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택·유영국·이우환 작품 세계적 호평
11월 24일까지 성황리에 열리고 있는 ‘베니스 비엔날레 2024’. 둘러볼 기회가 있다면 놓치지 말아야 할 한국 작가들의 작품이 곳곳에 전시돼 있다.
한국 실험미술 선구자인 이승택(92)과 미국 개념미술가 제임스 리 바이어스(92)의 2인전 ‘공기를 채운 보이지 않은 질문들’은 이탈리아 베니스 팔라초 로레단에서 열리고 있다. 500년이 넘는 역사가 깃든 유서 깊은 궁전에서 열리는 두 작가의 작품은 놀랍도록 똑 닮아 있다. 나이만 같을 뿐 국적도, 사는 방식도, 작품세계를 표현하는 방식도 완전히 다른 두 작가다. 이들은 서로 만난 적도 없다. 당대 미술사조에 얽매이지 않는 작가로 손꼽히는 이들이지만, 누구의 작품인지 알 수 없도록 경계를 초월해 구성된 전시를 둘러보면 한 가지 질문이 뇌리에 꽂힌다. 이들은 과연 무엇에 기인해 이토록 비슷한 존재론적 경험을 공유하게 된 것일까. 특히 미술계 관계자의 눈이 쏠린 이 전시는 세계적으로 호평을 받고 있다. 8월 25일까지 볼 수 있다.
한국 추상미술의 개척자인 유영국(1916~2002)의 첫 유럽 개인전인 ‘무한세계로의 여정’도 퀘리니 스탐팔리아 재단 건물에서 열리고 있다. 전시의 백미는 작가의 화업이 절정에 다다른 1968년 작품이 잇달아 펼쳐진 전시장 3층이다. 100호 대작에 짙게 담긴 강렬한 원색과 기묘한 색면 대비, 여기에 산이 가진 기본 도형을 살린 절제된 기하학적 구도까지.... 관람객의 정신을 쏙 빼놓을 정도로 꿈틀거리는 자연의 숭고한 에너지가 화폭에 담겼다. 작가가 생전에 마지막으로 그린 그림부터 이번에 처음 공개된 ‘이건희 컬렉션’ 기증작 2점, 그룹 방탄소년단 멤버 RM의 소장작 1점 등도 전시된다.
베니스의 저명한 귀족 가문을 위해 18세기에 지어진 팔라초 디에도 궁전. 그런데 천장과 벽면에 이우환(87)의 점이 찍혔다. 그의 작품 ‘조응(사진)’ 연작이다. 이우환을 비롯해 우르스 피셔, 피에로 골리아, 카스텐 휠러, 이브라힘 마하마, 마리코 모리, 스털링 루비, 짐 쇼, 스기모토 히로시, 아야 타카노, 리우 웨이 등 세계적인 현대미술가 11명이 참여한 그룹전 ‘야누스(Janus)’ 전시가 막을 올렸다. 무엇보다 국가와 대륙이라는 경계를 무너뜨리고 동서양이 서로 주고받는 작품세계에 빠져들 수 있는 구성이다. 야누스의 두 얼굴이 전혀 다른 방식으로 설명된다. 해당 전시는 11월 24일까지 이어진다.
1960년대 말 기하추상부터 1970년대의 단색화, 1980년대의 신형상회화까지 이어지는 한국 현대미술의 진화 과정을 압축적으로 조명하는 전시 ‘한국 현대미술의 정수’도 인파라디소 아트 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다. 한국전쟁 전후 서양 미술사조가 본격적으로 유입되면서 동양철학이 지닌 정신적 가치가 내제된 한국식 실험예술이 전개됐다. 이러한 한국미술의 시대정신을 하인두(1930~1989), 박서보(1931~2023), 고영훈(72), 정혜련(47)의 ‘4인 4색전’으로 엿볼 수 있다. 전시장은 베니스 비엔날레가 열리는 자르디니 공원 초입에 위치해 있는 만큼 본전시장과 국가관을 가면 함께 둘러볼 만 하다. 11월 24일까지 감상이 가능하다.
베니스=이정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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