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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자연의 현장에서] 전세사기의 비극...그들은 잘못이 없다

사흘 새 전세사기 피해자 두 명이 세상을 등졌다. 지난 2월 말 사망한 피해자까지 포함하면 벌써 인천에서만 세 명이 전세사기를 당해 극단적 선택을 했다. 사망한 피해자들은 모두 20~30대 청년이다. 아직 사회에 나온 지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은 이들에게 7000만원에서 9000만원 상당의 보증금은 한 마디로 삶의 전부였을 것이다. 물적 손해만큼이나 한순간 사라진 보금자리로 인한 심리적 충격까지 생각하면 그들이 느낀 고통이 얼마나 컸을지 가늠할 수 없다. 사건은 인천지역에 2700여채의 빌라와 아파트 등을 보유한 일명 ‘미추홀구 건축왕’ 남모 씨에게서 촉발했다. 그는 현재 구속 기소됐지만 그가 남긴 피해는 현재 진행형이다.

정부는 지난해 다수의 계획적인 전세사기 사건이 발생 직후 국토교통부와 법무부를 중심으로 ‘전세사기 피해 임차인 법률 지원 합동 태스크포스(TF)’를 발족해 긴급 대응에 나섰다. 현재 전세피해지원센터를 현재 운영하고 있지만 곳곳에서 한계를 노출하고 있다. 긴급지원주택의 경우 인천시가 한국토지주택공사(LH) 인천도시공사(IH)와 협력해 총 238가구를 확보했으나 입주 문턱이 높아 실질적 입주가 어려운 상황이다. 자신이 살던 집이 경매로 낙찰되거나 퇴거 명령을 받을 경우에만 입주가 가능해서다. 이로 인해 238가구 중 전세사기 피해자들이 입주한 세대는 17일 기준 8가구(3.36%)에 불과하다.

잇따른 전세사기 피해자 사망 소식에 국토부는 지난 17일 긴급 회의를 열고 ▷대환대출 시행 ▷전세사기 피해 확인 절차 개선 ▷피해확인서 유효기간 및 발급기간 확대 ▷긴급 주거 지원 보증금 분납 절차 도입 등을 추가 대책으로 내놨다.

하지만 전세사기피해대책위원회는 유관부서 대책이 실효성이 없다며 경매 중지, 피해보증금 선반환 등을 요구하고 있다.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 등이 인천 미추홀구 전세사기 피해 주택에 대한 경매 매각기일 변경을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으나 이 역시 시간만 뒤로 미룬 일시적인 조치에 불과하다.

문제는 잠재된 피해자가 상당수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한마디로 시한폭탄이다. 근본적인 보완 대책이 필요한 이유다. 대한민국 법원 등기정보광장에 따르면 지난달 신청된 임차권등기명령 건수는 3484건이다. 1년 전(851건)과 비교하면 4배나 가량 증가한 수치로, 역대 가장 많다. 전세 보증금을 받지 못해 법원에 가는 세입자들이 갈수록 늘고 있다는 방증이다. 특히 지난달 임차권등기 명령은 서울과 경기도 등 수도권에서 큰 폭으로 늘었다. 서울의 경우 2월 802건에서 지난달 1083건으로 280여건이 늘었고, 경기도 역시 같은 기간 747건에서 1039건으로 300건 가까이 증가했다.

그간의 대책이 실효성이 없었다면 하루빨리 다른 방법을 고민해 피해자들을 보호할 조치를 취해야 한다. 고통의 나날을 보내고 있는 전세사기 피해자들을 조금이나마 구제하고 위로할 수 있는 방법은 정부의 빠르고 적극적인 대처뿐이다.

nature68@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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