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서울시는 다시 창의시정 바람이 부는 것 같다. 책을 읽고, 강의를 듣고, 워크숍을 하는 등 창의시정을 위한 여러 노력이 이뤄지고 있다고 한다. 형식주의에 치우치거나 변화를 싫어하는 관료제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시각으로 행정 현상을 보고 해결방안을 찾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10여년 전 오세훈 시장이 추진했던 창의시정의 아쉬운 점이 이번에는 발생하지 않기를 바란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창의시정 자체가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 10여년 전 처음 창의시정 추진 초기에는 많은 공무원이 열과 성을 다해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창의시정 자체가 하나의 일이 돼버렸다. 업무개선 제안과 이를 실천하는 분야로 나누어 평가하다 보니, 자신이 직접 추진해야 하는 업무 관련 창의적 아이디어를 내기보다는 타 부서의 업무에 관련된 내용의 제안이 많아졌다.
나아가 시장이 직접 참여하는 창의시정 발표 행사가 중시되면서 발표 자료나 발표자의 역량이 중요시되는 방향으로 변모함으로써 내용보다는 형식이 중시되기 시작했다. 이러한 현상이 빈번히 발생하면서 공무원들 사이에서는 창의시정이란 가점이나 포상금을 받기 위한 업무의 하나로 인식됨으로써 창의시정을 통한 행정의 근본적인 변화, 시민의 삶의 개선이라는 본질적인 목적이 상실되었다.
또 다른 우려는 창의시정이 하나의 이벤트를 만드는 통로가 되지 않았으면 하는 점이다. 물론 과거에 하지 못했던 대규모 사업을 새로운 관점에서 새로운 기술을 가지고 추진하고자 하는 아이디어가 제안될 수도 있다. 문제는 이렇게 관심을 끌 만한 사업들에만 집중되는 경우 창의시정의 방향성을 상실할 가능성이 커진다. 행정을 경험한 사람으로서 이해하는 창의시정은 행정을 개선하거나 새롭게 접근함으로써 시민에게 더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라고 본다.
이는 시민 삶의 안전성·편리성을 높이거나, 도시의 경쟁력을 높이는 새로운 서비스의 제공이나 시설의 건립 등이 포함될 것이다.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대규모 프로젝트를 추진한 것도 필요하지만 소소하지만, 일상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많은 행정 서비스의 개선도 중요하다는 것이다.
하나 더 제안한다면 창의시정을 위해서는 민간의 소리에 귀를 열고 들어야 한다. 행정이란 시민의 소리를 듣고 해결하는 과정이라고 본다. 잘 듣기 위해서는 귀를 열고, 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경청해야 한다. 민간이 잘못되었다고 지적하는 부분이 있다면 왜 그런 지적을 하는지 돌아봐야 한다. 과거와 똑같은 방식으로 해왔기에 문제가 없는데 ‘왜 지적하느냐’가 아니라 정말 문제가 없는지 잘 살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문제의 지적이 옳은 방향이라면 과감히 바꾸어 나가는 자세가 창의시정의 시작일 것이다.
10여년 전 아직도 기억에 남는 내용 중의 하나가 히말라야 정상 등정과 같은 원대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베이스캠프를 좀 더 높은 곳에 세워야 한다고 강조한 것이다. 그런데 진행된 창의시정 과정을 보면 베이스캠프를 높은 곳에 세우는 것도 필요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튼튼한 베이스캠프를 세우는 것이다. 그래야만 웬만한 눈보라에도 버틸 수 있고 좀 더 지속 가능하기 때문이다.
고홍석 서울시립대 국제도시과학대학원 출강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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