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이 유럽 최대 경제대국에서 ‘유럽의 병자’로 전락할 위기에 처했다.
한국은행은 3일 발간한 해외 경제포커스 ‘최근 독일 경제 부진 배경과 시사점’에서 “올해 독일은 주요 7개국(G7) 가운데 유일하게 역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경제 상황이 단기에 개선되기 어려워 ‘유럽의 병자’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고 분석했다.
독일은 지난해 4분기(-0.4%)에 이어 올 1분기에도 경제성장률이 -0.1%에 머물며 ‘기술적 경기침체’(2개 분기 연속 역성장) 국면에 접어들었다. 올 2분기에도 독일은 0% 성장으로, 경제가 사실상 제자리걸음을 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미국(1.8%), 일본(1.4%), 프랑스(0.8%) 등 주요 선진국과 달리 독일의 올해 연간 성장률이 -0.3%에 그칠 것으로 보고 있다. 수출 제조업에 치우친 산업구조와 우크라이나 전쟁 및 중국 경기침체 같은 외부 악재, 노동인구 고령화 등의 요인이 한꺼번에 작용하면서 경제가 큰 타격을 입고 있다는 진단이다.
독일은 기존의 강점이 오히려 성장의 족쇄가 된 양상이다. 수출과 제조업 의존도가 높아 정보기술(IT) 등 첨단 산업 경쟁력을 충분히 키우지 못했다는 것이다. 유엔산업개발기구(UNIDO) 등에 따르면 독일은 2021년 기준 글로벌 제조업 경쟁력지수에서는 1위인 반면 디지털산업 경쟁력은 세계 19위에 머물렀다. 연구·개발(R&D) 투자 규모는 세계 4위지만 투자 대부분은 자동차, 전자기계 등 기존 산업에 집중돼 있다. 중국 경제의 위축도 무역의존도가 높은 독일에 막대한 충격을 미쳤다. 중국은 7년 연속 독일과 교역 비중이 가장 큰 국가다. 고령화 또한 성장동력 약화로 이어졌다. 55∼64세 고령층의 노동시장 참가율은 2000년 43%에서 2018년 73%로 뛰었는데 이들이 은퇴 연령에 도달하면서 2035년이 되면 노동력 부족 규모가 700만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독일의 위기 상황은 경제 형태가 유사한 한국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한국 역시 제조업과 중국 의존도가 높고, 인구고령화로 노동생산성은 둔화되고 있어서다. 탈원전 정책으로 에너지위기를 겪고 있는 것도 닮은꼴이다. 한국은 지난 1, 2분기 0%대의 성장률을 기록했다. 현 추세라면 연간 성장률이 25년 만에 일본에 역전당할 수 있다. 이전 1998년은 한국이 외환위기를 겪은 시기였다. 독일을 반면교사 삼아 대비책을 서둘러야 하는 이유다.
정부는 4일 비상경제장관회의를 열고 최대 181조의 무역·수출금융을 공급해 ‘차이나 리스크’에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수출시장 다변화의 성공 사례가 이어져야 대책에 무게감이 실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