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전 1. 엘라가발루스
로랜스 앨마 태디마, '엘라가발루스의 장미(일부)' |
고대 로마 엘라가발루스 황제 조각상[로마 카피톨리노 박물관 홈페이지] |
로랜스 앨마 태디마, '엘라가발루스의 장미' |
"가서 죽든, 안 가서 추궁 당해 죽든…. 어쩔 수 없소."
로마 원로원 의원들은 황제의 만찬 초대장을 받고 고개를 떨궜다. 누군가는 비탄의 눈물을 흘렸다. 또 다른 사람은 절망에 젖은 채 주저앉았다. 황제가 몸소 함께 저녁을 하자는 제안을 한 것인데, 대체 왜?
"왔다, 왔어! 어이, 빨리 꽃잎을 뿌려!"
의원들이 만찬장에 모습을 보이자 황제가 킬킬대며 소리쳤다. "뭐하냐고!" 황제가 재촉하자 망설이던 시종 무리가 소쿠리를 들고 쏟았다. 한가득 담긴 제비꽃 등 꽃잎을 의원들을 향해 마구 퍼부었다. 막 들어오던 이들은 꽃잎 세례에 정신을 못 차렸다. "화… 황제께서 이렇게나 환영해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누군가는 허우적대면서도 황송함을 표했다. 황제는 그 말을 듣고 더 크게 웃었다. 그 사이 내려오는 꽃잎은… 끝없이 계속 쏟아졌다. 가득 쌓인 꽃잎에 걷기가 힘들었다. 이젠 그것들 때문에 앞도 안 보였다. 몇몇은 미끄러져 넘어졌다. 수천, 수만개의 꽃잎이 이들의 눈과 코를 뚫고 들어오고 있었다. 이내 곳곳에서 절규가 울려퍼졌다. 꽃잎에 파묻힌 사람 중 상당수가 그렇게 죽었다. 질식사였다. "거봐. 이 장난, 기가 막힐 거랬지!" 황제는 그 모습을 보고 뿌듯한 표정만 지었다.
로랜스 앨마 태디마, '엘라가발루스의 장미'(일부 확대). 엘라가발루스 무리가 꽃잎에 깔려죽는 이들을 구경하고 있다. |
로랜스 앨마 태디마, '엘라가발루스의 장미'. 이들은 모두 꽃잎 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죽을 처지에 놓인 듯 보인다. |
이걸 먹으라고…?
꽃잎 지옥에서 살아남은 의원들은 이제 차려진 음식상 앞에서 굳었다. 눈앞에 있는 건 말라붙은 거미와 말똥이 뒤섞인 요리였다. 유리 조각, 대리석 가루가 양념처럼 뿌려진 디저트도 보였다. 아직 완전히 죽지 않은 전갈과 개구리는 그릇과 수저 위에서 꿈틀댔다. "다들 뭐 하는가. 어서 들지 않고?" 황제는 모른 척하며 재촉했다. "감히 이 몸이 대접하는 건데, 입도 대지 않겠다고?" 이번에는 웃음기를 빼고 정색했다. 의원들은 덜덜 떨며 식기구를 쥐었다. 울며 겨자 먹기로 음식이라곤 할 수 없는 것들을 먹었다. 이젠 곳곳에서 구역질 소리가 울려퍼졌다. 혹시나 토하면 분명 사형이었다. "다들 잘 먹으니 참 보기가 좋구먼!" 황제는 이 모습도 보기에 웃겨 죽을 지경이었다.
이 또한 끝이 아니었다.
황제의 명령을 받은 시종들이 다시 일어섰다. 어떻게든 먹고 마신 후 취기를 못 이겨 잠든 의원들을 하나둘 어깨 위로 올렸다. 이들을 사자와 곰, 표범 등 맹수가 가득한 방안에 내던졌다. 결과는…? "여기가 어디야? 뭐야?" 한참 뒤 술에서 깬 의원들은 비명을 내질렀다. 맹수가 눈앞에서 뜨거운 콧김을 내뿜었다. 그대로 혼절할 수밖에 없었다. 이 동물들은 기절한 의원을 장난감처럼 갖고 놀았다. 훈련이 돼있어 잡아먹진 않았지만, 끔찍한 건 매한가지였다. 황제는 이 광경 또한 코미디 보듯 낄낄대며 감상했다. 이처럼 원로원 의원들을 마음껏 주무른 황제는 앳된 소년에 불과했다. 황제의 이름은 엘라가발루스였다. 그는 어쩌다 기행의 끝을 달린 막장 암군이 됐을까.
이처럼 최악의 기행을 저지른 엘라가발루스를 황제로 만든 결정적 계기는 그의 외모였다.
엘라가발루스는 203년께 태어났다. 그의 외가는 시리아에 터를 잡은 제사장 집안이었다. 엘라가발루스도 가업을 떠안았다. 태양신을 숭배하는 사제의 길 말고는 어떤 선택지도 없어보였다.
그런 엘라가발루스의 운명은 그의 외할머니 율리아 마이사로 인해 요동쳤다.
엘라가발루스가 아직은 사제 일을 익히고 있던 217년, 당시 로마의 황제였던 카라칼라가 파르티아(현재 이란의 북동부) 원정길 중 암살로 죽는 일이 발생했다. 황제의 지근거리에 있는 근위대장 마크리누스가 주도적으로 꾸민 일이었다. 이후 마크리누스는 수월하게 황제직을 손아귀에 쥘 수 있었다.
그런데, 카라칼라를 몰아내고 새롭게 황제가 된 마크리누스는 한 가지를 간과했다.
죽은 카라칼라의 이모, 율리아 마이사의 존재였다. 마이사는 졸지에 조카를 잃었다. 집안 재산 또한 마크리누스에게 몰수당할 위기에 처했다. 책사 기질이 있던 마이사는 이제 가문 원수가 된 마크리누스에게 복수하기로 결심했다.
마이사는 암살당한 카라칼라가 군인들 사이에선 '군인 황제'로 불릴 만큼 인기가 많았던 점에 주목했다. 고지식한 마크리누스보다 화끈하게 날뛴 카라칼라를 추억하는 군인이 지금도 대다수라는 점도 체감했다. 마이사는 카라칼라의 후계자를 만들기로 했다. 그런 그녀의 머릿속에 떠오른 패가 엘라가발루스였다. 엘라가발루스가 혈통을 파고들면 카라칼라의 이종 사촌 누이의 아들이란 점, 따지고 보면 엘라가발루스가 카라칼라의 외모와 꽤나 닮았다는 점을 이용하기로 마음먹었다.
마이사는 곧장 군에 "카라칼라가 숨겨놓은 아들이 살아있다"는 소문을 퍼뜨렸다. 분위기가 무르익었을 때 시리아군 병사들을 모았다. 이날 카라칼라 분장을 한 아이를 소개했다. "너희들이 따라야 할 진짜 황제께서 왔다. 이 아이가 바로 카라칼라의 자식이야." 10대 소년, 그가 바로 엘라가발루스였다.
"군인 황제께서 부활했다!" 병사들은 그 말을 믿었다. 사실이라 믿은 게 아니라, 사실이면 좋겠다는 마음에서라도 믿었다. 엘라가발루스가 어정쩡하게 팔을 들었다. 병사들은 무기를 내려놓고 경배했다. 당신의 군대가 되겠다는 뜻이었다.
엘라가발루스 [텔레그래프] |
엘라가발루스의 반란은 손쉽게 이뤄졌다.
군심을 휘어잡았으니 그걸로 끝이었다. 218년, 마크리누스의 근위대 중심 병력과 아파메아(현재 시리아 중북부)에서 대치했다. 카라칼라에 이어 황제직에 오른 마크리누스는 엘라가발루스의 반란군을 과소평가했다. 그런 그 가 대치하게 된 반란군의 규모는 예상보다 훨씬 컸다. 그 사이 카라칼라의 후광으로 많은 군이 합류한 덕이었다. 마크리누스는 이제야 불안에 휩싸였다. 전쟁과 암살을 모두 두려워한 그에게 자기편은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카라칼라의 아드님께서 가짜 황제 마크리누스를 내치고자 직접 행차했다!" 우레같이 큰소리가 울렸다. 군장을 갖춘 엘라가발루스가 언덕에 올라섰다. 그 옆에는 카라칼라의 전신 동상이 세워졌다. "카라칼라의 숨겨둔 아들이라는 소문이 진짜였구나!" 이 연출을 본 마크리누스의 병력은 전의를 상실했다. 아예 엘라가발루스 진영으로 투항하는 병사도 적지 않았다. 마크리누스는 이제 공포로 이성을 잃었다. 그의 선택은 도주였다. 전력으로만 보면 해볼 만한 전투였는데도 등을 내보였다. 마크리누스의 재위 기간은 고작 1년58일이었다. 그는 머리와 수염을 다 밀고 숨었지만 끝내 붙잡혔다. 최후는 비참했다.
그렇게 로마 제국에 새로운 태양이 떠올랐다.
사제의 길을 걷던 엘라가발루스가 덜컥 황제직에 올랐다. 이제 군을 등에 업은 채 서둘러 로마로 도착해 원로원만 휘어잡으면 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엘라가발루스는 이때부터 이상했다.
그는 느긋했다. 로마로 가기 전 안티오키아에서 몇 달, 아나톨리아의 니코메디아에서 몇 달간 머물렀다. 빨리 로마로 가 원로원을 제압해야 한다는 말을 무시했다. 그사이 카라칼라의 잔혹함을 흉내내려고 한 건지, 계속 귀찮게 굴면 첩자로 몰아 가차 없이 사형시켰다. 마이사가 아낀 유능한 참모마저 "나를 허수아비로 여긴다"며 체포해 처형했다. 219년, 9월. 엘라가발루스는 마크리누스와의 전투 후 1년5개월이 지난 후에야 겨우 로마 땅을 밟았다. 그는 의기양양했다. 이날 로마 시민들은 엘라가발루스 바로 뒤, 건장한 노예 6명이 낑낑대며 들고 있는 가마에 주목했다. 무슨 휘황찬란한 전리품이라도 있겠거니 생각했다. 갑자기 바람이 불었다. 가마를 덮은 천이 잠깐 올라갔다. 이때 보인 건 사람이 아니었다. 웬 원뿔 모양의 검은 돌이었다. 이는 엘라가발루스가 신성하게 여기던 숭배물이었다.
엘라가발루스는 남의 말을 무시했다.
정확히는 자신을 향한 쓴소리를 병적으로 싫어했다. 엘라가발루스에게는 심한 자격지심이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엘라가발루스는 원래 사제가 될 운명이었다. 황제의 자리가 자신에게 굴러들어 올 줄은 생각도 못 했다. 하지만 그런 그가 가진 건 카라칼라가 숨긴 아들이라는 가짜 혈통뿐이었다. 황제 교육은커녕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를 만큼 무지했다.
이런 식의 상황에선 길이 두 개로 갈라진다. 늦은 만큼 더 많이 듣고, 더 많이 배워 직에 맞는 지식을 재빨리 체화하는 길이 있다. 정확히는 환경이 다르지만, 로마사상 최초의 속주 출신 황제였던 트라야누스가 택한 길로 볼 수 있다. 반면 무엇을 하기엔 이미 늦었다며 아예 손을 놓는 길도 있다. 그렇다면 매달릴 건 알량한 직감과 허술한 미신, 행운이 안긴 쾌락밖에 없다. 품이 드는 학습, 자존심을 건드리는 조언에 대한 적대심만 강해진다. 그러니 성장이 있을 수도 없다. 에드워드 기번은 《로마제국 쇠망사》에서 "엘라가발루스는 젊음과 출신, 행운으로 말미암아 타락한 나머지 무한한 쾌락에 몸을 맡겼다"고 평가했다.
앙리 폴 모트, '엘라가발루스와 초대 손님' |
엘라가발루스는 이 기괴한 검은 돌을 태양신의 상징인 신체(神體)로 받들었다.
그간 로마 제국은 새로운 신에 관대한 모습을 보였다. 멸망한 적대국의 신까지 품을 정도였다. 당연히 태양신도 받아들일 수 있었다. 하지만 이건 아니었다. 태양신을 본뜬 신상도 아닌 육중한 돌덩어리를 숭배하라는 건 선을 넘은 일이었다. 엘라가발루스는 로마 시민들의 술렁임을 못 본 척했다. 문제의 검은 돌을 팔리티누스 언덕 위 신전에 뒀다. 악사들이 동방 음악에 맞춰 북을 쳤다. 생전 처음 듣는 시리아 여인들의 노랫소리가 퍼졌다. 성행위를 연상케 하는 의식도 벌어졌다. "로마 시민들은 이제 태양 신앙을 유피테르 신앙보다 더 귀중히 대하라." 엘라가발루스는 이런 말도 했다. 그의 무리수를 만류하던 인사들은? 다 죽이거나 추방했다.
훗날 황제보다 괴물로 불리게 될 엘라가발루스의 치세가 시작됐다.
엘라가발루스는 그 시절 로마 시민이 볼 때 이해할 수 없는 행동만 했다. 행정을 하기에는 아는 게 없었다. 뭘 듣고 배울 생각조차 전무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카라칼라가 한바탕 날뛴 덕에 그나마 외부 적과 전쟁이 터질 분위기도 아니었다.
장 롬바드, '엘라가발루스의 행차 모습'(삽화) |
엘라가발루스는 차츰 여자 복장과 행동에 흥미를 보였다.
그는 곧 과장된 화장을 했다. 그 시절 로마 제국의 관념으로 황제가 공공연히 이런 모습을 보이는 게 '스탠더드'는 아니었다.
급기야 엘라가발루스는 여러 명의 남자 애인을 동시에 사귄 후 요직도 나눠줬다. 엘라가발루스는 동성혼도 했다. 첫 상대는 전차 경주 선수 히에로클레스였다. 그는 해방 노예 출신이었다. 어느 날, 엘라가발루스는 심심풀이로 전차 경주를 관람했다. 엘라가발루스의 눈에 금발 머리 미남 선수가 들어왔다. 그가 히에로클레스였다. 때마침 엘라가발루스 바로 앞에서 히에로클레스가 곤두박질쳤다. "제가 찾던 남편감이 여기에 있었네요." 엘라가발루스가 팔을 내밀었다. 엘라가발루스는 히에로클레스의 외모에 어지간히 꽂혔는지, 경기 직후 그를 외려 '나의 남편이자 황제'로 선언했다. 자신은 이제 여제 내지 황제의 부인 정도가 되겠다고 했다.
엘라가발루스는 히에로클레스로 부족했다. 두 번째 남편을 물색했다. 운동선수 조티쿠스였다. 엘라가발루스는 삼각관계를 즐겼다. 엘라가발루스는 첫 번째 남편 히에로클레스과 관계를 맺던 중 그에게 주먹질까지 당했다. "내가 아닌 조티쿠스에게 온 정신이 팔려있다"는 이유였다. 그러니까, 엄밀히 보면 그 시절 황제가 노예 출신에게 얻어맞은 격이었다. 하지만 엘라가발루스는 "나를 향한 질투심"이라며 외려 즐거워했다고 한다.
로마시대 기록자 카시우스 디오에 따르면 엘라가발루스는 이 무렵 '부인, 여성, 여왕' 등으로 불렸다. 애인들에게는 "나를 군주라고 부르지 말라. 나는 여성이기 때문"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다만 이와 관련해선 워낙 악명이 높았던 황제였던 만큼, 악의적으로 과장된 기록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는 주장이 있다.
그래도 그 시절 사회적 기준과 분위기로 볼 때, 엘라가발루스의 삼각관계 행보는 파격적인 게 맞았다고 짐작할 수 있다. 당시 로마인들은 여성으로서 성행위를 한다고 남성을 비판하는 것을 그에 대한 최악의 모욕으로 봤다(앤드르 월러스-하드릴 케임브리지대 교수). 과거 막강한 힘과 권력을 쥔 율리우스 카이사르 또한 자신에 대한 이러한 비난만은 대놓고 불편하게 여겼을 정도였다.
궁은 엘라가발루스의 외할머니 마이사파와 히에로클레스파, 조티쿠스파로 엉망이었다. 221년, 히에로클레스가 일을 꾸몄다. 조티쿠스에게 몰래 마약을 먹였다. "마음이 떠난 건가? 이제 이 몸을 만족시킬 수 없는가?" 엘라가발루스는 조티쿠스가 약에 취한 줄 모르고 그가 변했다고 생각했다. 예외 없었다. 조티쿠스를 추방했다. 막장 드라마 같은 전개였다.
레오 라이펜스타인, '엘라가발루스의 연회' |
엘라가발루스는 온갖 기행을 벌였다.
《리더스 다이제스트》는 엘라가발루스를 '장난꾸러기 황제'로 소개한다. 그러나 그의 '짓거리'는 장난 수준으로 넘기기 힘들었다.
엘라가발루스는 국가의 큰 행사에 나체 여인들이 이끄는 마차를 타고 등장했다. 이른바 '인간 마차'였다. 엘라가발루스는 반드시 순결을 지켜야 하는 베스타의 여제사장도 유린했다. 베스타(가정의 신)의 불, 마르스(전쟁의 신)의 방패, 개선장군의 봉헌물 등을 제멋대로 빼돌려 태양신을 모신 신전에 옮기기도 했다. 어느 날, 엘라가발루스는 큰 목욕탕 건설을 지시했다. 그래도 인프라 구축에는 관심을 두는가 했는데, 그곳에서 한 번 씻자마자 건물을 다시 부숴버렸다고 한다. 충언을 하는 사람들의 말은 기를 쓰고 듣지 않았다. 노예에게 시켜 채집한 전갈, 독사, 개구리 따위를 선물로 보내는 식으로 보복했다. 그건 양반이었다. 심기를 건드리면 어떤 누명을 씌워서든 기필코 제대로 살 수 없게 만들었다.
장 롬바드, '사자들이 엘라가발루스의 손님을 대하는 모습'(삽화) |
사람이 질식할 때까지 꽃잎을 마구 뿌리는 일, 말똥 따위가 섞인 음식을 주요리로 내오는 일, 잠든 사람들을 짐승 우리에 던져놓는 일….
엘라가발루스의 온갖 천박한 상상은 늘 현실이 돼 다가왔다. 그간의 폭군 황제를 경험한 로마 시민마저 엘라가발루스의 정신 나간 행동들은 충격과 공포였다. 사실, 그런 엘라가발루스가 '가짜 카라칼라 아들'이란 걸 알만한 사람은 진작부터 인지했다. 홀딱 넘어갔던 군은 뒤늦게 엘라가발루스에 대해 "짝퉁에 속았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엘라가발루스가 이상한 짓을 할 때마다 군 병사들은 입소문을 퍼뜨렸다. 아직 엘라가발루스의 재위가 4년도 안 됐을 때, 이젠 제국 전역의 로마인이 그를 "짝퉁", "미치광이"라고 조롱했다. 정신 차려보니 군심에 이어 민심까지 잃은 엘라가발루스는 급속도로 나락을 향해갔다.
한때 엘라가발루스의 킹메이커였던 마이사가 그의 몰락에 결정타를 쳤다.
"제게 좋은 생각이 있습니다." 221년, 어느 여름날. 마이사가 엘라가발루스에게 다가갔다. "태양신을 로마 최고 신으로 만들려면, 지금보다 더 종교 행사에 더 집중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통치는 누가 하고?" "이종사촌 동생 알렉산데르를 양자로 둬 귀찮은 행정을 떠안기면 되지요." 마이사는 엘라가발루스에게 속삭였다. "천상의 일에 집중할 기회입니다." 또 말을 듣지 않을 듯해 달콤한 말로 구슬렸다. 오, 지금보다 더 먹고 놀 수 있겠는데? 엘라가발루스는 솔깃했다. "그럴까?" 큰 고민 없이 승낙했다. 마이사는 곧장 엘라가발루스의 양자로 13살의 알렉산데르를 데려왔다. 아예 황태자로 만들어버렸다.
장 롬바드, '태양신 아래 죽은 시체들'(삽화) |
상황은 마이사의 생각대로 흘러갔다.
이제는 알렉산데르가 새로운 태양으로 떠올랐다. 개차반 엘라가발루스에게 질린 군과 원로원이 결집했다. 알렉산데르의 착실한 성격, 차분한 행동이 알려지자 로마 시민들도 지지했다. 먹고 마시면서 놀던 엘라가발루스는 인제야 심상찮은 분위기를 눈치챘다. 마이사에게 황태자 건은 없던 일로 하겠다고 말하고 싶었으나 이미 늦었다.
해가 바뀌었다. 엘라가발루스가 볼 때 해결책은 하나였다. 알렉산데르를 죽이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미 인망이 높아진 그를 무작정 처형하기에는 위험했다. 양아들이지만, 어쨌거나 아들을 죽였다는 말이 나올 것 또한 지금 상황에선 부담이 컸다. 엘라가발루스는 알렉산데르를 암살하기로 결심했다. 엘라가발루스는 끝까지 미련했다. 본래 암살 사주는 자객에게 은밀히 하는 게 맞는데… 엘라가발루스는 이 일을 무려 근위대장에게 명령했다. 근위대장은 모멸감에 젖었다. 엘라가발루스의 마지막 안전핀이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엘라가발루스에게 모욕적인 부탁을 들은 그날, 근위대장은 부하 근위병들을 싹 다 불렀다. 그리고 단어 하나하나에 힘을 줘 말했다. "…우리가, 엘라가발루스를, 죽이자."
222년 3월. 엘라가발루스는 궁에서 붙잡혔다. 당시 나이는 18살 정도였다.
"그는 도피를 시도했다. 발견되지 않았다면 (…) 궤짝에 숨어 어딘가로 도망쳤을 것이다." 카시우스 디오는 이렇게 썼다. 얼굴이 새파랗게 뜬 엘라가발루스가 궁 화장실에 숨었다가 걸렸다는 설도 있다. 권세를 모두 잃은 엘라가발루스의 끝은 비참했다. "그들(엘라가발루스와 그의 어머니)은 처형됐다. 그들은 옷이 벗겨진 채 도시 여기저기로 끌려다녔다. 그 자(엘라가발루스)의 시체는 티베리스강에 던져졌다." 카시우스는 이렇게도 서술했다. 제국의 모든 구성원이 엘라가발루스의 죽음에 환호했다고 한다. 티베리누스(Tiberinus). 죽은 황제에게 '국가의 적'이라는 말과 함께 붙은 마지막 칭호였다. 이는 '죽어서 티베리스강에 사는 물고기 밥이 된 사람'이라는 뜻이었다. 눈과 귀를 다 막고서 온 세상이 자기 뜻대로 될 줄 알고 설친 천둥벌거숭이의 말로였다.
〈참고자료〉
로마제국 쇠망사, 에드워드 기번, 민음사
세계상식백과, 리더스 다이제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