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면제 먹는 등 넉달째 일상 망가진 강화군민들
인천시, 부랴부랴 대책 내놨지만 실질적 움직임 없어
강화도 송해면에 살고 있는 안미희(37) 씨의 초등학교 1학년 딸이 대남확성기를 멈춰달라며 윤석열 대통령을 향해 쓴 편지. [안미희씨 제공] |
[헤럴드경제=박지영 기자] “밤 11시부터 새벽 6시까지 총 쏘는 소리, 포 끌고 내려오는 소리, 귀신 울음소리, 말도 못하게 기괴한 소리들이 나요. 너무 공포스럽고 짜증나고, 힘든 건 말로 못해요. 초등학교 다니는 아들이랑 딸은 자다가 울기도 하고...저만해도 수면제를 먹고 있어요. 보상을 해달라는 게 아니에요. 무너지기 전 제 일상으로 돌아가는 거, 그게 제가 바라는 겁니다.” (강화도 송해면에서 초등학교 3학년, 1학년 두 아이를 키우고 있는 안미희(37) 씨)
지난 7월말부터 지속된 북한의 대남 확성기에 넉 달째 일상이 망가진 주민들이 있다. 북한과의 거리가 2㎞ 정도로 가까운 강화군 송해면·양사면·교동면 주민들이다. 약 4600여명의 주민들은 밤낮없이 울리는 대남 확성기 때문에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받고 있는 상태다. 확성기에서 나오는 소리 또한 귀신소리, 여우·들개·까마귀 등 동물의 울음소리, 쇠뭉치를 긁는 소리 등 기괴한 소음들 일색이라 사람은 물론 가축까지 피해를 입고 있어 대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당산리에서만 70년 넘게 산 김완식(76) 씨 또한 일상이 무너진지 오래다. 김씨는 “지난 7월 말보다 최근에 소리가 더 커지고 있다”며 “밤이고 낮이고 소리 나오는 데는 대중이 없다. 낮에는 그래도 일에 집중하니 그러려니 하는데, 새벽에 소리를 듣고 있으면 말도 못하게 짜증난다”고 토로했다.
이어 “군부대에서 나와서 소음측정기로 소리를 측정하니 85데시벨(㏈)이 나왔다. 몇 십년 전에도 대남 방송이 나온 적 있었는데, 그때는 노래라도 나와서 견딜만 했는데 지금은 사람 죽이는 소음”이라고 덧붙였다. 공사장 소음이 70㏈ 정도니 소리 크기만도 엄청난 수준이다.
안효철(66) 이장도 “수면제를 먹고 있는데 밤에는 도통 잠이 오질 않는다”며 “사람뿐만 아니라 최근 사산하는 가축도 늘고 있는데 소리 때문에 스트레스 받아서 그런 것 같다”며 걱정을 내비쳤다. 이 마을에는 임산부도 살고 있는데, 최근 극심한 소음으로 유산 기미를 보이는 등 힘든 시기를 겪고 있다고 한다.
2018년 남북 정상회담을 계기로 중단됐던 대남 확성기 방송은 올해 국내 탈북민 단체의 대북전단 살포에 북한이 오물풍선 살포로 맞대응한 것을 시작으로 재개됐다. 우리 정부가 대북 확성기 방송을 재개하면서 북한도 다시 확성기를 틀기 시작한 것이다.
안씨가 국회 국방위원회 국정감사에 나가 정부 관계자들 앞에서 무릎을 꿇고 울먹이는 모습. [유튜브 캡처] |
극심한 소음에 안씨는 국회 국방위원회 국정감사에도 참고인으로 나갔다. 당시 안씨는 “방송 소음으로 일상은 무너졌다. 딸은 입에 구내염이 생기고, 아들도 새벽 3시까지 잠을 못 자는 상황인데도 아무것도 안해주더라”며 정부 관계자들 앞에 무릎을 꿇은 뒤 울먹이며 대책을 호소한 바 있다.
이에 김선호 국방부 차관은 “빠른 시간 내에 지역 주민들이 피부로 느낄 수 있는 방안들을 찾아 진행하고 있다”며 “지역주민들께서 말씀하신 대로 소음 관련 전문가를 현장에 보내서 같이 하는 것들을 검토해 조치하도록 하겠다”고 답했다.
인천시도 부랴부랴 전문기관을 통해 소음 피해 강도와 규모를 정확하게 측정하고, 주민들의 마음건강지원사업 등을 전개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주민들은 “아직까지 해결을 하려는 (직접적인) 움직임은 없다”며 불만을 표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접경지역에서 고통받는 주민들에게 경제적 보상 등 다각적인 해결책을 신속하게 제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최기일 상지대 군사학과 교수는 “대남 확성기는 어떻게든 우리 국민에게 고통을 주려는 북한의 심리적인 테러라고 볼 수 있다”며 “테러의 목적이 남남(南南) 갈등을 유발하려는 건데, 북한의 프레임에 휘말리지 않기 위해서라도 접경지역 국민들의 피해 보상에 정부가 적극적이고 신속하게 나서야 한다”며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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