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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팀장시각] 정치 위에 법이 선 ‘정치실종’ 시대

지난 3월 헌법재판소는 소위 검수완박법에 대해 유효하다고 결정했다. 동시에 국회 심의 및 처리 과정에서 심각한 하자가 있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이미 만들어진 법을 절차상 하자를 이유로 되돌리면 그 부작용 또한 적지 않으니 현실적으로 법의 유효함은 인정한다는 의미다. 힘으로 밀어붙이는 검수완박 같은 정치를 다시는 되풀이하지 말라는 꾸짓음도 담은 셈이다.

법은 최소한의 도덕이다. 함께 살아가면서 서로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지켜야 할 여러가지 명제 중 꼭 지켜야 할 것들이라고 합의하에 모아 만든 게 법이다. 그래서 대다수 법에는 어겼을 경우 처벌의 방법과 정도가 함께 들어 있다. 반면 정치는 국가권력을 획득하고 유지, 행사하는 활동이다. 이 과정에서 정치는 사람과 사람 사이 갈등을 해결하고 사회질서를 바로잡아야 한다. 정치의 주요 내용으로 법을 만드는 일이 들어간 것도 이런 정의에 따른 것이다.

최근 정치가 법에 기대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법을 만드는 정치 과정에서 발생한 크고 작은 갈등의 해결을 사법적 판단에 의존하는 모습이다. 개인과 개인, 집단과 집단 사이 갈등을 해결하고 질서를 잡기 위해 법을 만드는 사람들이 정작 자신들의 갈등은 해결하지 못하고 오히려 법에 의존하는 아이러니다. 법을 만드는 정치인들이 법에 의존해 문제를 해결하는 게 뭐가 문제인지 반문할 수도 있다. 법을 만든 정치가 법의 결정에 따르는 것은 오히려 당연한 일이라는 말이다. 하지만 법에만 의존하는 정치는 정치 스스로의 존재 이유를 축소하고 나아가 부정할 뿐이다. 자신들이 만든 법을 놓고 제멋대로 해석하며 갈등을 키우고 결국 법원과 사법기관에 최종 판단을 맞긴다면 누가 그런 정치인들이 만든 법과 갈등조정안을 신뢰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앞서 언급한 검수완박법이 결국 정권교체와 함께 사실상 무력화된 것도 이런 까닭이다.

문제는 앞으로도 이 같은 ‘사법에 떠넘기는 정치’, 즉 정치는 사라지고 법만 남는 일이 반복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상대 정파 정치인의 말실수, 행동 하나하나를 문제 삼으며 고소·고발을 전문적으로 하는 유튜버와 정치인이 활개치고, 죄를 진 정치인들이 서초동 검찰청과 법원을 들락날락 해야만 하는 일이 반복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최근에도 “고작 차비·밥값에도 못 미치는 축의금 같은 돈을 가지고 수사를 하냐”고 억울해하지만 정작 상대 당의 더 작은 허물에는 더 큰 목소리로 날뛰었던 과거가 있기에 이런 항변은 먹히지 않는다. 정치로 풀어야 했을 일을 상대방을 확실하게 제압하기 위해 또는 갈등조정이 힘들다는 이유로 사법 영역으로 끌고가곤 했던 못된 습관이 부른 자승자박인 셈이다.

1987년 6공화국 헌법 개헌 이후 민주정치가 자리 잡은 지도 35년 가까이 흘렀다. 이제는 아시아에서 최고, 세계적으로도 몇 손가락 안에 꼽힐 만큼 민주적인 정치가 안착된 나라가 됐다. 하지만 정치를 바라보는 국민의 시선은 여전히 불만스럽고 불안한 것도 사실이다. 갈등을 풀어야 할 정치가 되레 갈등을 만들고, 해결은 사법기관에 떠넘기는 일이 비일비재했기 때문이다. 다가오는 총선에서 정치발전이나 선진화를 외치며 표를 받고 싶다면 사법에 의존하는 정치습관부터 스스로 벗어던지는 게 먼저다.

choijh@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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