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파라 알 카시미. 이정아 기자. |
[헤럴드경제=이정아 기자] 사진 속 장소는 아랍에미레이트(UAE) 두바이에 위치한 드래곤 마트. 불 반짝이는 형형색색 조명이 다소 정신없이 진열돼 있다. 백화만발한 화병 속의 꽃들은 마치 비디오게임의 한 장면처럼 미래적인 느낌을 자아낸다. 예술로 간주하기 힘든 지극히 일상적인 상품들의 나열인데, 격동적으로 분출하는 인간 욕망에 맞게 재구성된 ‘현대판 정물’처럼 보이는 대목이다.
UAE 태생으로 17살 때 미국 뉴욕으로 이주해 작업을 해온 작가 파라 알 카시미(33)가 오는 8월 11일까지 서울 삼청동 바라캇 컨템포러리에서 한국 첫 개인전을 연다. 그는 지난해 LG전자가 미국 구겐하임 미술관과 함께 선정한 ‘올해의 신예 아티스트’다. 지난해 광주비엔날레에 참가, 당시 그는 이숙경 예술감독이 추천하는 작가 15인 중 한 명이었다.
파라 알 카시미, 드래곤 마트 조명 디스플레이, 2018. [바라캇 컨템포러리] |
‘문화적 혼종성’은 이번 전시를 관통하는 주제다. 걸프 아랍 국가의 관습과 디지털 환경에서 파생한 보이지 않는 맥락이 한데 뒤엉킨 사진과 영상이 주요 전시작으로 채워졌다. 인터넷과 게임이 익숙한 젊은 작가인만큼 그의 작업 전반에는 현실과 가상이 경계를 넘나들며 공존한다.
이를 상징하듯 전시 제목도 한국의 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MMORPG)인 ‘검은사막 온라인’에서 제목을 딴 ‘블루 데저트 온라인’이다. 작품마다 걸프 아랍국가의 디지털 세대에게 스며든 허황된 판타지를 향한 다층적인 욕망이 읽힌다. 그런데 끝내 이들이 찾고자 하는 ‘푸른 사막’은 끝내 나오지 않을 것만 같은 불안이 곳곳에 내재해 있다.
파라 알 카시미, 유령들과 힘겨루기, 2019. [바라캇 컨템포러리] |
‘블루 데저트 온라인’ 전시 전경. [바라캇 컨템포러리] |
예컨대 아랍 특유의 문양이 아로새겨진 담요에 얼굴과 상반신이 휘감겨 있는 인물이 담긴 ‘유령들과 힘겨루기’는 하얀 천을 뒤집어쓴 르네 마그리트의 ‘연인들 III’을 떠올리게 한다. 자갈밭을 걷는 인물, 담요, 파란 하늘 등 화면 속 요소를 따로따로 보면 평범한데 이들이 합쳐지니 낯설고 섬뜩하다. 전시장에서 만난 작가는 “일상에서 무심하게 지나칠 수 있는 것들에 주목해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가시적으로 드러내고자 했다”며 “연출이 아닌, 실제 주변 모습을 포착한 사진들”이라고 말했다.
무엇보다 떠오르는 태양, 매끈하게 반짝이는 말의 몸체 등 작가가 찍은 사진이 대형 벽지로 붙은 전시장이 인상적이다. 이러한 설치 방식은 작가만의 트레이드마크로, 특히 이번에는 벽지 위에 앙증맞은 리본과 마치 포토카드와 이모티콘을 연상케 하는 아기자기한 이미지들이 퍼즐처럼 붙었다. 이에 대해 작가는 “최근 들어 (사람들이) 모든 것을 더 예쁘게, 더 귀엽게 만들고자 하는 욕구가 커졌다고 느낀다”며 “인간에게 적대적인 이 현실에서 살아남기 위한 방어 기제로서, 이런 움직임이 더욱 나타나는 것 같고 이를 표현하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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