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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도권 “서울대 입시보다 어려웠던 공연 준비…온전히 피에르가 될 수 있을 지 걱정” [인터뷰]
‘그레이트 코멧’으로 뮤지컬 복귀
메마르고 부서진 삶에 위로와 치유

뮤지컬 ‘그레이트 코멧’을 통해 10년 만에 무대로 돌아온 배우 하도권 [앤드마크 제공]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그 어떤 작품보다 고통스러웠고, 서울대 음대 입시보다 힘들었어요. (웃음)”

하루에 8~10시간씩 피아노와 아코디언 연습을 했다. 성악과 진학을 위해 서울대 음대 입시를 치를 당시 피아노 실기 과정이 있어 완전히 초보는 아니었지만, 오랜 시간이 지나선지 손이 굳은 상태였다. 배우 하도권(47)은 “제작진이 1000만원이 넘는 아코디언을 사와 연습하라고 했다”며 캐스팅 직후를 떠올렸다.

뮤지컬 ‘그레이트 코멧’을 통해 10년 만에 무대로 돌아온 하도권의 지난 수개월은 ‘고통의 날들’이었다.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를 기반으로 태어난 뮤지컬은 러시아를 배경으로 부유한 귀족 피에르와 젊은 여인 나타샤, 군인 아나톨의 얽히고 설킨 운명을 그려나간다.

팝, 일렉트로닉, 힙합, 록, 클래식 등 시대를 초월한 다양한 음악이 넘나드는 뮤지컬에서 피에르의 존재는 독특하다. 공연 초반부 등장인물 캐릭터를 설명해주는 노래 가사에 그 힌트가 있다.

“나타샤는 어려(이하 중략), 소냐는 착해, 마리야는 엄해 아나톨은 핫해, 엘렌은 헤퍼, 아나톨 누나 피에르 부인, 그 다음은 피에르, 혼란스럽고 어정쩡한, 돈은 많은데 안 행복한, 유부남 피에르, 위기의 피에르, 우리의 피에르.”

그 피에르가 바로 하도권이다. 모두가 즐거운 시간을 보낼 때 방구석에 틀어박혀 책과 음악을 즐기고, 피아노와 아코디언을 연주하는 남자. 최근 서울 종로의 한 카페에서 만난 하도권은 “피아노 코드 몇 개만 치면 된다고 해서 출연을 결심했는데, ‘취업 사기’였다”며 웃었다.

하도권은 서울대 성악과를 졸업하고 뮤지컬 배우로 데뷔했으나, 2016년 드라마 ‘고호의 별이 빛나는 밤에’, 영화 ‘고산자, 대동여지도’를 통해 매체에 발을 디딘 이후 오랜 시간 무대와 멀어졌다.

그는 “처음 매체 연기에 도전하고자 했을 때 퇴로를 막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며 “뮤지컬이라는 무대를 도망갈 곳으로 생각하지 않고, 성공하기 전에는 돌아가지 않는다는 생각으로 매진했다”고 말했다. 그의 대극장 뮤지컬 무대는 2014년 ‘아가씨와 건달들’ 이후 10년 만이다.

배우 하도권 [앤드마크 제공]

차곡차곡 쌓은 필모그래피가 많다. 첫 드라마 이후 ‘황후의 품격’(2018), ‘의사요한’(2019), ‘스토브리그’(2019), ‘펜트하우스’(2020, 2021), ‘마녀식당으로 오세요’(2021), ‘붉은 단심’(2022), ‘구미호뎐1930’(2023), ‘내 남편과 결혼해줘’(2024)에 이르며 얼굴을 알렸다. 하도권이 “나를 세상에 내어준 작품”으로 꼽는 ‘스토브리그’ 속 야구선수 강두기 캐릭터는 ‘펜트하우스’ 마두기로, ‘마녀식당으로 오세요’의 오두기로 진화했다. 그가 ‘두기 전문배우’로 불리는 이유다.

지난 시간들을 돌아보며 그는 “몇 년의 공백을 거치는 동안 바쁘고 싶었고, 잠을 못 잘 정도로 일하고 싶다는 생각이 절실했다”며 “그래서인지 힘든 줄도 모르고 일을 했다. 그게 꿈이었기에 더 그렇게 하고 싶었다”고 했다.

다시 무대로 돌아온 것이 이전의 ‘다짐’처럼 “성공 후의 귀환”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조금 더 나이를 먹게 되면 무대로 돌아가기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이 컸고, “이제는 (매체와 무대를 병행할)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는 것이 그의 판단이다. 그 무렵 찾아 온 슬럼프도 영향을 미쳤다. 쉼 없이 달려온 지난 시간, 그에게 그 시간들은 축복이자 고난이었다. 한 해 동안 많게는 다섯 편의 드라마에 출연하던 해도 있었다.

“그동안 꿈꿔왔던 일상이었는데, 나도 모르게 말라가고 있더라고요. 지난해쯤 지쳤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그 무렵 ‘그레이트 코멧’의 대본을 받게 됐어요. 피에르가 가진 외로움과 결핍이 제 감정과 맞닿았고, 두려울지언정 새로운 걸음을 향해 나아갈 수 있다는 위로를 주더라고요. 작품을 하면서 에너지를 받고, 충전받는 느낌이 들었어요.”

배우 하도권 [쇼노트 제공]

2004년 뮤지컬 ‘미녀와 야수’로 데뷔, 올해로 데뷔 20주년을 맞은 하도권은 뮤지컬 ‘그레이트 코멧’ 제작진과 인연이 깊다. 당시 함께 작업했던 제작진이 지금 ‘그레이트 코멧’을 이끄는 제작사 쇼노트의 수장들이다. 하도권은 “적절한 타이밍에 여러모로 운명적 만남이었다”며 “내가 받은 위로를 전달하고 싶어 함께 하게 됐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작 연습 기간은 ‘고통의 연속’이었다. 그는 “내내 무섭기도 하고, 두렵기도 하고 복잡한 감정이었다”고 했다. 10년의 무대 ’경력 단절‘, 익숙해진 매체 연기를 벗고 다시 ’무대화‘하는 과정도 필요했다. “매체에서 사용하는 언어를 벗고 발음을 비롯한 언어적인 부분을 바꾸는 것”에도 매진했다.

가장 힘든 것은 악기 연주를 위한 연습이었다. 이 작품에서 하도권이 연주하는 곡이 꽤 많다. 아코디언 세 곡, 피아노 다섯 곡. 문제는 아무리 연습해도 ‘실력 향상’을 기대하기 힘든 아코디언 연주에 좌절을 거듭했다는 것이다. 하도권은 “겉으로는 건반악기라 피아노와 비슷해 보이지만 완전히 다른 별개의 악기”라며 “눈으로 건반을 확인할 수도 없는데 한 음을 잘못 누르면 모든 음악이 잘못돼 버리는 상황인 데다, 간단한 두 세 마디를 익히는데 며칠씩 걸려 스트레스가 상당했다”고 토로했다.

“공연 날짜에 맞춰 준비할 수 있을지 두려움이 컸고, 난 바보인가, 자책도 많이 했어요. (웃음) 고통스러운 과정들을 지나며 저 스스로를 ‘피에르화’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피에르의 아픔과 감정을 온몸으로 체화하며 그는 “지금의 나이에 피에르를 만났기에 이 사람의 감정들을 온전히 표현할 수 있었던 것 같다”며 “힘든 사람에겐 희망의 메시지를, 사랑이 없는 사람에게는 사랑의 메시지를 전해주고 싶다”고 했다.

‘그레이트 코멧’은 기존의 뮤지컬과 달리 관객이 무대에 올라 배우들과 춤을 추며, 관객이 무대의 한 장면이 되는 ‘관객 참여형 뮤지컬’이다. 하도권은 “이 작품의 마지막 조각은 관객”이라며 “관객이 파란색의 조각을 맞추면 파란색의 공연이 된다. 관객에 따라 전체 공연의 색이 달라진다”고 말했다.

배우 하도권 [앤드마크 제공]

오랜만에 서게 된 무대는 매일 하도권에게 ‘초심’을 되새기게 한다. 그는 “이 작품을 하면서 점점 겸손해진다”고 말했다. 매일의 한계에 부딪히며, 자신을 단련해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피에르의 “돌아본다. 나는 좋은 사람으로 살았나. 충분히 사랑했나. 사랑하지 않고 죽는다면 나는 잠든 채 죽는 것”이라는 노랫말은 하도권이 스스로에게 던지는 인생의 질문이기도 하다.

그는 “전엔 기회가 왔을 때, 내가 열심히 했고 최선을 다했으니 잘 될 수 있었다고 생각했다”며 “하지만 이 작품을 하다 보니 나의 열심으로 이룬 것이 아니라 그저 주어진 배역의 옷을 입었기 때문에 이 자리에 올 수 있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고 말했다. 매일의 공연은 부담의 연속이다. 오랜만의 무대 복귀에 “가장 좋은 것을 꺼내고 싶은 마음이 컸다”고 한다. 그의 부담 안엔 “기대감을 주는 배우”가 되고 싶은 마음으로 가득 채워져 있다.

“때로는 웃음으로, 때로는 눈물로 위로를 주는 배우이고 싶다는 생각을 해요. 화려하지 않아도 제 연기를 통해 누군가 위로를 받을 수 있다면 그게 가장 큰 보람일 것 같아요.”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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