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식 촬영부가 아닌 스탭이 스케치하듯 휴대폰으로 찍은 샷도 영화에 썼습니다. 보통 영화의 촬영현장이라고 하는 것은 숙련된 전문인력이 고가의 첨단 장비로 주도하는 하나의 권력이 지배한다고 볼 수 있는데 (스마트폰을 활용한 영화제작에선) 권력이 분산되고 수평적인 시스템이 만들어졌습니다“(박찬욱 감독)
지난해 마치 새 장난감이라도 얻은 소년처럼 즐거워라 하며 ‘스마트폰 예찬론’을 펼쳤던 ‘왕의 남자’ ‘평양성’의 이준익 감독은 아이폰4로 촬영한 단편영화(‘농반진반’)에 주연배우로 출연한 데 이어 아마추어를 대상으로 하는 스마트폰 단편영화제 심사위원장을 맡았다. 그런가 하면 ‘올드보이’ ‘친절한 금자씨’로 유명한 박찬욱 감독은 세계 최초 상업개봉 극장영화를 아이폰4로 찍어 내놨다.
스마트폰 열풍이 한국영화계에도 새로운 물결을 일으키고 있다. 스마트폰 어플리케이션(응용프로그램)과 QR코드(스마트폰으로 읽을 수 있는 정보집적코드)를 이용한 마케팅과 극장입장권매매 등에 이어 영화제작에도 새로운 장비로 활용되고 있다. 스마트폰에 장착된 카메라는 막강한 기동성과 편이성, 대중성으로 ‘초저예산’의 영화제작이 가능하게 만들었다. 손 안에 스마트폰만 있다면 ‘누구나 영화를 만들 수 있는 시대’가 됐다. 일부 유명 감독들은 스마트폰을 이용해 제작한 콘텐츠의 상업적ㆍ예술적 가능성도 타진하고 있다.
국내에서 스마트폰을 활용한 영화제작은 아이폰4의 프로모션을 펼치고 있는 KT에 의해 주도되고 있다. 지난해 10월 정윤철, 임필성, 봉만대 등 12명의 영화, 촬영 감독들에게 10분 내외의 단편영화 프로젝트를 맡겨 이를 극장에서 ‘아이폰4필름페스티벌’이라는 타이틀로 상영했다. 박찬욱 감독은 동생인 미디어아티스트 박찬경과 공동으로 메가폰을 잡고 가수 이정현과 배우 오광록을 주연으로 기용한 30분의 단편 ‘파란만장’을 아이폰4로 촬영해 오는 27일부터 30일까지 전국 CGV 10개 극장에서 개봉한다. 10일 시사회를 통해 언론에 공개된 ‘파란만장’은 한 낚시꾼과 무녀와의 만남을 통해 생과 사의 비밀을 파헤치는 작품이다. 1억5000만원의 제작비가 투입됐고, 80여명의 스태프가 동원됐으며 컴퓨터 그래픽 등 특수영상효과가 더해졌다. 영화를 본 대부분의 관객들이 “100% 휴대폰 카메라로 촬영됐다니 믿을 수 없다”고 할만큼 영상미나 화질이 고가의 카메라로 찍은 일반 상업영화 버금갔다.
물론 유명감독들은 다양한 영상을 위해 스마트폰 카메라에 삼각대 등의 고정장치나 광각ㆍ망원렌즈를 결합시켜 영화를 찍었다. 하지만 이마저도 일반인들이 대부분 소유한 DSLR(일안 반사식 카메라)의 렌즈 등의 부가장치다.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스마트폰으로 영화를 찍을 수 있고, 손안의 액정 영상을 스크린에 옮길 수 있다.
내달엔 일반인들이 스마트폰으로 찍은 단편영화를 공모해 수상작을 가리고 상영하는 제 1회 올레(olleh)ㆍ롯데 스마트폰 영화제가 열린다. 이와 함께 유명감독들이 스마트폰을 이용한 영화제작 강의 프로그램도 이달 중 진행된다. 20세기 휴대용 캠코더가 거장을 만들어냈다면, 이제 그 역할을 스마트폰이 맡게 된 셈이다.
이형석 기자/suk@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