래소가 추산한 과거 10년간 월별 SMP 평균값의 상위 10%는 킬로와트시(㎾h)당 155.8원이었어요. 10년 가중평균 SMP에 1.25를 곱한 가격은 132.58원이고요. 이때부터 상한제가 적용됐다고 가정한다면, 연료 비용이 아무리 높아지더라도 SMP는 한달 간 132.58원으로 고정되겠죠. 당시 SMP 가중평균값은 140.86원이었습니다. 즉, 발전사들은 상한제 때문에 전기를 ㎾h당 약 8.3원씩 더 싸게 팔아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된 겁니다.
물론 SMP 외에도 발전사의 적정 수익을 보장하기 위한 여러 장치들이 있어요. 일단 실제 전력 생산에 든 연료비가 SMP 상한 가격보다 높은 발전사업자들에 대해서는 연료비를 보상해주기로 했습니다. 이밖에 용량 정산금(발전사업자가 발전기 설치비 등 고정비를 회수할 수 있도록 공급가능용량에 대해 지급하는 정산금)과 기타 정산금도 제한 없이 지급하기로 했고요.
하지만 시장 가격이 가파르게 상승하는 비정상적인 상황에서만큼은, 단순히 시장 가격에 따라서만 돈을 벌어가는 걸 포기하라는 게 이번 개정안의 골자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발전사들 입장에선 불만일 수밖에 없는 정책이에요.
논란이 예상됨에도 정부가 이런 정책을 발표한 건 왜일까요. 역대급 적자를 기록하고 있는 한전의 전력 구매비용 부담을 완화시켜주려는 것이 주된 이유라고 업계는 보고 있습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수요 회복으로 수급이 불안한 상황에서 러시아·우크라이나 사태까지 벌어지자 발전 원료인 국제 연료 가격을 급등하고 있습니다. 실제 지난달 SMP는 ㎾h당 202.11원을 기록해 처음으로 200원선을 돌파했죠. 지난해 동월(76.35원)보다 164.7%나 급등한 가격입니다.
2020년 1월 이후 월별 가중평균 SMP(육지+제주 지역 합계) 변동 현황 [전력통계정보시스템] |
‘연료 가격이 높아지고 그에 따라 전력 구매비용이 높아지면, 한전도 전기요금을 인상해서 받으면 되는 것 아냐?’ 생각하실 수도 있어요. 하지만 그렇지 않아도 최근 물가 상승 압박이 높은 상황에서, 정부로서는 전기요금 인상에 나서는 것이 부담인 상황입니다.
사실 한전도 전기요금을 높이는 일에서 완전히 손을 놓고 있던 건 아니었어요. 정부와의 협의 아래, 발전 연료비의 변동 상황을 3개월 주기로 전기요금에 반영하는 연료비 연동제를 지난해부터 도입했거든요. 하지만 팬데믹 국면에서 경제 주체들이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는 이유로, 올해 1분기와 2분기 연속 적용을 유보하는 등 정부는 이 제도를 제대로 적용하지 않고 있습니다.
결국.. 모든 부담을 떠안은 한전은 지난해 1분기 연결 기준, 7조7869억원이라는 천문학적인 영업손실을 기록했습니다. 분기 기준 최대 규모의 적자였고, 지난해 연간 적자액(5조8601억원)보다도 2조원 가까이 많아요. 시장에선 한전이 올해 20조~30조원의 적자를 기록하고, 내년에는 자본잠식에 빠질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한전이 어렵다고 당장 전기요금을 인상할 수는 없으니, 한전이 발전사로부터 전력을 구매하는 비용만이라도 너무 비싸지지 않게 관리해보자는 게 SMP 상한제의 취지라고 할 수 있어요.
SMP 상한제에 가장 강력하게 반대하는 것은 당연히 민간 발전사들입니다. 한전의 재정건정성 문제과 전기요금 인상에 대한 부담을, 애꿎은 민간 발전사들이 같이 짊어지게 됐기 때문이죠.
곽영주 대한태양광발전사업자협회 회장은 지난 8일 집회를 통해 “한전 적자의 근본 원인은 오랫동안 누적된 전기요금 동결”이라며 “(SMP 상한제가 아닌) 전기요금을 인상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꼬집었습니다. SMP 상한제를 통해 시장가격을 통제하려는 건, 민간발전사의 경영을 통제하는 사회주의적 발상이라는 거죠.
하지만 SMP 상한제에 반대하는 것은 비단 민간 발전사뿐만이 아닙니다. 신재생에너지 등 탄소 배출량이 낮은 에너지원을 확대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내고 있는 환경단체들도 SMP 상한제를 부정적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우선 첫 번째. 발전사업자들의 기대 수익이 낮아진 탓에, 발전 원가가 저렴한 석탄 발전의 비중이 늘어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옵니다. 한전의 발전자회사가 국회예산정책처에 제출한 전원별 발전 원가를 살펴 보면, 지난 2020년 기준 유연탄은 ㎾h당 83.3원, LNG는 126.0원, 신재생(태양광, 풍력 등)은 264.6원으로 석탄이 크게 저렴합니다.
2020년 1월 이후 월별 연료비용 변동 현황(원자력=원/㎾h, 유연탄·무연탄·LNG=원/ton, 유류=원/㎘) [전력통계정보시스템] |
두 번째. SMP 상한제가 시행된다 해도, 석탄 발전사들은 신재생에너지 및 LNG 사업자들에 비해 타격이 적을 것이라는 분석이 있습니다. 한전은 발전 자회사와 민간 석탄 발전소에 대해서는 ‘정산조정계수’라는 장치를 통해 적정 이윤을 보장해주고 있기 때문이죠. 정산조정계수의 개념을 이해하기 위해, 잠시 복잡한 이야기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감사원 ‘전력거래 운영실태’(2019) 보고서] |
다시 본론으로 돌아올게요. 한전의 발전 자회사들과 민간 석탄발전사들은 정산조정계수라는 ‘안전망’ 위에서 정산금을 받고 있습니다. 요즘처럼 SMP가 높아져 있을 땐 다소 억울함이 있겠지만, 이 역시 안전망을 운영하는 일환이죠.
반면 석탄을 제외한 민간 발전사들은 한전 자회사들에게 주어진 것과 같은 안전망이 없습니다. 연료비가 떨어지면 떨어지는대로 싸게 팔아야 했고, 오를 때에는 바짝 벌어야 했죠. 하지만 연료비가 떨어질 때의 안전망은 쥐어주지 않은 채, 오를 때 바짝 벌 수 있는 기회는 통제하겠다고 하니.. 볼멘소리가 나올 수 밖에요. LNG나 신재생에너지 등 저탄소 발전 사업자들의 발전 유인이 줄어들면, 그만큼 탄소 중립 달성은 멀어지게 됩니다.
한국의 가정용 전기요금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중에서도 최저 수준입니다. 국제에너지기구(IEA) 자료를 보면 2019년 기준 한국의 가정용 전기요금은 메가와트시(㎿h)당 102.4달러였는데, OECD 평균(172.8달러)의 59%에 그치죠. 미국(130.4달러)의 79%, 프랑스(199.1달러)의 51%, 일본(253.5달러)의 40%, 독일(333.9달러)의 31% 수준이고요. 우리나라 보다 싼 나라는 산유국인 멕시코 뿐이었습니다.
전기요금이 저렴하니 전기를 ‘물 쓰듯’ 합니다. 한국의 1인당 전력 소비량은 1만1082㎾h로 OECD 회원 38개국 중 8위였죠. OECD 평균보다 1.4배 많고, 세계 평균보다는 3.4배 높은 수치입니다.
한전도 전기요금을 인상해야 할 당위성을 모르지 않고, 실제 3분기에는 요금 인상이 단행돼야 한다고 정부에 요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연료비 조정단가는 인상 폭이 직전 분기 대비 ㎾h당 최대 ±3원 수준이라, 턱없이 낮은 전기 요금을 정상화하는 수단으로는 부족하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이런 상황 속에 불거진 SMP 상한제 논란을 두고, 환경단체의 한 관계자는 이렇게 지적합니다.
“왜 아직도 전기요금이 이렇게 낮은지, 빨리 정상화하려면 어떻게 해야할지 국민적 논의가 필요한 때인데.. 조금이라도 인상 시기를 늦추려고 친환경 발전사들의 몫까지 뺏어오는 SMP 상한제는 불필요한 사회적 비용만 늘리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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