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대 국회의원 총선거가 끝난 후 민심이 출렁이고 있는 형국이다. 한국갤럽은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국정지지율이 총선 직후 2주 사이에 23~24%라고 밝혔다. 그의 재임 중 최저치를 기록한 것이다.(자세한 내용은 4월 19일 한국갤럽 홈페이지 참조)
국회 의석 300석 중 여당은 108석이다. 이는 야권이 대통령 탄핵과 헌법개정을 의결할 수 있는 정족수를 겨우 8석 차이로 방어했다는 얘기다. 헌정사상 여소야대 국회가 몇 차례 있었지만 이번 총선 결과 ‘여극소 야극대’라는 신기록이 나왔다.
선거를 평가할 때 통상의 선거(usual election)와 중대 선거(critical election)로 나눈다. 선거 결과로 커다란 사회변혁이 일어날 경우 중대 선거로 분류된다. 예컨대 1992년 김영삼 대통령이 당선된 선거는 그후 정치군벌 하나회 숙정과 금융실명제를 확립해 중대 선거로 꼽힌다. 1997년 김대중 대통령이 당선된 선거 역시 최초의 남북정상회담과 경제 문화 등 전반적인 남북교류협력 분위기의 확산 등을 가져 온 중대선거로 평가된다. 이번 총선이 중대선거가 되려면 이같은 평가기준과 비교해서 손색 없는 사회개혁이 뒤따라야 한다. 5.18민주항쟁 정신의 헌법전문 명기나 검찰 수사권과 기소권의 완전 분리, 국가보안법의 찬양고무죄 폐지입법 정도가 이행돼야 할 것이다.
지역 대표를 뽑는 국회의원 선거가 정당 수뇌 간 대결로 공천부터 득표 캠페인까지 점철됐다는 것은 문제였다. 당 중앙이 비대하고 지역조직은 왜소한 극단적 중대지소(中大地小) 현상으로 지역소멸 위기가 선거 과정에서도 그대로 노정됐다. 이같은 한국의 총선거에 대해 미국의 유력지 뉴욕 타임스는 “검투사 정치(gladiator politics)”라고 비판적으로 희화화했다. 민주주의 정치과정의 다원적 경쟁이 아니라 정당 수뇌 간 결투와 같은 모습이라는 것이다.
또 하나의 코리아 디스카운트 기사를 최근 세계적 정론지 파이낸셜 타임스가 내놓았다. 이 신문은 “한국의 경제 기적은 끝났는가”라는 기획기사로 저출산 고령화-낡은 경제성장 모델-높은 가계부채 등을 통렬히 지적했다. 오는 6월 이탈리아서 열리는 G7 플러스 정상회의에 한국은 초청받지 못했다. 세계 정론언론들의 연이은 코리아 디스카운트 기사가 결코 예사롭지 않아 보이는 이유다.
‘여극소 야극대’ 국회에서 거의 모든 정치평론가들이 당장 예견하는 것은 정권의 레임덕이다. 권력의 레임덕은 지지그룹 내부에서 배반 행동이 일어날 때 비애를 맛보게 된다. 지역 이념 세대의 지지층이 등을 돌리는 이른바 계층배반이 나타나고 심지어 핵심 추종집단마저 복지부동하면서 안면을 바꾼다. 검찰의 배반을 예측하는 사람들은 김건희 여사나 해병대 채상병 사건의 배후에 대한 수사를 슬슬 시작할 것으로 본다. 전 정부의 법무장관 출신으로 검찰의 속성을 가장 잘 아는 한 인사는 그 가능성이 50 대 50보다 훨씬 높다고 단언했다.
정권의 레임덕이든 몰락이든 중요한 것은 나라가 거덜나지 않도록 둑의 구멍을 막아야 한다는 사실이다. 이럴 때 “군자는 표변하고 소인은 혁면한다”는 주역의 한 구절이 생각난다. 기회주의적 변덕으로 얼굴빛만 바꾸는 혁면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생각을 뒤집어 국민 여망에 부응하는 ‘표변의 군자들’은 과연 얼마나 될까 궁금하다.
김재홍 서울미디어대학원대 석좌교수 전 서울디지털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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