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의 '채식주의자'를 번역해 세계에 알린 번역가 데버라 스미스. [연합] |
[헤럴드경제=나은정 기자] 소설가 한강이 한국 작가 최초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면서 그의 대표 소설 '채식주의자'를 전 세계에 알린 번역가 데버라 스미스도 재조명되고 있다.
2007년 한글로 출간된 채식주의자는 2016년 영국의 권위있는 문학상인 부커상 수상으로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한강의 부커상 수상은 한국인 최초였다. 노벨문학상·공쿠르상과 함께 세계 3대 문학상으로 꼽히는 부커상 수상에 혁혁한 공로를 세운 이가 바로 영국인 번역가 데버라 스미스다.
스미스는 영국 케임브리지대에서 영문학을 전공했고, 영국에 한국어를 전문으로 하는 번역가가 드물다고 판단해 한국 문학에 관심을 기울이면서 독학으로 한글을 배웠다. 당시가 2010년으로, 한국과의 접점은 전혀 없었다.
스미스는 런던대 동양 아프리카대(SOAS)에서 한국학 석·박사 과정을 밟으며 한국 문화 전반에 대한 이해도를 넓혔고, 이렇게 한국어를 배운 지 3년 만에 한강의 채식주의자를 만난다.
영국에서 이 소설의 매력을 가장 처음 알아본 스미스는 2016년 한 언론 인터뷰에서 "한강은 인간의 가장 어둡고, 폭력적인 면을 완벽하게 절제된 문체로 표현해낸다"고 극찬했다. 그렇게 번역부터 출판사 접촉, 홍보까지 도맡았다.
그는 2013년 런던북페어의 한 행사에서 영국 유명 출판사 그란타 포르토벨로에 채식주의자의 한영 번역 7장을 내밀었고, 맥스 포터 편집자는 "직원 일부는 상업적으로 잘될 것이라는 전망을 하기엔 너무 낯설다는 느낌을 받았다"면서도 "무섭고도 충격적이고 우아하며 급진적이고 아름다웠다"고 영문판을 출간해 판권 계약을 한 이유를 설명했다.
스미스는 채식주의자 번역으로 한강과 함께 부커상을 공동 수상했다. 그의 번역은 원작의 섬세한 문체가 그대로 살아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스미스는 2016년 한국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항상 원작의 정신에 충실히 하려고 하며 가능한 한 훼손을 하지 않는 범위에서 언어 형태에도 충실히 하려고 한다"며 "부실한 번역은 우수한 작품을 훼손할 수 있지만, 아무리 세계 최고 수준의 번역이라도 보잘것없는 작품을 명작으로 포장할 수는 없다"고 밝혔다.
한국 고유의 단어를 풀어쓰기보다는 그대로 사용하는 번역가이기도 하다. 그는 "소주를 '코리안 보드카', 만화를 '코리안 망가' 식으로 다른 문화에서 파생된 것으로 쓰는 데 반대한다"며 "한강의 '소년이 온다' 번역에도 '형'이나 '언니' 같은 단어를 그대로 썼다"고 설명했다.
스미스는 채식주의자 이후에도 한강의 '소년이 온다'·'흰', 배수아의 '에세이스트의 책상'·'서울의 낮은 언덕들', 황정은의 '백의 그림자' 등을 번역하며 한국 문학을 세계에 알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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