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위가격’보다 높아진 ‘평균가격’
서울 평균 이하 주택이 더 많은 시대 진입
[헤럴드경제=박일한 기자] 우리나라에 주택이 5채만 있다고 가정하자. 가장 비싼 A는 30억원이다. 그리고 B는 10억원, C는 5억원, D는 3억원, E는 2억원이라고 하자. 우리나라 ‘평균 주택가격’은 얼마일까? 10억원이다. 전체 집값을 더해 5로 나눈 가격이다. 평균만 놓고 보면 우리나라 국민은 대부분 10억원 주택을 가진 부자다.
남산서울타워 전망대에서 한 시민이 서울시내를 바라보고 있다. [헤럴드경제DB] |
하지만 이는 실상과 다르다. 우리나라 국민의 절반 이상은 5억원 이하 주택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이른바 ‘평균의 착시’다.
그래서 ‘중위가격’이 중요한 지표로 활용된다. 중앙가격이라고도 불리는 중위가격은 전체 주택을 순서대로 나열했을 때 가장 중앙에 위치하는 가격이다. 바로 C의 가격인 5억원이 중위가격이다. 고가주택과 저가주택을 모두 더해 주택 수로 나누는 평균가격보다 시장 흐름을 이해하는 데 더 유용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평균가격은 양극화가 심화하는 상황에서 현실을 왜곡해 보여줄 가능성이 커서다.
KB국민은행이 지난 28일 발표한 ‘9월 KB주택가격동향’ 자료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평균가격은 10억312만원으로 사상 처음 10억원을 돌파했다. 올 1월 8억5951만원이던 데서 매월 급등하며 8개월만에 15%(1억3315만원)나 올랐다.
궁금한 건 중위가격 동향이다. 평균가격 흐름과 비슷한 곡선을 그리기 마련인데 최근 분위기는 다르다. 9월 서울 아파트 중위가격은 9억2017만원으로 전월(9억2152만원)보다 떨어졌다. 서울 아파트 중위가격은 올 7월 9억2787만원을 정점으로 두 달 연속 하락세다. 올 1월(9억1216만원)과 비교해 0.8% 변동률로 거의 오르지 않았다.
서울 아파트는 늘 중위가격이 평균가격보다 몇천만원씩 높았다. 서울 아파트 분포도를 따지면 평균가격 이하 주택이 평균 이상보다 많았다는 의미다. 그런데 올 7월 상황이 바뀌었다.
7월 서울 아파트 평균가격은 9억5033만원으로 전월(9억2509만원) 보다 2524만원 급등하면서, 단번에 중위가격(9억2787만원)을 넘어섰다. 서울에 평균 이상 아파트가 많아지기 시작했다는 거다. 이후 격차는 더 벌어졌다.
9월 서울 아파트 평균가격은 10억312만원으로 중위가격(9억2017만원) 보다 8295원이나 높아졌다. 서울 주택을 순서대로 나열했을 때 평균보다 비싼 집들이 훨씬 많아지고 있다는 의미다.
서울 아파트의 평균가격이 중위가격 보다 높아졌다는 건 시사점이 많다.
먼저 전체 집값이 골고루 상승했다는 게 아니라 고가 주택 위주로 상승세가 컸다는 뜻이다. 정부의 강력한 규제로 거래는 잘 이뤄지지 못하고 있는데, 강남지역 등 인기지역 위주로 ‘신고가’를 계속 경신하면서 비싼 집만 계속 올랐다는 이야기다.
이걸 보여주는 지표가 있다. 우리나라 시가총액 상위 50개 단지의 아파트 시가총액 변동률을 지수화한 ‘KB선도아파트50지수’(이하 KB50지수)다. 강남권, 마포, 용산 등의 고가 아파트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이 지수는 9월 122.3으로 전월 대비 2.49% 올랐다. 올 1월부터 9월까지 누계로 17.08%나 뛰어 작년 한해(11.81%) 오른 것보다 상승폭이 더 크다. 고가 아파트가 폭등하면서 평균을 끌어올리고 있다는 이야기다.
올해 서울 아파트 중위가격 변동이 미미했다는 건 정부의 각종 부동산 규제가 중저가 주택에 더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걸 의미한다. 역대 가장 강력한 대출규제는 무주택 서민들이 새 집을 사는 걸 꺼리게 만들었다. 전체 주택 거래량이 감소하고, 중저가 위주 주택은 큰 변동이 없는데, 강남 등 희소성 높아진 인기지역 매물만 비싸게 팔리고 있는 상황이다.
‘서울 아파트 평균 10억원 시대’는 대출없이 수십억원 아파트를 살 수 있는 현금부자들로 인한 ‘평균의 착시’일 수 있다.
문재인 정부 들어 더 심각해진 ‘양극화’는 이제 서울 집값 분포 흐름을 본격적으로 바꿔놓고 있다.고가주택의 더 높은 가격 상승세로 이제 분포상 평균 이하의 집이 더 많아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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