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 = 서병기 선임기자]K 콘텐츠 생산의 비결은 콘텐츠 생산 과정의 치열함에 있고, 기획하고 제작하는 PD들에게 내재된 핵심적 연출관 즉, 연출의 철학에 달려있다고 주장하는 책이 나왔다.
아주대학교 홍경수 교수가 쓴 〈K-콘텐츠 어떻게 만드나요?〉(학지사, 방송문화진흥총서 236)라는 책이다.
'오징어게임'이 인기를 얻고 난 뒤에 전세계에서는 “어떻게 K 콘텐츠가 세계적 인기를 얻었을까?”, “특이한 드라마를 기획할 수 있는 한국 드라마 기획자의 역량은 어디에서 비롯되느냐?”, “어떤 체계와 관행이 한국 드라마 기획의 차별성과 경쟁력을 갖추게 했느냐?”와 같은 질문들이 쏟아졌다.
미디어를 통해 제기된 이런 질문에 대한 대답은 아직 뚜렷하게 정리되지 않았다. K 콘텐츠가 만들어진 비밀은 짧은 기자 인터뷰나 언론의 분석을 통해서 드러나기는 어렵다. K 콘텐츠 생산에 참여한 핵심 인력인 제작자의 감정과 생각과 의도를 심도 있게 파악함으로써 근접할 수 있다. K 콘텐츠 생산에 관한 질문인만큼 K 콘텐츠의 종주국 한국의 연구자가 타당한 대답을 내놓을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질문에 대한 답을 내놓기 위해 홍경수 교수는 2020~2023년의 대표 K 콘텐츠인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피지컬: 100〉, 〈유퀴즈 온 더 블록〉, 〈스트릿 우먼 파이터〉의 기획자인 5인의 PD들을 만나 심층 인터뷰를 통해 K 콘텐츠 생산의 비밀을 탐색했다.
홍 교수는 K 콘텐츠의 세계적 인기의 비결을 생산과정의 치열함으로 보았고, PD들에게 내재된 핵심적 연출관 즉 연출의 철학을 발견했다. 드라마 〈우영우〉의 경우, 기존의 생존경쟁의 전쟁을 이겨내기보다는 함께 사는 공존의 이념을 담고 있으며, 끊임없이 균형을 잡고자 하는 연출자의 강력한 의지가 드라마를 대중적이면서도 의미있는 콘텐츠로 손꼽히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홍 교수는 〈우영우〉의 유인식 PD가 사회적 문제를 회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마주보았으며 박은빈이라는 최적의 출연자를 캐스팅하여 드라마 역사에 기록될 극적인 드라마 미학을 창출했다고 보았다.
〈꼬꼬무〉는 SBS 교양국의 전통이라 할 수 있는 ‘철저한 시청자 시선지향’ 이념의 결과물로 볼 수 있으며, OTT 시대 지상파 교양의 응전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피지컬 100〉은 전 세계 시청자에게 호소하기 위한 ‘원초적 단순성’ 이념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이 홍 교수의 주장이다.
〈유퀴즈 온더 블록〉은 자세히 들여다보면 누추해보일 수 있는 ‘일상의 미학’을 ‘정중하고 섬세하게’ 담아냈다고 분석했다. 〈스트릿우먼파이터〉에서는 그동안 조명받지 못한 소외된 댄서들을 주인공으로 조명했고, 연출자에게서 ‘공의로움(righteousness)’이라는 철학이 발견됐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K콘텐츠 생산의 비밀은 방송 텍스트의 철저한 비평적 분석을 시도한 다음에 책임있는 기획자인 PD들과의 심층인터뷰를 통해서 탐색되었다. 이와 같은 발견은 한국 최초의 PD학 연구자인 홍경수 교수의 연구방법에 기초한 것으로, 15년여의 방송PD로서의 경력과 그 후 14년간 연구자로서 방송 비평 분석과 PD 심층인터뷰를 실천해온 경험을 바탕으로 더욱 탄탄한 설명력을 얻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홍 교수는 “누가 질문하느냐에 따라 대답의 차원이 달라지는 만큼, 방송 제작에 대한 이해와 연구자로서의 시선은 타당한 답을 이끌어내는 데 필수적이다” 고 저술을 마친 소감을 밝혔다.
이 책에는 접근이 쉽지 않은 생산자의 인터뷰 원문이 담겨있기 때문에 방송 연구자에게 기초자료가 될 수 있으며 방송 현업자와 방송을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콘텐츠 기획에 대한 풍부한 인사이트를 제공할 것으로 보인다.
한편, 홍경수 교수는 1995년 KBS에 방송 PD로 입사해 〈낭독의 발견〉과 〈단박인터뷰〉를 기획했으며, 2010년부터 교육자로서 방송 생산에 관한 연구와 교육에 집중해왔다. 저서로는 『오징어 게임과 콘텐츠혁명』, 『나는 힘센 기획자가 되기로 했다』 , 『예능PD와의 대화』 , 『확장하는 PD와의 대화』등이 있다.
고려대학교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대학원 언론정보학과에서 석사학위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는 아주대학교 문화콘텐츠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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