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심 “두 혐의 모두 유죄"
2심 “발굴 혐의만 유죄”
대법 “유골손괴 혐의도 유죄”
대법원 대법정 앞 로비. [대법원 제공] |
[헤럴드경제=안세연 기자] 유족의 동의 없이 조상의 묘지를 발굴한 뒤 유골을 화장했다면 유골손괴죄가 성립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부수거나 파괴한 게 아니라 화장 절차를 따랐더라도, 유족의 추모 감정을 훼손한 이상 손괴한 게 맞다는 취지다.
29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3부(주심 대법관 엄상필)는 분묘발굴유골손괴, 분묘발굴 혐의를 받은 A씨 등에 대해 이같이 판시했다. 앞서 2심은 유골손괴 혐의는 무죄로 판단했지만 대법원은 “원심(2심)에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있다”며 깨고, 다시 판단하도록 사건을 대전지법에 돌려보냈다.
A씨 등은 2020년 7월께 천안시의 한 임야에 있는 사촌형 조상들의 합장 분묘들을 무단 발굴한 뒤 유골을 화장해 추모공원에 안치한 혐의를 받았다. A씨는 해당 토지를 상속받은 뒤 사촌형 측에 수차례 분묘를 이장할 것을 요구했으나 거절당했다. 결국 분묘 발굴이라는 범행에 이른 것으로 조사됐다.
수사기관은 A씨에게 두 가지 혐의를 적용. 포크레인 등 중장비를 이용해 분묘를 발굴한 것과 관련해 분묘발굴 혐의를 적용했다. 또한 유골을 화장 후 추모공원에 안치한 것과 관련해 분묘발굴 유골손괴 혐의를 적용했다. ‘손괴’란 손상하거나 파괴하는 행위를 의미한다.
1심은 두 혐의를 모두 유죄로 봤다. 1심을 맡은 대전지법 천안지원 이지현 판사는 2021년 12월께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했다.
2심의 판단은 달랐다. 2심은 두 혐의 중 분묘발굴 유골손괴 혐의에 대해선 무죄를 선고했다. 2심을 맡은 대전지법 3형사부(부장 손현찬)는 지난해 10월, 징역 4개월에 집행유예 1년으로 감형을 택했다.
2심 재판부는 “화장은 우리 법체계가 장사의 한 방법으로 인정하고 있는 행태에 해당한다”며 “A씨 등은 장례지도사를 고용해 화장 절차에 따라 납골당에 유골을 안치했다. 이 과정에서 망인들에 대한 종교적 감정이 훼손됐다고 볼만한 자료가 제출되지 않았다”고 손괴 혐의에 대해 무죄를 택한 이유를 설명했다.
이어 “유골은 기본적으로 매장, 제사의 대상이 되는 유체물이므로 화장 절차에 따라 종교적, 관습적 예를 갖추어 제사의 대상으로 제공했다면 유골을 본래 사용 목적에 제공할 수 없는 상태로 손괴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2심 판결은 대법원에서 깨졌다. 대법원은 손괴 혐의에 대해서도 유죄를 선고하는 게 맞다고 봤다.
대법원은 “유골에 대한 관리 및 처분권은 재사주제자의 의사에 따라 이뤄져야 한다”며 “유족의 동의 없이 함부로 유골의 물리적 형상을 변경하는 등 훼손한 것은 추모 감정을 해치는 손괴에 해당한다고 평가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A씨 등이 유족의 동의 없이 유골을 화장장에서 분쇄해 훼손한 사실이 인정되는데도 불구하고 손괴 부분에 무죄를 선고한 원심(2심) 판결은 법리를 오해해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2심 판결을 깨고, 다시 판단하라며 사건을 대전지법에 돌려보냈다. 대법원 판결 취지에 따라 4번째 재판에서 A씨 등은 다소 가중 처벌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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