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경호 경제부총리와 한국은행이 전망한 대로 지난달 소비자물가지수가 2%대(2.7%)로 내려왔다. 2%대 물가상승률은 지난 2021년 9월(2.4%) 이후로 21개월 만이다. 석유류 가격이 역대 최대폭(25.4%) 떨어지면서 물가상승 압력을 끌어내린 데 힘입었다.
한국 경제가 순항하려면 2∼3%대 GDP(국내총생산) 성장, 물가상승률 2%, 무역수지 흑자 등 3박자가 잘 맞아야 한다. 어느 것 하나 흔들려도 탈이 난다. 이 가운데 물가상승률 2%에 청신호가 켜졌다는 것은 다행이다. 물가가 안정되면 내수가 진작되고 이는 지금 가장 어려운 지경에 처한 자영업·소상공인들이 딛고 오를 수 있는 발판이 될 수 있다. 올 하반기 중 경제정책 기조가 인플레이션 대응에서 경기 진작으로 바뀔 것이란 전망까지 나오는 이유다.
공식물가 지표는 지난해 7월 6.3% 정점을 찍고 천신만고 끝에 2%대로 내려왔지만 소비자들이 느끼는 체감물가는 여전히 높기만 하다. 마치 높은 곳 어딘가에 착 달라붙은 듯 쉽사리 내려오지 않는 ‘끈적한 물가(Sticky Inflation)’가 문제인 것이다. 직장인은 점심값, 주부는 밥상물가, 자영업자는 전기·가스와 재료가격에 민감하다. 전년 동기에 비해 두 자릿수로 치솟은 이들 물가는 내려올 줄을 모른다. 정부 압박으로 라면값 등 일부 품목을 50~100원씩 내린다고 하는데 이 같은 ‘찔끔 인하’로는 물가인하 효과를 체감하기 힘들다. 기저효과도 물가 착시의 원인이다. 지난해 6월 물가상승률은 6.0%다. 여기에 2.7% 더 오른 것은 결코 적은 게 아니다. 정확히 말하면 물가가 아니라 물가상승률이 떨어지고 있는 것이다.
최근 소비자심리가 반등하고 무역수지 적자폭이 축소되고 있는 것은 하반기 경제 운용에 청신호다. 정부 계획대로 하반기 정책역량을 경기회복에 집중하려면 내수 진작을 위한 소비활성화에 초점을 맞추는 게 바람직하다. 이를 위해서는 서민 체감물가를 잡는 게 급선무다. 우크라이나전의 향배, OPEC(석유수출국기구)의 감산 움직임, 중국의 경기 상황, 기상이변과 농업수출국의 작황에 따라 국제유가와 농산물 값은 언제든 다시 요동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내년 최저임금을 24.7% 올리자는 노동계 요구도 물가에는 큰 부담이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중국의 자원무기화 등 외생변수로 발생한 고물가는 불가항력이다. 하지만 여기에 자기 몫을 더 가지려는 ‘그리드(탐욕)플레이션’으로 인플레이션이 심화되면 서민의 고통은 배가 된다. 민생을 안정시켜려면 서민 체감물가부터 잡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