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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기록 없는 ‘유령아동’ 2236명, 반복된 비극 방치한 국가

2015년부터 지난해까지 8년간 출생신고 기록이 없어 생사 여부가 감감한 영·유아가 2236명인 것으로 확인됐다. 감사원이 보건복지부 정기 감사에서 필수예방접종 기록을 토대로 태어났으나 출생신고가 안 된 영·유아를 역추적한 결과다. 감사원이 이 중 약 1%인 23명을 골라 지방자치단체에 실제로 아이들이 무사한지 확인해달라고 했더니 4명 만 생사가 확인됐다. 이 중 수원의 생모는 4, 5년 전 각각 출산한 아기를 살해해 냉장고에 유기했다. 친모가 인터넷으로 접촉한 사람에게 아기를 넘긴 사례도 있다. 샘플 1%조차 아직 조사 확인이 끝나지 않았는데도 이렇다. 국가의 사회복지 시스템에 큰 구멍이 뚫려 있는 것이다.

정부가 미신고 아동 전수조사에 나서겠다고 발표했으나 ‘뒷북’ 책임에서 비켜가기는 어렵다. 무엇보다 각 기관이 아이 정보를 따로따로 갖고 이를 통합적으로 보지 못한 ‘칸막이 행정’이 답답하다. 질병청은 병원에서 태어난 아기의 ‘임시 신생아 번호’ 등이 담긴 B형 간염 등 필수예방접종 자료를 갖고 있고,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각 병원이 분만 진료비를 청구할 때 제출하는 신생아 정보를 갖고 있다. 다양한 출생자료로 출생신고가 됐는지 확인만 했더라도 이런 비극은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영아 살해·유기 사건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영아 살해가 한 달에 한 번꼴로 일어나고, 한 해 평균 127건의 영아 유기가 21세기 대한민국에서 벌어지고 있다. 정치권은 앞다퉈 출생통보제 등 관련법 발의에 나섰지만 모두 잠자고 있다. 출생통보제는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의료기관이 지방자치단체에 영·유아의 출생 사실을 의무적으로 통보하고, 출생신고가 되지 않은 아동이 확인되면 지자체장이 직권으로 가족관계등록부에 기록하는 제도다. 국민 대다수도 찬성하고 있지만 병원들은 비용을 이유로 반대하고 있다. BCG접종처럼 지원금을 주는 것도 방법이지만 출생 사실 통보를 의무이자 사회적 책무로 여기는 게 중요하다. 선진국은 신생아가 태어나면 수일 내에 의료기관이 당국에 출생 사실을 의무 통보한다. 출생신고가 안 된 아기는 방임·학대위험이 크다고 보기 때문이다. 부모만이 1개월 내 출생신고하게 하는 우리 현실에서는 안전사각지대가 생길 수밖에 없다. 그사이 아이를 유기하고, 심지어 목숨을 앗아가는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출생통보제와 함께 여성이 익명으로 의료기관에서 출산할 수 있도록 법적으로 보장하는 출산보호제도 서두르기 바란다. 출생신고도 못하는 아이들이 베이비박스에 버려지고 있다. 아동의 생명권을 지키지 못하는 제도를 속히 손봐야 한다. 국가가 이를 더는 방치해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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