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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쩌면 시 쓰기가 멈춰지지 않아서”…‘여든’ 나태주 시인의 봄볕같은 고백 [북적book적]
하루를 힘껏 살아낸 이에게 전하는 위로
오늘·나·집 키워드…소담한 표현 ‘눈길’
나태주 시인이 시 ‘풀꽃’을 쓰는 모습. 박해묵 기자/mook@heraldcorp.com

[헤럴드경제=이정아 기자]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 너도 그렇다’란 구절로 유명한 ‘풀꽃 시인’ 나태주(80)의 52번째 창작 시집이 나왔다. 어느덧 여든에 접어든 ‘인간’ 나태주가 되짚어보는 시(詩)와 삶을 주제로 한 ‘오늘도 나는 집으로 간다’다.

나 시인은 우리 곁의 작고 여린 존재를 감각해왔다. 이를 보여주듯 이번 시집에도 애정이 깃든 시인만의 섬세한 시선이 담겼다. 무엇보다 하루하루 힘껏 살아내고 있는 이들에게 전하는 온기 어린 위로가 봄볕처럼 따스하다. 그의 시를 찬찬히 읽다 보면 마치 오래된 내 집처럼 안온한 느낌이 드는 이유다. 그렇게 긴장이 풀리고, 마음이 열리면, 넋 놓고 앉아 시인이 써 내려간 시구를 곱씹게 되는 순간이 반드시 찾아온다.

이번 시집에는 지난해 5월부터 1년간 쓴 시 178편이 실렸다. 1971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당선돼 등단한 후 1973년에 첫 시집 ‘대숲 아래서’를 출간했으니, 그 후로 50여 년 동안 1년에 한 권꼴로 시집을 발표한 셈이다. 나 시인은 “강연과 사람 만남을 멈추고 허방지방 어지럽던 시기에 쓴 글들이 모인 시집”이라며 “시 쓰기만은 멈출 수가 없었고, 어쩌면 시 쓰기를 멈추지 않아 다시금 내가 살아난 것인지도 모르겠다”고 전했다.

나태주 시인. 박해묵 기자/mook@heraldcorp.com

이번 시집의 키워드는 오늘, 나, 집 등 세가지다. 나 시인의 시만큼은 ‘뜬구름 잡는 얘기’이거나 ‘이해하기 어려운 그들만의 세상’이 아니다. 시인은 “누구나 힘든 하루, 집으로 돌아가는 것 자체가 위로와 기쁨”이라며 “나아가 집은 영원의 집, 종언의 장소일 수 있다”고 했다. 어쩌면 시 쓰기의 본질과 다르지 않아 보인다. 수록작 ‘안녕 안녕, 오늘아’에서도 시인은 ‘이제는 나 반짝이지 않아도 좋아 / 억지로 환하고 밝지 않아도 좋아 / 나 이제 집으로 간다 / 오래된 얼굴이 기다리는 집 / 어둑한 불빛이 반겨주는 집 / 편안한 불빛 속으로 나 돌아간다 / 안녕 안녕, 오늘아.’라고 말한다.

특히 될수록 작고 단순하고 쉬운 시를 쓰는 나 시인의 소담한 표현들이 눈길을 끈다. 그는 ‘오늘도 순간순간 / 힘들고 어렵고 지친 당신을 위해 / 의자 하나 내드려요 / 몸이 가서 앉는 의자가 아니라 / 마음이 가서 앉는 의자예요’(수록작 ‘마음의 의자 하나’ 중)라고 위로하거나, ‘그것은 지구의 등허리 맨살을 / 밟는다는 것 / 이 얼마나 감격스러운 일이냐’(수록작 ‘다리에게 칭찬’ 중)라며 두 다리에게 감사해 하는 식이다.

나 시인에게 시 쓰기란 원해서 가는 길이므로 섭섭함이 남을 리 없는 길이다. 이런 마음을 비추듯 그는 ‘끝내 포기하지 못할 것을 위해 / 더 많은 것을 포기한다 / 그것이 나의 삶이었고 나의 일생 / 끝내 내가 포기하지 못하는 것은 / 시 쓰는 일 시인으로의 삶’(수록작 ‘포기’ 중)이라고 고백한다. 그는 천상 시인이다.

오늘도 나는 집으로 간다/나태주/열림원

dsu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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