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익현, ‘하나-둘-여럿’ 중 일부, 2024. [작가 제공] |
[헤럴드경제=이정아 기자] “수직으로 세워진 조각을 바닥에 가깝게 수평적으로 눕히면 어떨까 싶었어요. 이때 조각의 ‘수평성’이 제도 안과 밖을 넘나들고, 조각과 언어, 노동과 산업, 지역과 지역의 관계를 묻는 구체적인 단서가 된다고 생각했어요. 그 자체로 시공이 확장되는 것이죠.”
제7회 창원조각비엔날레 개막을 두 달여 앞두고 현시원 예술감독은 “수평적으로 눕힌 조각이 그 자체로 전시 도면이 돼 공간을 만들어낸다는 데서 모티브를 얻었다”며 이같이 말했다.
1974년 국가산업단지로 조성돼 반세기동안 국내 기계산업의 메카로 자리매김한 창원이 오는 9월 27일부터 11월 10일까지 조각으로 물든다. 16개국 70명(60팀)의 국내외 작가의 작품이 성산아트홀 전관, 성산패총, 창원복합문화센터 동남운동장, 창원시립마산문신미술관을 찾으면서다.
창원조각비엔날레는 창원(마산)이 고향인 조각가 문신을 계기로 열린 문신국제조각심포지엄으로 시작해 2012년부터 격년제로 열리는 국제미술제다. 조각을 주제로 한 국내 유일의 비엔날레다.
2024년 제7회 창원조각비엔날레 프롤로그 전시 ‘미래에 대해 말하기: 모양, 지도 나무’ 전경. [창원문화재단] |
수평적으로 누운 조각을 은유하듯 비엔날레 제목은 김혜순 시인의 시 ‘잘 익은 사과’의 한 구절에서 따온 ‘큰 사과가 소리없이’다. ‘내 자전거 바퀴는 골목의 모퉁이를 만날 때마다 / 둥글게 둥글게 길을 깎아내고 있어요 / 그럴 때마다 나 돌아온 고향 마을안큼 / 큰 사과가 소리 없이 깎이고 있네요.’ 사과 껍질이 깎이며 스스로 나선형의 길을 만들어낸다는 시인의 상상력처럼, 창원 곳곳에 배치한 조각으로 길을 만들어 관객들을 만나겠다는 의미다.
특히 올해는 창원국가산업단지 설립 50주년으로 창원의 과거와 미래가 주목받는 해다. 1973년 창원기계공업단지 조성 공사 중에 산을 깎는 과정에서 발견된 철기시대 초기 대규모 조개무덤인 사적 제240호 성산패총과 과거 산업단지 근로자들의 장소였던 창원복합문화센터 동남운동장을 새로 발굴해 전시 장소로 선정한 이유다. 현 예술감독은 “조각과 도시 창원이 쌓아 올린 다층적 시간대와 지역성을 주제 삼아 공간에 베인 흔적을 적극적으로 탐구하고 새로 쓰고자 했다”고 덧붙였다.
창원 지역 연구를 기반으로 한 작가들의 신작이 대거 소개된다. 창원의 랜드마크로 통하는 기존의 수직적 조각에서 벗어난 새로운 작품으로 비엔날레에 신선한 활력을 불어넣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예를 들면 김익현은 창원의 역사와 산업사회에 대한 연구를 바탕으로 한 사진과 텍스트를 선보인다. 노송희는 계획도시 창원이 옛 지형과 지도를 토대로 아카이빙 형태의 영상 작업을 진행한다. 일본 작가 콜렉티브 트랜스필드 스튜디오는 성산패총에 대한 서사를 기반으로 오디오 가이드와 관객 참여형 투어를 퍼포먼스 형식으로 진행한다. 창원 출신의 조각가인 김종영, 문신, 박석원뿐만 아니라 ‘한국 최초의 여성 조각가’ 김정숙 등 작품도 만날 수 있다.
2024년 제7회 창원조각비엔날레 전시 포스터. [창원문화재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