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건은 아예 없고, 나오는 것이 있더라도 집도 안보고 가계약금부터 보내서 잡는다고 하네요. 이사하는 게 하늘의 별따기가 됐습니다” 자녀 학교 문제로 서울 목동에 전셋집을 알아보던 지인 A씨의 하소연이다. A씨는 한달 넘게 손품, 발품을 팔며 전세물건을 알아봤지만 결국 포기했다. 아예 집을 사서라도 이사해볼까 했지만 웬만한 30평대 아파트도 대출이 안되는 15억원이 넘어 엄두도 못냈다. A씨는 몇년 전 강남이나 목동에 집을 사자는 부인의 말을 듣지 않아 이렇게 된 것에 땅을 치며 후회하고 있다.
남산서울타워 전망대에서 바라본 서울 시내 |
또 다른 지인 B씨는 올해 자녀가 대학을 입학해 최근 가을 전세 만기에 맞춰 서울에서 경기도 용인쪽으로 이사할 집을 알아보았다. 하지만 전세, 월세할 것 없이 구하기 쉽지 않았다. 10월에 전세 만기가 돌아와 고민하던 차에 중개업소에서 반전세가 딱 하나 나왔다고 밤늦게 알려왔다. B씨는 계약 대기자가 많다는 말에 집도 보지 않고 바로 가계약금을 보냈다. 살던 집의 만기가 몇주 남았지만 바로 이사했다. 기존에 살던 서울 전세 역시 내놓자마자 나갔다고 한다.
최근 전세 시장에서 이같은 사례는 아주 흔하다. 자고나면 수천, 수억원씩 전세가격이 오른다. 그마저도 매물은 씨가 말랐고 부르는 게 값이다. 통상적으로 재건축 후 신축아파트의 전세는 전세가격이 싼 편이지만 요즘은 상황이 다르다. 실제 최근 입주를 시작한 강남의 한 재건축아파트 신축(40평대)은 한달 사이 전셋값이 3억원 가량 오르기도 했다. 이를 중개한 한 공인중개사는 “집주인이 전화를 하고 계약자와 계약서를 맺기 위해 오는 1시간 사이에도 5000만원이 올랐다”고 전했다. 귀를 의심했지만 이는 사실이었다.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초기엔 집값 잡기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보유세, 거래세(양도세·취득세) 모두 올렸고 재건축 규제 등 각종 규제도 여전하다. 하지만 집값은 잡지 못했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올해 서울에서 거래된 아파트 평균 실거래가는 8억4400만원으로 현 정부 출범 전인 2016년 대비 58% 급등했다. 정부가 23번의 대책을 통해 세금 강화와 각종 규제책을 쏟아냈지만 ‘무용지물’이었다.
이제 ‘전세시장’으로 옮겨 붙였다. 전세대란, 전세파동이란 말이 심심찮게 등장한다. 서울 아파트 전세값은 지난 12일 한국감정원 기준으로 68주 연속 상승하고 있으며 전세 수급물량을 보여주는 KB국민은행의 전세수급지수(192) 역시 역대 최고치(2013년 196.9) 경신을 앞두고 있다. 이 지수는 0~200 범위로 100을 초과할수록 공급이 부족하다는 뜻이다. 이처럼 통계와 현실이 모두 전세대란을 보여주고 있다. 전세를 잡기 위해 제비뽑기까지 해야하는 소설같은 세상이 됐다.
어찌보면 예견된 일이었다. 세금 혜택이나 대출을 받기 위한 집주인의 실거주 요건이 강화됐고, 주택임대차보호법 영향으로 갱신권을 행사하며 눌러앉는 이들이 늘면서 신규 전세 매물이 사라지고 있다. 부동산 정책을 총괄하는 홍남기 부총리조차 본인이 전세로 살던 서울 마포구 아파트를 비워야 하고, 매도 계약까지 한 의왕시 아파트는 세입자의 계약갱신요구로 팔지 못하게 된 ‘웃픈 상황’에 처하게 됐다.
이쯤되면 정부에서 어김없이 나오는 말이 있다. “시장을 예의주시하고 있으며 필요시 추가 대책을 내놓겠다”. 홍 부총리 역시 이말을 언급했다. 벌써부터 표준임대료 도입, 전월세상한제 신규계약 적용 등의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하지만 시장의 반응은 싸늘하다. 눈앞에 닥친 전세난을 해결하기엔 역부족이고 또다른 부작용을 불러올까 두려워서다. 이미 많은 국민이 임차인 보호라는 임대차보호법이 불러온 작금의 혼란을 직간접적으로 겪고 있기도 하다.
청와대 국민청원에는 정부의 부동산 대책을 성토하는 글이 수시로 올라온다. 온라인 클릭만 몇번해봐도 “정부는 차라리 아무것도 하지 마라”는 글이 심심찮게 나온다. 오죽했으면 그럴까 싶다. 이것이 정부가 그렇게 강조하던 ‘국민주거안정’인지 되묻고 싶다.
권남근 헤럴드경제 건설부동산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