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 차입한계 알고 현금분할 요구한듯
2018년 친족 주식증여도 분할대상에
자사주 많아 소각시 경영권 방어가능
주가부양, 배당확대로 자금 마련할듯
주요 계열사 연쇄 배당 확대 기대할만
비상장 자회사 기업공개 속도 높일 듯
일반적인 전쟁보다 ‘내전(內戰)’이 더 치열한 이유는 상대에 대해 너무 잘 알기 때문이다. 소송 전에서도 가족들이 맞붙을 때 가장 치열하다. 남들은 알기 어려운 사실까지 들출 수 있기 때문이다. 이혼 소송이 가장 대표적이다. 마이크로소프트(MS)과 아마존 창업자의 이혼 소송 액수가 천문학적인 수준까지 올라간 이유다. 그렇다고 이혼에 따른 재산분할로 이들 기업의 경영권이 바뀌지는 않았다. 소송 기간이 길어 나름 준비할 시간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지분율이 낮아지더라도 일단 경영권만 확실히 쥐고 있으면 약해진 지배력은 충분히 복구할 수 있다.
30일 나온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이혼소송 2심 판결이 SK그룹 지배구조에 미칠 영향에 대한 관측이 다양하다. 노 관장 측에서 현금이 부족한 최 회장의 약점을 정확히 파고 든 점이 눈에 띈다. 재산분할에 응하기 위해서는 최 회장은 경영권에 미칠 영향을 차단하면서도 거액의 현금을 마련해야 한다. 방법은 없지 않다. 주주환원이다. 남은 대법원 판결에서 변수는 1심 판결을 뒤집은 결정적 계기가 된 노태우 전 대통령 비자금의 SK그룹 성장 기여 여부인데 수사 수준의 조사가 필요해 보여 예단이 쉽지 않다.
이번 2심 판결에서 가장 주목할 부분은 두 가지다. 먼저 노 관장이 주식이 아닌 현금 기준으로 재산분할을 요구한 점이다. 최 회장의 재산 상황을 보면 그 이유를 짐작할 만 하다. 최 회장 SK㈜보유지분은 1298만주로 의결권으로는 17.73%다. 주식 기준으로 65:35로 분할하면 노 관장이 받을 수 있는 몫은 455만주로 의결권은 6.22%다. 경영권에 도전하기 어렵다. 주식으로 나눠도 최 회장은 11.52%의 지분을 갖게 된다. 동생인 최기원 행복나눔재단 이사장의 지분까지 합하면 우호지분율은 약 20%다. ‘히든카드’는 발행주식의 25.7%에 달하는 자사주다. 이를 모두 소각하면 주식으로 재산분할을 해도 최 회장 측 우호지분이 30%에 육박하게 된다. 경영권을 지킬 만하다.
현금으로 분할하면 얘기가 달라진다. 최 회장의 가장 큰 자산은 SK㈜ 지분이지만 담보로 제공하고(433만주) 질권이 설정된(351만주)를 제외하면 처분 가능한 주식은 513만주에 불과하다. 시가로는 9000억원이 채 되지 않는다. 양도소득세 등을 내고 나면 손에 쥐는 매각해도 손에 쥐는 현금은 5000억원이 채 되지 않을 수 있다. 그룹 지배력이 걸린 지분이다. 세간의 관측처럼 최 회장이 이를 팔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노 관장 입장에서는 현금을 받지 못하면 최 회장이 보유한 자산에 대해 질권을 설정하면 된다. 기한 내 최 회장이 채무를 상환하지 못하면 노 관장은 질권으로 설정한 자산을 팔아 현금화 할 수 있다. 최 회장으로서는 보유지분의 35%가 아닌 전부를 잃을 수도 있는 셈이다.
최 회장 입장에서 어떤 대응이 가능할까? 대법원 판결까지 1년 이상 걸릴 것이란 예상이 많다. 짧지 않은 시간이다.
우선 SK㈜의 주가를 높여야 한다. 정해진 금액만 노 관장에게 넘기면 되는 만큼 주가가 오르면 부담이 줄어든다. 자사주 소각과 배당 확대 등을 기대할 만하다. SK 주가 최고기록은 2021년 기록한 36만원이다. 지금의 두 배가 넘는다. SK㈜의 이익잉여금(별도기준)은 12조원이 넘는다. 최 회장 지분율이면 최대 2조원까지 배당을 받을 수 있다. 세금을 고려하더라도 재산분할 대금을 마련할 정도는 된다. 배당으로 곳간이 줄면 자회사들로부터 배당을 늘려 채워야 한다. SK그룹 주주들로서는 배당 확대를 기대할 만하다. SK그룹주가 일제히 상승하는 이유다.
최 회장의 현금 공급원인 SK㈜의 곳간을 채우기 위한 알짜 자회사 상장에도 속도가 붙을 수 있다. 이미 상장을 추진 중인 SK에코플랜트와 상장이 유력한 SK E&S와 SK실트론 등이다. 지분율이 높고 덩치가 큰 SK E&S가 가장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모기업 현금 확보를 위해서는 구주 매출 비중이 높아져야 하고 그만큼 상장 후 유통 물량이 많아진다면 기업가치에는 부담 요인이 될 수 있다.
한편 이번 소송 결과로 곤혹스럽게 된 이는 최 회장 뿐 아니다. 지난 2018년 최 회장은 형제 등 친족에게 SK㈜ 지분 329만주(4.68%)를 증여했다. 재판부는 이 때 증여된 주식도 노 관장과 공동으로 형성된 재산에 포함시켰다. 이번 재판에도 불구하고 주식을 받은 최 회장의 친족들의 법적 부담은 없다. 최 회장이 부부 공동으로 형성된 재산을 임의로 증여했던 만큼 그 행위에 따른 손해를 노 관장에게 배상하면 되기 때문이다. 최재원 부회장 등은 당시 증여받은 주식을 대부분 팔아 현금화 했다. 이들이 노 관장에게 재산을 분할할 의무는 없다. 최 회장 입장에서는 현재 보유하지도 않은 자산까지 현금으로 분할해야 하는 셈이다. 반대로 최 회장의 친족들은 SK㈜가 배당을 확대하면 현금 수익이 늘어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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