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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헤럴드광장] 횡재세로 민생 살피겠다는 ‘로빈후드’ 넘치는 한국

이재명 대표는 11월17일 민주당 최고위원회의에서 “민주당은 고금리로 엄청난, 특별한, 예상하지 못한 이익을 거둔 금융회사와 고에너지 가격에 많은 이익을 거둔 정유사 등에 대해서 횡재세를 부과하는 입법을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재명류의 ‘로빈후드’가 넘처나고 있다.

한국에서 횡재세 부과가 타당하지 않은 원천적인 이유는 OECD 회원국 38개국 중 미국, 독일, 영국 등 24개국은 법인세 과표구간이 하나인 데 한국은 매출을 많이 낼수록 법인세율이 높아지는 ‘4단계 누진 구조’이기 때문이다.

정치권에서 쉽게 말하는 석유 횡재세도 간단치 않다. 셰브론, BP 등 해외 정유사들은 자체유전을 갖고 있다. 유전개발이 성공하면 말그대로 ‘잭팟’을 터뜨리는 것이니, 횡재세를 부과할 수 있다.

이처럼 유럽은 횡재세를 원유를 투입해 석유제품을 생산하는 ‘하류 부문’이 아닌 석유, 가스 자원을 개발하는 ‘상류 부문’(up-stream)에 부과하고 있다. 하지만 SK이노베이션, GS칼텍스 등 우리나라 정유회사들은 유전개발이 아닌 정제마진에 수입을 거의 의존하기 때문에 횡재세 부과는 처음부터 가당치 않다.

일각에서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전쟁이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지난해 상반기에만 국내 4개 정유사가 전년 동기 대비 215.9%가 늘어난 12조3203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렸으니 초과이득에 대해 횡재세를 부과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2020년 코로나19 사태로 주요 정유회사 4곳이 수조 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을 때 정부는 움직이지 않았다.

횡재세 부과는 역사적으로 실패하기도 했다. 미국은 1979년 석유회사의 이익이 급증하자 1980년 초과이윤을 환수하는 법을 만들었다가, 1988년에 폐지했다. 당시 미국 의회 보고서에 따르면 세수의 실제 증가분은 ‘예상액의 약 5분의 1’에 불과했다. 새로운 세금으로 기업의 이익이 줄어들자 법인세도 감소했기 때문이다.

반면 세금으로 인해 석유의 생산은 줄었고 수입은 늘어나 국제유가 변동에 취약해졌고, 석유산업과 유관 산업에 종사하는 수많은 중소기업과 개인들이 피해를 봤다.

횡재세 후보로 은행산업을 보자. 미국이 인플레이션을 진정시키기 위해 고금리 정책을 쓰면서 고금리는 미국을 넘어 전세계적 현상이 되어 버렸다. 금융산업은 뜻밖의 호황을 누렸다. 은행이 영업을 잘해서 수익을 거둔 것이 아니니 각국은 횡재세 도입 경쟁을 벌였을 법도 하다.

영국, 프랑스, 독일은 신중하거나 부정적이었고 이탈리아는 예외였다. 지난 8월 각료회의에서 시중은행에 일회성 특별세를 부과하는 안건을 승인해 횡재세를 부과했다. 그러자 곧바로 방코BPM 등 주요 은행 주가가 5% 넘게 급락했다. 유럽중앙은행(ECB)은 9월 의견서를 통해 “횡재세 법안은 은행을 경기침체에 취약하게 만들 수 있다”고 지적했다. 결국 이탈리아는 횡재세 부과에 상한을 두는 등 원안에서 크게 후퇴했다.

우리나라에서 횡재세가 도입되면 올해 은행들은 ‘1조9000억원’의 세금을 ‘더’ 내야 한다. 은행이 법인세만 더 내면 그것으로 모든 것이 끝나지 않는다.

문재인 정권 초기 ‘2017년 최저 임금 16.5% 인상’ 폭거를 소환해 보자. 노동자들은 열광했다. 모든 것이 그대로이고 최저임금만 올라가면 노동자의 임금소득은 그만큼 올라갈 것이다. 하지만 진실은 다르다. ‘최저임금이 급격히 올라간 만큼’ 근로자는 일자리를 잃었다.

횡재세를 부과하면 얼마간 세금을 더 걷을 수 있겠지만 시중은행 주가는 폭락할 것이다. 주주의 이익이 크게 해쳐질 것이고 경영진은 주주에 대한 배임혐의를 피하기 위해 위헌 소송에 나설 것이다.

횡재세가 타당하지 않은 또 다른 이유는 ‘고금리·저성장 국면이 계속되면서’ 빚을 못 갚는 차주들이 늘어날 위험이 커진다. 그러면 은행 입장에서는 부실채권이 그만큼 더 쌓일 것이다. 대손충당금을 쌓는 등 은행의 손실흡수 능력을 확충해야 한다.

금융산업은 인가산업이기에 은행의 초과이윤은 ‘횡재세가 아닌 경쟁촉진’으로 풀어야 한다. 경쟁촉진이 단기대책이 될 수 없다면, 금리인상으로 이자부담이 커진 자영업자와 서민의 고통경감을 위해 은행이 일정금액을 ‘협력기금’으로 내놓는 방안을 검토할 수 있다. 횡재세를 부과하는 것보다 훨씬 ‘친시장적’이다.

횡재세가 입법화된다면 ‘성공을 처벌하는’ 것이다. 삼성전자가 반도체 호황으로 돈을 벌 때 마다 횡재세를 냈다면 삼성전자는 글로벌 일류기업이 될 수 없었을 것이다. 상황을 깊이 천착하지 못한 채 정치적 이득을 얻기 위해 인기에 영합하는 불나방 로빈후드를 경계해야 한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명예교수

joz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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