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유럽연합(EU)은 일본 오염수 방류계획이 국제 안전 기준에 부합한다고 평가한 IAEA 검증 보고서에 대해 환영한다면서, 향후 일본 정부의 철저하고 투명한 모니터링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늘 그래 왔듯이 여전히 진영에 따른 의견 대립이 뜨겁다. 보고서 작성에 일본 정부가 개입했다는 주장이나 국제적 망신이라는 주장은 국민을 혼란스럽게 하기는 마찬가지인 듯하다.
수년 전 사드(TTAAD) 사태 시 일부 정치인은 사드 운용에 따른 전자파에 대해 ‘전자파 밑에서 내 몸이 튀겨질 거 같아’라는 괴담송을 부르며 춤을 췄고, 성주 참외는 ‘전자레인지 참외’라는 괴담도 난무했다. 하지만 최근 5년 만에 발표된 환경영향평가서에서 전자파 수치는 인체보호 기준치의 530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고 한다. 과학적 근거는 무시한 채 오로지 정치적 목적에만 활용한 행태는 국민에게 크나큰 상처를 남겼다.
탈원전도 마찬가지다. 영화 거장 올리버 스톤 감독이 비과학적인 영화라고 직격한 ‘판도라’에 나오는 매우 낮은 확률의 원전 사고에 대한 괴담이 난무한 가운데 탈원전 정책은 강행됐고 그 결과, 그동안 애써 육성해 온 원자력 관련 고급 인력들은 불과 수년 만에 대폭 감소해 세계적 경쟁력이 상실되고 있다. 또한 국민의 삶과 직결되는 전기요금 인상에 대한 체감은 급증하고 있다.
소위 ‘괴담’의 행태는 역사적으로 항상 나타났었다. ‘호랑이보다 무서운 곶감’이라는 설화로부터 현재의 다양한 사회적 이슈까지 우리의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 소문과 괴담은 밀접하게 이어져 왔었다.
하지만 전래동화에는 권선징악과 같은 해학적인 부분이 두드러졌다면, 최근의 괴담은 과학적 근거가 미약한 상태에서 정치적 실익을 위해 갈등을 조장하고 선동하기 위한 도구의 일부로 이용되고 있는 듯하다.
인류 역사상 최대 규모였던 제2차 세계대전으로 눈을 돌려보자. 음악을 사랑했던 히틀러는 ‘괴벨스의 주둥이’로 불린 라디오를 통해 자국민에게 프로파간다(정치 선동)를 일방적으로 전파했다. ‘거대한 거짓말을 계속 반복하면 대중은 결국 그것을 믿게 된다’는 괴벨스의 주장대로 전쟁의 촉매제가 됐고 그 결과, 온 인류에게 막대한 피해를 줬다.
하지만 1971년 노벨평화상을 받은 독일 빌리 브란트 총리의 폴란드를 향한 진심 어린 사과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독일 정부는 자국민에게도 큰 아픔을 준 과거사에 대한 깊이 반성하고 있다. 그리고 이를 기반으로 사회적 통합을 이루고 경제 발전에 집중해 유럽연합(EU), 더 나아가 전 세계에 기여할 수 있는 국가로 탈바꿈했다.
우리의 상황은 어떠한가. 2008년 광우병 사태 당시 팀장을 맡았던 시민단체 대표는 최근 ‘광우병은 대통령을 탄핵시킬 수단이었을 뿐 광우병과 팩트에 대해 회의를 한 적이 없었고 괴담정치가 일상화하는 계기가 됐다’고 한다. 과학적 근거에 의해 사실관계가 입증돼도 감정적으로 선동만 일삼던, 자칭 전문가라는 사람들은 시기에 따라 주제만 바뀔 뿐 괴담들을 이어가고 있고, 이에 따라 국민은 겪지 않아도 될 갈등의 폭풍 속에 놓여 있다.
시대가 바뀌었다. 그간의 사회적 이슈에 대한 갈등을 통해 국민도 학습효과를 지녔다. 이슈에 대한 진실은 언젠가는 밝혀진다. 프랑스 정치철학자 조제프 메스트르는 ‘모든 국민은 자신의 수준에 맞는 정부를 갖는다’고 했다. 이제는 호랑이 등 위에 올라타려는 꾼의 흔들림에서 벗어나 대한민국이 한 단계 진일보하기 위해서는 국민뿐만 아니라 정부 및 정치지도자 모두가 상호 유기적으로 성숙돼야 할 때다.
정부는 정치적 유불리에 흔들리지 않고 오직 ‘국익’과 ‘국민’만을 위한 위민(爲民) 정신을 잊지 않아야 한다.
정치인은 신념에 따라 정치적 주장을 할 수 있지만 과학적으로 입증된 사실이 나왔을 때는 잘못된 주장에 대해 진솔하게 반성하고 한 단계 성숙된 발전의 계기로 삼은 ‘유쾌한 실패’의 정신을 체화해야 할 것이다. 예언가 노스트라다무스를 빗댄 신조어들로부터 본인들의 모순됨을 질타받기 전에 말이다.
국민도 사회적 이슈들을 둘러싼 괴담들에 대해 정치적 호오(好惡)에 휘둘리지 말고 과학과 기술을 토대로 검증된 진위(眞僞)에 따라 이성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분별력’을 키워 정치지도자를 뽑고 정부를 만들어 대한민국이 내외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탄탄한 기반을 다져야 할 것이다.
‘좋은 소문은 걸어가고, 나쁜 소문은 날아간다’라는 속담이 있다. 나쁜 일일수록 소문은 먼 데까지 널리 퍼진다는 뜻이다.
괴벨스가 가장 상대하기 어려웠던 세력은 ‘현실에 눈을 감지 않는 사람들’이라 했다. 우리 사회에서 좋은 소문은 느리게 걸어가더라도 제대로 퍼질 수 있도록 현실에 두 눈을 뜨고 세상을 똑바로 직시하는 국민이 나날이 늘어나기를 기대해본다.
김형렬 기계설비건설공제조합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