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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재로 태어나도 길잡이 만나야 재능 유지할 수 있어”
이성주 교수, 한예종 영재원장 출신
“영재도 학생별 맞춤 교육이 필요
지속가능 위해 정신적 체력 중요”
바이올리니스트 이성주 [스테이지원 제공]

피아니스트 조성진, 임윤찬, 첼리스트 한재민 최하영, 바이올리니스트 양인모….

1990년대 초반만 해도 ‘문화 변방’이었던 한국은 지난 30년 사이 클래식 강국으로 떠올랐다. 지난 수년간 한국의 젊은 연주자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굴지의 음악 콩쿠르를 휩쓸고 있다.

그 중심에 한국 영재 교육의 ‘산실’인 한국예술종합학교 산하의 한국예술영재교육원이 있다. 전국에서 모여든 음악, 미술 영재원 수강생만 해도 3300명. 지난 20년간 700명이 세계 주요 콩쿠르 결선에 올라 110여명이 우승했다. 바이올리니스트 이성주가 영재원장을 지낸 2021~2024년까지 임윤찬, 양인모, 최하영, 위재원, 윤소희 등의 우승자가 쏟아져 나왔다.

이성주는 “눈에 띄게 타고난 아이들이 있다. 영재로 불리게 된 이 아이들은 음악에 대한 이해가 뛰어나고 일찌감치 자기만의 음악을 만들어간다”며 “음악은 평생 공부해야 하지만 악기는 몸이 자랄 때 같이 배우고 자라야 하기에 중학교 이전 배우고 익히는 것, 특히 어린 시절의 영재 교육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영재 교육’은 어려운 문제다. 그는 “영재로 태어나지만 얼마만큼 유지되느냐는 다른 문제”라며 “그 길을 가이드하는 교육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성주의 교육 철학은 확고하다. 세계 클래식 음악계의 큰 스승인 이반 갈라미언, 도로시 딜레이에게서 배운 모든 것이 그를 거친 학생들에게도 이어지고 있다. 이성주는 “모든 학생들이 각자의 페이스와 단계예 맞춰 성장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압박과 부담을 주는 엄격한 교육 이전에 학생들의 성향과 수준에 맞는 ‘맞춤형 교육’을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다.

“뛰어난 재능을 가졌지만 반짝하다 사라지는 친구들도 많이 있어요. 어린 나이에 최고 수준의 성취를 달성하다 보면 번아웃이 오기도 하고, 싫증이 나게 될 수도 있죠. 배워가는 과정에서 성장을 잘할 수 있는 길잡이를 해주는 것이 중요하죠. 빠른 성장보다는 필요한 테크닉과 음악 공부를 소화할 수 있도록 여유를 주는 것이 필요해요.”

이성주는 “아무리 뛰어난 연주자라 해도 음악 앞에서의 스트레스는 누구나 있다”며 “스트레스와 압박감이 쌓이다 보면 멘털이 무너지고 그것이 음악에 영향을 미친다. 결국 정신력이 가장 중요하기에 지속가능한 음악가로의 활동을 위해선 정신적 체력을 단련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질책보다는 조언과 격려를 강조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그는 “한창 콩쿠르를 준비하다 좌절할 당시 갈라미언 선생님은 ‘충분히 열심히 했고, 대회에서 일등을 하지 않아도 내겐 네가 일등’이라는 이야기를 해줬다”며 “그 말이 늘 힘이 됐다. 그래서 아이들에게도 일등을 바라보지 말고 ‘스스로의 연주에 만족했냐’는 질문을 먼저 한다”고 말했다. 이 과정을 통해 자신을 온전히 바라보며 긍정의 힘을 잃지 않도록 독려하는 것이다.

음악가이자 교육자로서 긴 길을 걸어온 이성주는 “20~21세기의 바이올린 교육을 미래 세대에게 전하는 것”을 앞으로의 10년 계획으로 뒀다.

그는 클래식 음악가들의 ‘엘리트 코스’로 불리는 미국 줄리어드 음대의 계보를 잇고 있다. 이성주는 세계 클래식 음악계를 이끈 이반 갈라미언, 도로시 딜레이를 비롯해 마가렛 파디를 사사했다. 특히 갈라미언과 딜레이 등 당대 거장들을 배출한 두 사람을 모두 사사한 음악가는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 한국인은 이성주가 유일하다. 한국 바이올리니스트 중에선 정경화가 갈라미언을, 사라 장이 딜레이를 사사했다.

이성주는 “난 두 스승의 유산을 물려받은 행운아”라며 “갈라미언 선생님의 정교한 테크닉을 바탕으로 한 메소드(방법론)와 딜레이 선생님의 음악적 해석과 접근 방식을 중시한 교육법을 정리해 다음 세대에게 물려주는 것이 나의 숙제이자 의무”라고 했다.

“요즘 젊은 바이올리니스트나 학생들은 기량은 월등한데, 점차 개성이 점점 사라지는 것 같아 아쉬워요. 지금의 아이들은 연주를 하는 법은 굉장히 잘 아는데, 풀어나가야 하는 법은 잘 몰라요. 악기를 마스터하지 않으면 어색한 표현이 나오게 돼요. 때문에 기본기를 갖추고 주법과 테크닉을 온전히 익힌 뒤 해석을 적용하는 것이 중요하죠. 두 스승을 모두 거친 마지막 세대로서 그 유산을 이어주고 싶어요.”

고승희 기자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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