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행 이후에는 자신의 행위가 잔혹했지만 필요했다고 주장하는 등 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자취를 감추었다가 최근 일부 유럽에서 다시 형성되고 있는 극우적 보수주의자의 일그러진 생명 경시관과 편협한 민족주의자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유럽에서는 지난 1930년대 경제난이 극심해지면서 국가주의와 민족(인종)주의가 극단으로 치달으면서 나치즘 같은 기형적 이데올로기를 낳아 세계대전이라는 파국을 가져온 바 있으나 종전 이후 이에 대한 대대적인 반성이 진행됐다. 하지만 최근 세계화에 대한 반발 속에 신나치즘 같은 쇼비니즘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영국의 일간 텔레그래프는 24일(현지시간) 브레이비크가 범행 2시간40분 전에 ‘2083: 유럽 독립선언’이라는 선언문을 인터넷에 올려 페미니즘에 대한 혐오감을 피력하면서 한국과 일본처럼 가부장제가 확립돼야 한다고 주장했다고 보도했다.브레이비크는 선언문에서 1960년대부터 본격화된 여권 신장 운동 때문에 페미니즘이 득세했다고 주장하며 “가부장제 회복이 대안이며 일본이나 한국 모델이 해결책”이라고 말했다. 그는 한국과 일본이 보수주의와 민족주의에 가까운 것으로 본다며 유럽이 일본이나 한국같이 되는 것을 보고 싶다는 황당한 주장을 했다.
그는 또 이슬람 이민자에 의한 일자리 잠식 등을 비롯한 유럽의 다문화주의에 대한 분석과 함께 격렬한 비판을 가하는 한편 문화적 마르크시즘도 싸잡아 성토했다.
선언문은 오는 2083년까지 유럽 각국이 극우 보수정권으로 정권교체를 이뤄 무슬림 이민자를 내쫓아야 한다고 주장하며, 중동 이슬람 국가들을 제압할 새로운 유럽을 탄생시켜 기독교 문화를 바로세워야 한다는 것으로 압축된다고 이 신문은 전했다. 2차 세계대전 직전에 형성된 나치즘의 주장과 유사한 측면이 있다.
한편 브레이비크의 변호를 맡고 있는 게이르 리페스타 변호인은 앞서 23일 현지 방송을 통해 브레이비크가 자신의 행위가 잔혹했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필요한 것이었다는 말을 했다면서 그의 범행이 오랜 기간 계획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출처=브레이빅 블로그 |
노르웨이 뉴스통신사 NTB 등은 브레이비크가 범행 전에 1500쪽에 달하는 성명서를 남겼다면서 성명서는 그가 적어도 지난 2009년 가을부터 범행을 계획했음을 보여주고 있다고 전했다. 성명에는 특히 다문화주의와 이슬람 이민자에 대한 비판과 폭발물 입수 경위, 다수의 브레이비크 사진이 담겨 있다고 NTB는 전했다.
노르웨이 언론매체들은 브레이비크가 그 동안 인터넷 사이트 등에 올린 글들을 토대로 볼 때 그는 기독교 근본주의자에 가까운 보수적 기독교인이라고 평가했다. 주변에는 온라인 게임과 클래식 음악을 즐기는 평범한 금발의 젊은이로 알려져 있으나 속으로는 남몰래 테러를 구상해왔던 극우 민족주의자였던 셈이다.
그는 지난 2009년 채소 등을 재배하는 ‘지오팜’을 설립해 운영해왔으며 10여 년 전 가벼운 교통법규 위반으로 적발된 것 외에 별다른 범죄 경력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격클럽에 총기를 몇 정 등록한 바 있고, 비밀결사 조직인 ‘프리 메이슨’ 회원이라는 주장도 있으나, 범죄단체나 극우단체와의 연계는 드러난 바 없다.
하지만 그는 이슬람과 노르웨이 정치현실에 매우 비판적인 우파 민족주의자로 그의 어릴 때 친구는 브레이비크가 20대 후반부터 민족주의에 빠진 것으로 알고 있으며, 온라인에 논쟁적인 글들을 자주 올린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특히 브레이비크는 자신을 보수적 기독교인이자 민족주의자라고 소개하고 노르웨이의 다(多)문화주의에 강력 반대해왔다. 그는 또 이슬람 비판 성향의 뉴스와 논평들을 다루는 노르웨이 국내 사이트인 ‘도쿠멘트(Document.no)’에 많은 글을 썼는데 “언론이 이슬람을 제대로 비판하지 못한다”고 불만을 터뜨리기도 했다.
한 게시물에서 그는 “오늘날의 정치는 더이상 자본주의 대 사회주의 구도가 아니라 민족주의와 국제주의 간의 싸움”이라고 주장하면서 자신은 민족주의자들의 사고방식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그는 포용적인 이민정책에도 반대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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