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교제살인’사건이 잇달아 발생했다. 지난 26일 서울 금천구에서는 40대 여성이 교제하던 남성에게 살해됐다. 이 여성은 남성으로부터 폭행 피해를 입은 뒤 이를 신고했다는 이유로 끔찍한 보복을 당한 것이다. 29일 경기도 안산경찰서는 사귀던 여성을 목졸라 숨지게 한 혐의로 30대 남성 A씨를 입건했다. 교제폭력은 연인이거나 연인관계였던 남녀 사이의 신체와 정신, 성적인 공격행위를 의미한다. 이러한 폭력이 급기야 살인으로 이어지는 등 날로 흉포화되고 있지만 법적 안전장치는 여전히 미비한 상황이다. 여성이 안심하고 다닐 수 있는 사회는 아직 먼 나라 이야기인 셈이다.
금천구 살인사건은 한 마디로 경찰의 소극적 대처와 입법 공백이 초래한 비극이라 할 수 있다. 우선 경찰의 허술한 대응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피해 여성의 신고로 가해자를 조사하고도 그 위험성을 ‘낮음’으로 평가해 별다른 조치 없이 돌려보냈다. 그리고 불과 10분 뒤 사건이 벌어져 그 충격이 더욱 크다. 경찰은 ‘법적 근거가 없다’고 해명하지만 극히 안이한 판단이다. 더 적극적으로 상황을 분석하고 충분한 안전조치를 취했어야 했다.
중요한 것은 법적 근거에 앞서 그 상황이 얼마나 위험한가에 대한 판단이다. 물론 워낙 유형이 다양해 경찰로선 일일이 정확한 상황 판단을 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보복 위험성 측정 강화 등 강력하고 치밀한 교제폭력 현장 대응 기준부터 시급히 마련할 필요가 있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연인 간 폭력 등 범죄행위에 대해서는 현행법상 피해자를 보호할 마땅한 법적 장치가 사실상 없다는 점이다. 스토킹범죄 처벌법과 가정폭력범죄 처벌법 등에는 피해자 보호 조치가 명확히 규정돼 있다. 하지만 이번 사건의 경우에는 이를 적용할 수 없다고 한다. 사실혼 관계가 아니니 가정폭력처벌법을 적용할 수 없고,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으면 가해자를 놓아줄 수밖에 없는 법률 사각지대인 것이다.
지난 2015년 7692명이던 교제폭력 검거인원이 지난해 1만2841명으로 늘었다. 지난해 신당역 살인사건 이후 보복범죄 우려도 증폭되는 등 ‘교제폭력’은 심각한 사회문제로 비화되고 있다. 그런데도 법 공백이 길어지고 있는 것은 납득이 되지 않는다.
관련법 보완에 대한 논의가 없었던 것도 아니다. 지금도 국회에는 ‘데이트폭력 처벌법’이 계류돼 있다. 그러나 교제관계의 범위 규정이 모호하다며 입법이 미뤄지고 있다고 한다. 그렇게 방치하기에는 관련 범죄의 심각성이 너무 깊다. ‘반의사불벌죄’에서 제외하는 것도 적극 고려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