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정 전 헌법재판관 후보자 기소했던 검사는 비수사 부서로 인사, 결국 사직
조국 전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 [연합] |
[헤럴드경제=좌영길 기자] “이미선 헌법재판관 후보 부부를 불법주식투기꾼으로 단정하고 맹비난을 퍼부었던 정치인, 기자, 평론가들은 사과해야 하지 않는가.”
조국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6일 자신의 페이스북 계정에 적은 글입니다. 인사청문회를 가리켜 “후보자의 철학이나, 업무능력보다는 먼지털이식 흠집내기로 가기 일쑤”라며 도덕성 검증과 정책검증을 나눠 전자는 비공개, 후자는 공개로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의견도 냈습니다.
원론적으로 잘못된 말이 아닙니다. 이미선 헌법재판관의 주식 취득 과정을 놓고 많은 논란이 제기됐지만, 이 재판관의 배우자인 오충진 변호사가 해명을 했고, 실제 불법이 드러난 게 없습니다. 일부 야당의원과 언론에서 사실관계를 왜곡해 무리한 의혹을 제기한 사례도 있었습니다. 이미선 재판관이 판사로 재직하면서 재판당사자와 관계된 주식투자를 했다는 의혹은 허위였고, 비판 받을 수 있는 대목입니다.
조 전 수석의 이 언급은, 의도했건 그렇지 않았건 본인의 업무와도 직결됩니다. 이미선 재판관은 대통령 지명으로 후보자가 된 사례였고, 공직자 인사검증은 민정수석 비서관의 일입니다. 이미선 재판관의 주식 보유 과정에 불법이 없으니 사과하라는 말은 결과적으로 민정수석으로서 실책이 없었다고 강조한 얘기도 됩니다.
▶절반만 옳은 이야기, 이유정과 이미선
하지만 조 전 수석의 이런 발언은 절반만 맞는 말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미선 재판관 이전에, 헌법재판관에 지명됐던 이유정 변호사가 주식 투자 의혹으로 낙마하고, 검찰 수사를 받고 기소되는 일이 있었는데 이 사안은 빼고 얘기를 꺼냈기 때문입니다. 이유정 변호사 역시 대통령 지명으로 헌법재판관 후보자가 됐었습니다.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이미선 부장판사가 헌법재판관에 지명됐는데, 어떤 자질을 가지고 있는지 혹은 도덕적 흠은 없는지 해명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부당한 게 아닙니다. 더군다나 정부 출범 초기 지명된 이유정 변호사가 주식 투자 때문에 피고인 신분으로 법정에 서게 된 직전 사례가 있는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헌법재판관 후보자가 청문회 과정에서 제기된 의혹 때문에 실제 기소되고 재판을 받는 것은 유례가 없는 일로, ‘인사 참사’라 해도 할 말이 없는 사안입니다.
이유정 변호사는 2013년 ‘가짜 백수오’ 논란을 빚었던 내츄럴엔도택 주식을 상장하기 5개월 전에 1만주를 사들였습니다. 검찰은 이 변호사가 내츄럴엔도텍의 건강식품이 가짜 백수오로 만들어졌다는 한국소비자원 발표가 나오기 직전 주식 일부를 매도해 부당하게 손실을 회피한 것으로 보고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를 적용해 기소했습니다.
이미선 재판관 역시 미공개 정보 이용 의혹을 받았습니다. 이미선 재판관 부부는 상장 전 주식인 이테크건설 17억여원, 삼광글라스 6억여원을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이 두 회사가 1,2대 주주로 있는 열병합 발전기업 ‘군장에너지’의 상장 추진 정보를 미리 알고 투자한 게 아니냐는 게 당시 의혹의 골자였습니다. 주식거래 일부는 이미선 재판관 명의로 이뤄졌지만, 실제 거래는 배우자인 오충진 변호사가 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오충진 변호사는 자신의 페이스북 계정을 신설해 일일이 해명을 했고, 한국거래소 역시 조사를 통해 ‘혐의 없음’으로 결론을 냈습니다.
이유정 변호사 선례가 있었고, 이미선 재판관이 변호사가 아닌 현직 부장판사 신분이라는 점을 감안했을 때 더더욱 주식 보유 과정을 검증해야 할 필요성이 있었습니다. 이미선 재판관 부부가 신고했던 42억원대 재산 중 83%가 주식이었습니다. 재산의 대부분을 주식에 ‘몰빵’한 셈입니다. 과연 이러한 의심은 ‘결과적으로 사실이 아니었다’고 해서 부당한 것이었을까요. 의심을 하지 않으면 검증도 할 수 없습니다. 2016년 구속기소된 진경준 전 검사장의 부적절한 주식거래 내역도 고위공직자 재산 신고내용을 의심한 한겨레 신문의 취재를 시작으로 밝혀졌습니다. 진경준 사건에서 법리적으로 뇌물이 될 수 없다는 무죄 판결이 내려졌지만, 최초 보도를 포함해 쏟아져 나온 수많은 의혹 제기가 무의미하다고 볼 수는 없을 겁니다.
이유정 전 헌법재판관 후보자 [연합] |
▶이유정 변호사, ‘여성이라서 부당한 수사’?…기소한 검사는 사직
조 전 수석은 이미선 재판관에 대한 의혹이 제기된 원인을 ‘지방대 출신 40대 여성 판사라서’라고 적었습니다. 이 논리는 현재 1심 재판을 받고 있는 이유정 변호사가 페이스북을 통해 주장했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이유정 변호사 역시 자신이 법조계 비주류인 여성이라는 이유로 부당한 공격을 받았다고, 억울하게 기소당했다고 적었습니다.
하지만 이 논리는 설득력이 떨어집니다. 오히려 검찰이 정치적이라면, 정권 초기 대통령이 지명한 헌법재판관 후보를 단지 비서울대 출신 여성이라는 이유로 기소할 이유는 더더욱 없을 겁니다. 유무죄 결론은 재판이 끝나봐야 나오는 것이지만, 적어도 아무 근거 없이 특정 의도를 가지고 기소했다기에는 무리가 있는 사안입니다. 이유정 변호사를 기소한 서울남부지검은 금융범죄에 특화된 검찰청이기도 합니다.
오히려 이유정 변호사를 기소한 증권범죄합동수사단 단장 박광배 부장검사는 최근 검찰 인사에서 서울시 법률자문으로 발령을 받았습니다. 대검 수사지원과장을 지냈고, 부패수사에서 공적을 인정받아 대통령 표창도 받았던 금융수사 전문가가 공교롭게도 수사업무에서 배제된 셈입니다. 결국 박 부장검사는 사표를 냈습니다.
▶답변 실종됐던 이미선 청문회, ‘조국 청문회’는 어떨까
이미선 재판관은 후보자로서 여성 혹은 비주류라서 부당한 공격을 받은 게 아닙니다. 조 전 수석이 표현한 것처럼 ‘강원도 화천 이발사의 딸’이라서는 더더욱 아닙니다. 출신이 어떻든 현직 부장판사-대형로펌 변호사 부부를 마치 사회적 약자인 것처럼 묘사하는 것은 사안의 본질과 무관한 언급입니다.
거액의 주식 투자 내역을 해명한 것은 후보자 본인이 아니라, 배우자였습니다. 이미선 재판관은 청문회에서 ‘남편이 알아서 했기 때문에 모른다’고 했지만, 정상적인 공직 후보자라면 ‘남편을 통해 알아보니 이렇다고 하더라’는 답을 했어야 합니다.
이미선 재판관은 청문회를 거쳤지만, 누구도 어떤 후보자인지 전혀 알 수가 없었습니다. 가령 금태섭 의원이 난민 문제에 대한 생각을 물었을 때에는 ‘진지하게 생각을 못했다’고 했습니다. 이 후보자에게 우호적이었던 박지원 의원은 “양심적 병역거부자 대체복무제 이것도 답변을 유보하고, 특히 군대 내 동성애자 처벌법 이것도 답변을 유보하면 동성혼은 찬성하느냐, 최저임금, 종교인 과세, 문제가 되는 것은 전부 답변을 유보하면 어떻게 되는 것이냐”고 지적했습니다. 심지어 이춘석 의원이 “후보자가 이 자리에 서게 된 이유를 설명해 보라”고 한 정도의 질문에도 “후보자 입장에서 지명된 이유를 구체적으로 밝히는 것은 적절하지 못하다고 생각한다”고 답했습니다. 헌법재판관은 한 번 임명되면 6년의 임기를 보장받고, 업무 특성상 자신의 견해를 외부에 밝힐 일도 없습니다. 사실상 인사청문회는 국민이 헌법재판관 후보자가 어떤 자격을 갖추고 있는지 알 수 있는 유일한 기회이기도 합니다.
이미선 재판관 청문회를 언급한 조 전 수석은 조만간 국회 인사청문회를 받게될 것으로 보입니다. 개각이 단행되면 법무부장관에 지명될 것이라는 보도가 나왔고, 청와대도 명확하게 부인하지 않고 있습니다. 조 전 수석이 말한 청문회의 문제점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닙니다. 꼬투리잡기나 신상털이식 질의도 많고, 무분별한 의혹이 제기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법률에 의해 정해진 절차인 이상, 조 전 수석은 성실히 답변할 의무가 있습니다. 이미선 재판관에 대한 의구심을 ‘부당한 공격’으로 치환했던 일이 자신의 청문회에서 반복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대통령의 인사권을 견제하기 위한 인사청문회 제도는 김대중 정부 시절인 2000년 6월 도입됐습니다.
jyg97@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