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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도연, 27년 만에 연극 무대로…“배우로서 피 끓는 기분”
배우 박해수와 전도연이 23일 서울 강서구 마곡동 LG아트센터에서 열린 연극 '벚꽃동산' 제작발표회에 참석했다. [연합]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여주인공은 반드시 한국의 메릴 스트립이어야 해요.”

영국 내셔널시어터, 뉴욕 메트로폴리탄오페라 등 유수 극장과 협업한 세계적인 연출가 사이먼 스톤이 안톤 체호프의 ‘벚꽃동산’(6월 4일 개막·LG아트센터 서울)의 캐스팅을 앞두고 제작 주체인 LG아트센터에 이런 이야기를 꺼냈다.

사이먼 스톤 연출가는 개막을 앞두고 23일 마곡 LG아트센터 서울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벚꽃동산’의 여주인공은 매력적으로 보이기 어려운 역할이다. 무엇을 해도 사랑스럽고 매력적으로 보여야 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런 그에게 전도연은 ‘안성맞춤’ 배우였다. 스톤은 “당대 귀족인 여주인공의 인간적인 모습을 드러내며 관객과 연결돼있다는 느낌을 줘야 하는데, 전도연은 많은 역할을 했지만 악한 역, 선한 역 무엇을 해도 매력적이었다”고 말했다.

사이먼 스톤의 러브콜로 전도연은 1997년 ‘리타 길들이기’ 이후 처음으로 연극 무대로 돌아왔다. 그는 “도전이라고 하면 도전일 수 있겠지만, 배우 생활을 해오며 했던 작품보다 해야 할 작품, 해보지 못한 작품이 많다고 생각한다”며 “장르적으로는 연극이나 도전이라기 보다는 내가 하지 않은 것에 대한 작업과정 중 하나로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오랜만의 무대에 대한 두려움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는 “늘 연극에 대한 갈망은 있었지만 두려움이 컸다”며 “영화나 드라마에선 정제된 모습을 보여주지만 연극에선 정제되지 않은 채 머리부터 발끝까지 보여줘야 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럼에도 출연을 결심하게 된 것은 사이먼 스톤의 작품을 만나면서다.

“나를 온전히 관객에게 보여줄 수 있을까 두려웠어요. 비겁하지 않으면서도, 어떻게 하면 정중히 (섭외를) 거절할 수 있을까 고민하던 중 ‘메디아’를 보게 됐어요. 작품을 보는 내내 배우로서 피가 끓었어요. 배우와 연출가가 어떻게 이 작품을 해냈을까 생각할 겨를도 없이 (‘벚꽃동산’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스톤의 ‘벚꽃동산’은 원작의 배경을 뒤바꿨다. 19세기 제정 러시아 시대는 동시대 서울로 자리를 옮겼다. 원작이 몰락한 여성 지주 류바가 벚꽃동산을 지키려 분투하는 과정을 담는다면, 스톤의 ‘벚꽃동산’에선 한국 여성이 사라질 위기의 집을 지키려 노력하는 모습을 그려간다.

스톤은 “‘벚꽃동산’은 전통과 혁신, 세대 간 갈등 등 급변하는 사회가 배경인 작품인데, 그 모습을 보여주기에 한국 사회가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했다”며 “원작이 나왔던 당시 러시아도 전통과 현대 사이에서 급변하던 시기였다는 점에서 한국과 비슷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스톤은 ‘친한파’를 자처할 정도로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이 깊다. 그는 17세이던 2002년 7월 호주 멜버른 필름 페스티벌에서 영화 ‘올드보이’를 보고난 이후로 한국 영화와 책을 섭렵했다. 스톤은 “한국 배우는 전 세계 배우들과 다른 독특함이 있다. 희극과 비극을 오가는 것이 쉽지 않은데 한국 배우들의 연기엔 비극적인 상황에서도 웃음이 나오는 희극적 상황으로 넘나드는 매력이 있다”며 “영화, 드라마에서 봐오며 동경했던 배우들이 옆에 앉아 있다는 것이 너무나 큰 영광이고, 내가 세계 최고의 행운아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작품엔 전도연을 비롯해 박해수, 손상규 등이 함께 한다. 전도연은 류바를 재해석한 인물이자 아들을 잃고 미국으로 떠났다 한국으로 돌아온 송도영 역을 맡았다. 전도연은 “인물들이 한국인으로 바뀌고 한국적인 정서가 들어가서 많은 것이 바뀌었을 것이라 생각할 수 있지만, 이 이야기는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다. 정체된 인간들, 변화해야 하는 것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박해수는 원작의 냉철한 상인 로파힌에 해당하는 황두식을 연기한다. 스톤은 ”박해수는 세계에서 제가 가장 좋아하는 배우 중 한명”이라며 “강렬한 느낌과 함께 연약함을 담고 있는 배우다. 연약함과 강함을 오가는 능력이 뛰어나 그를 캐스팅했다”고 했다.

박해수에게 ‘벚꽃동산’은 놓치고 싶지 않은 작품이었다. 특히 그는 “전도연 선배님과 한 번도 작품을 해보지 못했고, 무대에서 공연을 하신다는 것에 대한 놀라움과 반가움이 커 꼭 참여하고 싶었다”고 했다. 자신이 연기할 황두식에 대해선 “스톤 연출가와 함께 이름을 지었다. 2024년 우리가 겪는 이야기를 하고 있고, 우리가 느낄 수 있는 정서를 계속 찾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초호화 캐스팅으로 관객과 만나는 연극 ‘벚꽃동산’은 초여름 관객들의 ‘최고 기대작’이다. LG아트센터는 2020년 겨울부터 해외 관객을 겨냥해 작품을 제작, 차후 세계 투어도 이어갈 계획이다.

개막을 앞두고 연습에 한창인 전도연은 “이번 공연으로 어떤 평가를 받고 싶냐”는 질문에 “어떤 평가를 받아야겠다고 생각했다면 이 작품을 선택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전 분명 실수도 할 거예요. 하지만 실수가 두려웠다면 이 작품을 선택하지 않았을 거예요. 그 실수를 통해 배우로 성장할 거예요. 관객에게 보여주고 싶어서가 아니라 좋은 작품 참여하고 싶었던 마음이 컸던 것이기에 (저보다는) 이 작품에 대한 평가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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