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개발ㆍ재건축 사업에서 분양 계약을 체결하지 않는 조합원들에게 현금청산 권리를 법으로 보장하는 내용의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이하 도정법) 개정안이 국회 통과를 앞두고 있어 일선 정비사업지에 적잖은 부작용이 우려되고 있다.
이번 조치는 분양신청을 했다가 갑자기 사정이 생겨 계약할 수 없게 된 일부 선의의 피해자를 구제하는 긍정적인 효과 보다는 이른바 외지 투자자들의 퇴로를 마련해줘 정비사업의 지연과 파행을 야기하는 부작용이 클 것이란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사업성 낮아진 정비사업지 ‘투자목적’ 외지인 사실상 무위험투자= 이번 도정법 개정안은 재개발ㆍ재건축 등 정비사업에 지분을투자한 뒤 분양신청을 해놓고 부동산 시장 상황이 나빠지자 계약을 미뤄 온 조합원들에게 가장 큰 혜택을 가져다줄 것으로 보인다. 통상 이런 미계약 조합원은 해당 사업지역에서 거주한 주민보다 외지에서 유입된 투자자가 많다는 점에서 외지투자자들의 투자 리스크를 크게 줄여줬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정비사업지에 지분을 투자하더라도 시장 상황을 판단해가면서 사업 후반부에 분양 계약과 현금 청산의 두가지 선택이 모두 가능하다는 점은 사실상 무위험 투자에 가깝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문제는 이런 혜택이 고스란히 정상적인 절차에 따라 계약한 대다수 조합원들에게 손해로 돌아가게 된다는 점이다. 관리처분인가 이후에 이뤄지는 분양계약의 특성상 계약을 포기하고 현금청산을 요구하는 조합원들이 나오면 새로 관리처분계획을 세워 인가를 받아야 해 사업 지연에 따른 금융비용이 불어나기 때문이다.
▶너도나도 현금청산시 수도권 정비사업 연쇄 지연 및 파행 우려= 이번 개정안의 보다 큰 부작용은 개정 조항이 이미 진행 중인 도시재정비사업에까지 소급적용된다는 점에서 부동산 경기 침체로 사업이 지연되고 있는 수도권 정비사업지의 연쇄 지연 및 파행을 낳을 수 있다는 점이다. 개발이익이 기대되는 인기 사업지구에서는 현금을 쥐어주고 이런 조합원을 속히 내쫓는 것이 이익이 될지 몰라도 경기침체로 난관에 봉착한 대부분 수도권 사업지구에는 커다란 악재로 작용할 소지가 크다. 실제 최근 난항을 겪고 있는 경기도 성남시 1단계 재개발 사업은 분양신청을 해놓고도 계약을 미루는 권리자가 9.2%에 달하는데 이 중 상당수는 외지에서 온 투자자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들이 대거 현금 청산에 나서면 남은 권리자들의 재정 부담이 커지는 것은 물론 사업이 지연되는 파행도 피하기 힘들어진다. 결과적으로 정비사업 반대파들에게 힘을 실어주는 형국이 됐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이와 함께 관리처분인가 뒤에도 현금청산을 보장한 점은 법리적 논란을 낳을 수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조합원 분양계약은 분담금 규모나 동호수 배정 등의 모든 사업설계를 규정한 관리처분계획 인가 이후에 이뤄지는데, 법률적으로 관리처분계획의 확정은 사실상 분양계약의 성립과 마찬가지로 볼 수 있다는 견해가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관리처분인가는 분양 대상자의 의무와 권리에 대한 법적 효력이 발생하는 단계여서 형식적 절차인 분양계약 체결을 하지 않더라도 이 단계부터는 이미 계약이 성립된 것으로 봐야 한다는 주장이다.
<정순식 기자@sunheraldbiz>sun@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