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잔혹사/샘 킨 지음 이충호 옮김/ 해나무 |
독이 든 탄환 쏘기, 마취 없이 팔다리 이식하기, 톱밥과 유리로 상처 문지르기, 눈에 부식성 물질 뿌리기....
독일 나치 의사들이 자행한 비윤리적인 과학 실험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이들은 비(非)아리아인에 대한 의학실험을 허용했을 뿐만 아니라 도덕적 의무라고 합리화하기까지 했다. 이들은 저체온증 연구를 위해 직장에 체온계를 꽂아 사람들을 얼음물 욕조 속에 집어넣고, 고도가 인체에 미치는 영향을 확인하기 위해 사람들을 저압실에 가두기도 했다. 피험자들은 차라리 총을 쏴 죽여달라고 애원하거나 압력 불균형을 해결하기 위해 머리카락을 뽑으며 괴로워했다. 인간이 매일 바닷물을 마시면 얼마나 오래 살아남는지도 관찰했다. 피험자들은 갈증이 심한 탓에 걸레질한 바닥을 핥을 정도였다.
이러한 끔찍한 실험으로 목숨을 잃은 인원만 최소 1만5000명. 그 밖에 40만여명은 불구가 되거나 불임이 됐다. 아이러니하게도 많은 나치 의사는 “환자에게 어떤 해도 가하지 않겠다”는 내용의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한 사람들이었다.
비윤리적인 실험은 나치 의사들에게만 해당하지 않았다. 1932년 미국 정부는 대규모 매독 관련 연구에 착수했는데 실험지역으로 매독 감염률이 매우 높고 주민 대다수가 흑인인 앨라배마주 터스키기를 선정했다. 정부는 매독 환자들의 건강상태를 장기적으로 추적 관찰했다.
1950년대에 매독치료제인 페니실린이 널리 사용되기 시작했지만 의사들은 터스키기지역 환자들에게 페니실린을 공급하지 않았다. 오히려 매독균이 활개치도록 방치했다. 매독의 장기적 효과를 조사하기 위해서였다. 이를 위해 의사들은 고의적으로 중요한 정보를 숨기거나 매독 감염 사실을 알려주지 않았다.
과학자나 의사는 대개 똑똑하고 논리적이고 합리적일 것이란 편견이 있다. 그러나 역사를 되돌아보면 이들이 윤리나 법의 선을 넘은 일이 적지 않다. 소설 ‘지킬 박사와 하이드’의 실제 모델인 8세기 해부학자 존 헌터는 시신 도굴꾼과 거래해 수많은 시신을 사들이며 시신거래시장을 키웠고, 발명 천재 토머스 에디슨은 전류산업에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 개와 말에게 전기 고문을 가했다. 신경과 의사였던 월터 프리먼은 정신질환자들의 뇌 속을 얼음 송곳으로 헤집는 수술을 확산시켰다. ‘젠더’라는 용어를 처음 만든 심리학자 존 머니는 생물학적 기반을 무시하고 음경이 훼손된 아이에게 성전환수술을 강권해 한 사람의 인생을 비극으로 만들었다.
의약품은 수많은 생명을 구하고 기술은 인간을 더 편하게 해줬지만 비윤리적인 과학은 많은 희생자를 낳았고 과학공동체에 혼란을 줬다. 오늘날의 과학은 그러한 어두운 역사에 빚을 지고 있다.
미국 과학작가 샘 킨은 신간 ‘과학 잔혹사’를 통해 과학적 성취 뒤에 가려진 어두운 이면을 조명한다. 지나친 호기심, 지식에 대한 갈구, 과한 자부심에서 비롯된 명예욕 등 과학자가 타락하는 과정과 과학범죄에 있는 독특한 요소를 파헤친다.
저자는 과학의 남용을 막기 위해선 인성과 윤리가 반드시 뒷받침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현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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