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국 내 압박 속 전쟁을 정치적 이익으로 활용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지난 4일(현지시간) 예루살렘 정부 공보실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연설하고 있다. [로이터] |
[헤럴드경제=김현경 기자] 이스라엘이 미국과 국제사회의 경고에도 동시다발적으로 전쟁을 벌이고 있다. 레바논 무장정파 헤즈볼라를 겨냥해 대규모 공습을 퍼부어 전면전이 일촉즉발인 데다,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와 가자 지역에서 1년 가까이 전쟁을 지속 중이다.
오랜 동맹국인 미국의 권고도 외면한 채 이스라엘이 확전일로를 걷는 배경에는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의 정치적 계산이 깔려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24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미국 싱크탱크 외교관계위원회(CFR)의 스티븐 쿡 위원장은 “네타냐후 총리가 지난 한 해 동안 한 일을 살펴보면, 미국이 무엇을 제안하든 상관없이 자신이나 이스라엘에 가장 좋은 것이 무엇인 지에 대한 판단에서 자신의 계산을 우선시했다”고 평했다.
쿡 위원장은 “네타냐후는 네타냐후가 할 일을 할 것”이라며 “그는 골대를 옮기고 바이든 대통령의 힘이 빠지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은 지난해 10월 8일 가자전쟁이 발발한 직후 네타냐후 극우 정부에 헤즈볼라에 대한 선제 공격을 하지 말라고 조언했다. 또 가자지구에서 휴전을 이끌어내고 이스라엘과 헤즈볼라 간 교전을 종식시키기 위해 노력해 왔다.
그러나 네타냐후 총리는 가자지구 휴전에 대한 의지를 거의 보이지 않고 오히려 하마스에 대한 “완전한 승리”를 주장했으며 이제는 헤즈볼라와의 전쟁에서 “새로운 국면”을 시작했다. 그는 23일 “이스라엘의 정책은 모든 곳에서 위협을 기다리는 게 아니라 위협을 선제 제압하는 것”이라고 엄포를 놨다.
네타냐후는 미국과 다른 서방 동맹국들로부터 압박을 받는 상황이 되자 자국민들에게 자신이 이스라엘의 전쟁 목표를 추구하기 위해 글로벌 강대국들에 맞서고 있다고 강조하면서 자신의 정치적 이익으로 활용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그동안 군사 원조나 지원을 보류하는 등 미국의 주요 영향력 수단을 사용하고 싶지 않다는 의사를 분명히 밝혀 왔다. 그가 무기 지원을 중단한 것은 지난 5월 네타냐후 총리가 팔레스타인 주민 100만 명 이상이 피난한 가자 남부 도시 라파에 대한 공세를 시작하겠다고 주장했을 당시 한 번 뿐이었다.
하지만 네타냐후 총리는 결국 라파를 장악했고, 지금까지 전쟁을 이어 오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이 임기 말 레임덕(권력 누수)에 빠진 가운데 이스라엘에 더 강력한 조치를 취하지 못한다는 점도 네타냐후가 마음대로 움직이는 데 작용하고 있다.
글로벌 분쟁분석기관 국제위기그룹(ICG)의 마이클 와히드 한나 미국 프로그램 책임자는 바이든 행정부의 정책을 운영하는 사람들이 이스라엘을 강제로 휴전 협정에 참여시키는 데 관심이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바이든 대통령은 무기 판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이스라엘에 대한 외교적 지원을 통해 네타냐후 총리를 압박할 수 있다. 하지만 미국 대선이 한 달여 앞으로 다가온 지금, 미 행정부가 이스라엘과 그 정도의 외교적 마찰을 빚을 것이라고 상상하기는 어렵다”고 FT에 말했다.
네타냐후 총리로서는 자국 내에서 정치적 지지를 얻기 위해 전쟁을 지속하는 것이 유리하다는 전문가들의 분석도 나온다.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분석가들은 네타냐후 총리가 당초 헤즈볼라와 전면전까지 벌이는 것을 꺼려했는데 가자와 레바논 두 전선에서 싸우는 상황과 비용, 결론이 나지 않는 전쟁에 휘말릴 것을 우려했다고 말했다.
다만 이러한 위험에도 불구하고 전면전에 나섬으로써 얻을 수 있는 정치적 이점도 있다는 분석이다. 네타냐후 총리의 떨어진 평판을 재건하기 위한 시간을 더 많이 벌고, 유엔의 가자전쟁 조사를 연기하고, 가자지구에서의 치열한 전쟁과 인질들의 열악한 상황으로부터 대중의 관심을 돌리는 등의 이점이 있다는 것이다.
이스라엘 내에서는 극우 정치 세력과 국민들이 네타냐후 총리가 더 강력한 행동에 나서야 한다고 압박하고 있다.
요하난 플레스너 이스라엘민주주의연구소(IDI) 소장은 “이스라엘이 헤즈볼라에 대해 더 단호한 조치를 취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스라엘인이 많다”고 말했다.
IDI가 지난달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유대계 이스라엘인의 67%가 ‘헤즈볼라의 공격에 더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47%는 ‘인프라 공격을 포함한 레바논 심층 공격’을 지지했다.
실제로 네타냐후 총리가 헤즈볼라를 향한 공격 수위를 높인 후 그가 이끄는 리쿠드당의 지지율이 급반등했다고 FT가 이날 전했다.
이스라엘 여론조사업체 리자르의 19일 여론조사에 따르면 리쿠드당의 지지율은 24%로 1위를 기록했다. 전쟁 내각에서 탈퇴한 베니 간츠가 이끄는 야당 국민연합(NU·21%)을 3%포인트 앞선 수치다.
이는 지난해 10월 가자전쟁 발발 직후와 비교하면 ‘반전’으로 평가된다.
리쿠드당은 전쟁 약 한 달 뒤인 지난해 11월 9일 라자르 여론조사에서 18%의 지지율을 기록, 1위를 차지한 NU(40%)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었다.
하지만 올해 초부터 리쿠드당의 지지율은 서서히 회복되기 시작했고, 하마스 고위 지도자 등이 암살된 7월 말 이후 상승세가 더 뚜렷해졌다고 FT는 짚었다.
정치 분석가 달리아 셰인들린은 “네타냐후는 확실히 전쟁 직후 (지지율) 폭락에서 회복했다”며 “이스라엘이 공격 강도를 높인 것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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