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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옵션쇼크·DLF·CFD…탐욕·배신·기만의 파생상품 [홍길용의 화식열전]
2010년 도이치·2019년 사모펀드 사태 이어
한국SG, 8종목 기습 매도에 증시 ‘빚투 경보’
위험관리 금융기법 투기수단 활용 사례 지속
거래상대·가격구조 이해 없는 투자 삼가해야

옵션 만기일 이던 2010년 11월 11일 14시 31분. 선물과 연계된 현물 프로그램 매도물량이 나오기 시작했다는 소식이 증시에 전해졌다. 다행히 매도 물량은 시장에서 무리없이 소화됐다. 코스피도 보합세를 보였다. 14시 57분. 마감 동시호가를 앞둔 시점에 외국계 창구에서 풋옵션 대량매수, 콜옵션 대량청산으로 프로그램 매도물량이 쏟아져 나왔다. 도이치증권 창구에서만 무려 2조3000억원, 현대증권과 대우증권서도 3000억원의 주문이 폭주했다. 장 마감 직전인 14시 59분 55초에 코스피는 전일대비 50포인트 이상 급락했고 1914.73으로 거래를 마친다. 시장은 망연자실 했지만 아주 일부는 환호했다. 코스피200이 폭락하면 큰 수익이 나는 풋옵션을 매수한 이들이다.

이후 금융감독원 조사에서 당시 코스피 급락은 도이치증권이 실적을 노리고 의도적으로 만든 포지션의 결과로 드러났다. 풋옵션을 매수해 놓고 자신들이 보유한 증권을 무더기로 팔아 지수 하락을 유발한 것이다. 검찰은 당시 한국도이치증권과 관계자들을 자본시장법 위반으로 기소했지만 2심에서 무죄 판결이 나왔다. 3심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2019년 8월 선진국 국채 금리는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었다. 당시 국내 은행들은 영국과 독일의 국채 금리가 크게 하락하지 않으면 수익이 나는 파생결합펀드(DLF)를 잔뜩 판 상태였다. 9월 18일 독일 국채 금리가 하락하며 이에 기초한 DLF 등 관련 상품들이 대규모 손실을 내기 시작한다. 이른바 사모펀드 사태의 시작이다.

해당 DLF가 한참 팔리던 2019년 1분기말부터 주요 선진국 국채 금리는 이미 유례없는 하락 국면이었다. 세계적으로 무려 16조 달러의 국채가 마이너스 영역에 진입했다는 외신 기사까지 여러차례 보도됐다. 금융을 조금이라도 이해한다면 선진국 국채금리 추가 하락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시나리오였다. 대규모 원금손실 위험에 대비할 필요가 있었다는 뜻이다.

당시 국내에서 팔린 금리연계 DLS, DLF는 옵션 매도 포지션이었다. 상품가입자가 권리 가격을 수취한 대가로 금리하락의 위험을 떠안게 된다. 금리 하락의 위험을 떠넘긴 상대방이 있다는 뜻이다. 수익이 나면 기껏 연 3~4%지만 손실이 나면 원금 전체를 날릴 수 있는 투자자에 철저히 불리한 구조였다. 프랑스의 S사를 비롯한 글로벌 투자은행(IB)들이 한국에 옵션 매도 상품을 설계해주면서 반대편에 선 글로벌 기관투자자들에게는 옵션 매수 포지션을 구축할 수 있었다. 기대수익보다 위험부담이 큰 포지션은 한국에 넘기고, 단골 고객들은 위험부담은 적고 기대수익은 큰 쪽에 세워둔 것이다. 글로벌 IB와 큰 손 고객은 한국의 은행들의 노고 덕분에 돈도 벌고 위험도 헤지(hedge)할 수 있었다.

지난 24일 프랑스 IB 소시에떼제네랄(SG)의 한국법인 한국SG증권에서 8개 종목에 대한 대규모 매도 주문이 나온다. 이후 주가가 연일 폭락하며 증시의 미스터리가 됐다. 이런 저런 추정이 나오고 있지만 아직 정확한 원인은 드러나지 않고 있다. 한가지 확실한 것은 한국SG증권에서 매도 주문을 실행했고, 덕분에 해당 매도 물량 소유주는 이번 주가 폭락 국면에서 그나마 먼저 탈출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방아쇠를 먼저 당긴 쪽이 이번 사태로 가장 큰 이익을 봤다는 뜻이다. 동기 없는 행동은 없다. 원인이 모호할 때는 누가 가장 큰 이익을 봤는지 따져야 한다.

폭락한 8개 종목 주가 흐름을 보면 최근 상당기간 기관과 외국인 매수세에 힘입어 오름세가 계속되다 4월 중순 이후 하락 반전의 조짐을 보인다. 지난 4월 10일 다올투자증권, 세방, 다우데이터, 선광 등 3종목에서 한국증권금융의 주식대량보유 공시가 나온다. 3월말로 신용융자를 제공하고 담보로 잡은 주식이 발행주식의 5%가 넘어 이 사실을 알린 것이다. 8종목 가운데 무려 5종목에서 한국증권금융이 같은 이유로 5% 이상 주주로 신고돼 있다. 그만큼 돈을 빌려 해당 주식에 투자하는 이들이 많다는 뜻이다. 빚투가 많으면 주가 하락시 반대매매 등으로 단숨에 낙폭이 커질 수도 있다. 이들 종목에 매수 포지션을 가지고 있는 투자자라면 심각한 고민을 할 만한 재료다.

이번 8개 종목은 외국인 투자비중이 높지 않은 종목이다. 한국SG증권은 일반인에게 낯선 회사다. 외국계 증권사는 주로 파생상품 거래와 관련이 깊다. 일부 고액 자산가들이 연관된 차액정산거래(contract for difference)가 8개 종목의 주가 폭락과 관련이 깊을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CFD는 투자자산이나 투자전문지식이 일정 규모와 수준을 넘어서야 투자할 수 있는 기법이다. 라임펀드 사태 등에서 활용된 총수익맞교환(TRS) 방식의 한 가지로 실제 소유자와 매매 주체가 다르다는 점 때문에 해당 종목의 수급 정보를 교란시키는 특성이 있다. 개인 투자가 기관이나 외국인 투자로 포장돼 일반 투자자들의 투자판단에 착각을 야기할 수 있다는 뜻이다.

문제가 된 8종목의 수급을 보면 기관과 외국인이 거래량 증가와 주가 상승을 주도한 것으로 나타난다. 개인투자자 입장에서는 투자전문집단이 사는 종목이니 따라 사도 괜찮다는 생각을 가질 수 있다. 남의 뒤만 따르다보면 다가오는 절벽이 잘 보이지 않는 법이다.

CFD는 차입투자가 가능하다. 증거금이 훼손되면 추가적립 요구(margin call)이 이뤄지거나 반대매매가 실행된다. 한국SG증권을 통한 대규모 매도 이전에 8종목에서는 주가 급락이 없었다. 반대매매가 이번 사태의 출발일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오히려 CFD로 매수포지션을 구축한 투자자들이 차익실현을 결정하고 중개회사(broker)와 시장조성자(market maker)가 이에 응하기 위해 매도포지션을 실행했다는 추론이 오히려 가능해 보인다. 마침 이들 8종목은 신용융자 비율이 높았다. 한국SG발 매도가 주가 급락 방아쇠를 당기자 다른 투자자들의 이탈로 이어졌고 주가 급락이 ‘빚투’ 자금의 반대매매로 이어진 과정으로 이해할 만하다.

거품과 급등락, 시세조종 등을 통한 비윤리적인 이익추구 시도는 늘 시장에 존재해왔다. 최근에는 그 과정에서 파생금융상품이 중요한 도구로 활용되고 있다. 파생금융상품은 애초 위험관리가 목적이다. 자산의 극히 일부만 배분해도 전체 포트폴리오의 위험을 상당부분 줄일 수 있다. 그 때문에 파생상품은 고위험고수익의 특징을 갖는다. 파생상품투자 자체를 목적으로 한다면 투자 보다는 투기(speculation)가 될 가능성이 아주 높다. 파생상품을 통한 투자가 다수 유입된 자산에 각별이 유의해야하는 이유다. 사실 최근 문제가 된 전세 대란도 전세 보증금과 대출이 갭(gap) 투자라는 일종의 파생투자에 광범위하게 활용되면서 촉발됐다.

하이먼 민스키(Hyman Minsky)가 정리한 ‘거품의 구조’를 보면 가장 위험한 투자시기는 ‘열광’과 ‘탐욕’으로 만들어지는 3단계다.

가격상승에 편승하기 위해 ‘빚투’ 등의 무리한 투자가 이뤄지기 쉽다. 초임기 튤립 투자에서 성공을 거둔 아이작 뉴턴이 결국 낭패로 끝난 더 큰 규모의 두 번째 투자를 단행한 단계도 이 때다.

최근 2차 전지 등 일부 테마주에 개인투자자금이 몰리면서 주가가 급등했다. 미처 투자하지 못한 이들이 아쉬워할 만하다. 하지 만 3단계에투자를 시작하면 수익 기회는 적고 폭락 위험은 크다. 공포와 포기 단계에서는 팔고 싶어도 팔기 어렵게 된다. 최근 증시 반등은 지난 해 부진을 만회하고 싶은 마음을 부추길 만하다. 하지만 주변을 둘러보자. 경제 상황이 어렵다. 힘든 것을 넘어 난이도가 아주 높다. 열정을 키우기 보다는 탐욕을 경계할 때다.

kyho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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