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령(令)이 서지 않는다.”
동남권 신공항 입지평가 결과가 발표되는 30일, 정부가 또 다시 심각한 신뢰의 위기에 직면했다. 이명박 대통령 공약사항이었던 동남권 신공항 계획의 사실상 백지화를 놓고, 야당은 물론 여당 내부에서조차 “국민이 또 속았다는 기분이 많이 든다(이한구 의원)”는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나왔고, 정치평론가들은 “앞으로 굉장히 힘들어질 것(고성국 박사)”이라고 촌평했다. 여권의 텃밭이나 마찬가지인 영남 지역에선 현 정권과의 결별을 운운할 정도로 감정이 격화되고 있다.
대통령 선거 당시 표를 의식해 내세웠던 선심공약, 즉 ‘표(票)퓰리즘’ 정치의 후유증이 이제 정권 차원의 레임덕(권력 누수현상)을 재촉하고 있는 것이다.
정치권에서 이처럼 격한 반응이 나오는 것은 이명박 대통령의 ‘공약 뒤집기’가 이번이 처음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대통령은 앞서 국민의 동의를 구하지 않은 채 세종시 원안 고수 약속을 수정안 추진으로, 과학 비즈니스 벨트 충청권 약속을 원점 재점토로 돌려세웠다.
세종시와 과학벨트 공약 폐기는 ‘7ㆍ4ㆍ7(7%성장, 소득 4만달러, 7대강국)’ 이나 ‘비핵ㆍ개방ㆍ3000’ 등 외생변수의 영향을 받는 목표형 공약과는 달리 전적으로 정부의 선택과 의지에 달린 것으로, 대통령이 국민 앞에 한 약속을 가벼이 여기거나 표퓰리즘을 작정하지 않고서는 결정하기 어려운 선택들이다.
실제로 이 대통령은 지난 2월 신년방송좌담회에서 “선거유세에서는 충청도 표를 얻으려 관심이 많았다”고 실토했다.
청와대는 이에 대해 “역사의 평가와 국익을 고려한 힘든 결정이었다”고 방어막을 쳤지만, 국민통합의 책무를 진 위정자의 태도가 아니라는 지적이다.
고성국 정치평론가는 “국책사업은 국가가 하는 사업이다. 그것에 합당하는 필요가 경제적 효율성만 있는 것은 아니다” 면서 “경제성이 있으면 민간이 하지 왜 국가가 하나”고 반문했다.
그는 또 “탈당까지는 안 가겠지만 레임덕이 더 심해질 수 있다” 면서 “그동안 TK(대구ㆍ경북)에서는 기본적인 지지를 받았지만 이제는 이마저도 기대하기 어려울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한구 한나라당 의원도 “불신을 확대하는 대통령, 불균형과 사회갈등을 증폭시키는 대통령이라는 평가를 받을 것”이라며 “영남권 지지가 급속히 무너지면서 레임덕의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라고 했다.
한편 이번 기회에 대통령의 공약 남발과 번복에 따른 사회 갈등을 차단할 방안을 찾아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안병진 경희사이버대 미국학과 교수는 “미국에서도 ‘포크 배럴(pork-barrel. 이권법안을 둘러싼 정치게임)’이라고 해서 지역구 이슈들이 중앙 정부와 충돌하는 사안들이 많지만 서로간에 이해관계를 교환하고 토론하는 기제가 오랫동안 발달돼 있다”고 설명했다.
안 교수는 “우리도 이 문제를 제도를 통해 획기적으로 풀기는 어렵다” 면서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지금의 형태로는 문제 해결이 불가능하다. 대화하고 소통하는 정치력을 키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양춘병ㆍ이상화기자@madamr123> yang@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