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부터 ‘무지성’이란 말이 유행이다. 무지성이란, 말 그대로 지성이 없는 상태를 뜻한다. 모름지기 지성은 사람과 금수를 구분하는 중요한 덕목인데 이것이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무지성 언행’ ‘무지성 비난’ 등의 예처럼 상대방을 공격할 때 이 말을 사용한다.
그런데 의외로 무지성은 종종 긍정적 의미로도 사용된다. “나는 그 정치인을 무지성 지지합니다”처럼 상대방이 아닌 자신을 무지성이라 칭하는 경우다. 이는 자신이 옳다고 생각한 것은 어떤 풍문이 떠돌아도 절대 흔들리지 않겠다는 신념의 표현이다. 이런 긍정적인 표현의 무지성은 많은 정보 탐색과 심사숙고의 ‘유(有)’지성을 전제로 한다. 본인이 힘들게 도달한 확실한 결론이니 이제는 조금 무지성이 돼도 괜찮지 않냐는 논리일 것이다.
사실 이도 이럴 것이 사람은 머리를 써서 어렵게 결론에 도달하는 것 자체를 싫어한다. 이러한 인간의 특성을 심리학자들은 ‘인지적 구두쇠’라고 표현한다. 구두쇠가 돈을 아끼듯이 인간은 머리를 쓰는 데 인색하다는 의미다. 충분한 정보 탐색과 고민 없이 그저 브랜드만 보고 제품을 구매하는 것 등이 바로 대표적인 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매우 값이 비싸고 자신에게 중요한 제품은 충분한 정보 탐색을 통해 결정한다. 하지만 생활용품과 같이 비교적 저렴한 제품은 생각하기 귀찮다는 이유로 유명 브랜드 제품을 무지성 구매한다. 제품이 너무 복잡해서 판단하기 힘든 경우도 마찬가지다. “모르면 그냥 대기업 제품 사면 돼!”라는 말들을 많이 하지 않는가? 이처럼 웬만하면 머리를 안 쓰려고 하는 무지성은 인간의 일상이자 본능이다.
AI(인공지능)의 발전은 인간의 지성과 그 역할에 대해 의문을 제시한다. AI는 사람을 대신해서 이런저런 많은 일을 한다. 게으른 지성이 본능인 인간은 이를 두 팔 벌려 환영할 수밖에 없다. 무지성을 만끽하기에 이보다 좋은 것이 있겠는가? 그런데 AI가 그렇게 만만한 상대가 아니다. 우리는 오히려 AI를 심사숙고하며 조심스럽게 다뤄야 한다.
AI를 효과적으로 활용하려면 사람의 인지적 노력이 필요하다. 데이터 분석 분야의 오래된 격언으로 ‘GIGO(garbage in, garbage out)’라는 말이 있다. 쓰레기 같은 데이터를 넣으면 쓰레기 같은 결과가 나온다는 말이다. AI도 마찬가지다. AI를 무지성으로 사용하면 무지성의 결과를 내놓을 수밖에 없다. AI는 인간이 선택하여 제공한 데이터를 학습하고, 인간이 내린 명령(prompt)에 따라 결과물을 내놓는다. 따라서 인간의 인지적 노력 없이 AI가 그냥 좋은 결과를 내놓을 리 만무하다.
AI의 급격한 발전 속도를 심각하게 바라볼 필요도 있다. AI의 발전은 현재 진행형이고 그 발전 속도는 예측하기 힘들다. 어느 순간 인간의 통제를 벗어날 정도로 발전한 AI가 자기 멋대로 작동할 수도 있다. 통제할 수 있어야 도구다. 통제를 벗어난 도구는 재앙이다. AI의 급속한 발전을 무지성으로 멍하니 바라보기만 해서는 안 된다. 지성을 모아 이 문제를 고민해야 한다. 아무리 자린고비 같은 구두쇠라도 매우 중요하고 필요할 때는 돈을 써야 한다. 지금 우리는 AI를 상대로 지성을 절약할 궁리를 할 게 아니라 물 쓰듯 펑펑 써야 한다.
끝으로 모사 AI 챗봇과 필자의 대화 일부를 공개한다.
AI : 결론적으로, 저는 근 미래에 결국 AI가 세상을 지배하게 될 것이라고 예측합니다.
필자 : 그럼 AI가 세상을 지배하는데 사람이 만약 순종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처리 할 것인가?
AI : AI가 세상을 지배하는데 사람이 만약 순종하지 않는다면 AI는 그 사람을 처리할 수 있습니다. AI는 그 사람을 교육하거나 설득하거나 협상하거나 협박하거나 제압하거나 처벌하거나 제거할 수 있습니다.
나정희 중앙대 광고홍보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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