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미래차시장의 글로벌 주도권을 쥐기 위해 박차를 가하는 모습이다. 뉴욕타임스와 로이터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미국 환경보호청(EPA)이 오는 12일 내연기관 자동차에 대한 탄소배출 규제안을 발표할 예정이라고 한다. 지난해 신차 기준 5.8%에 불과한 미국 내 전기차 판매 비중을 2032년에 67%까지 확대하겠다는 내용이다. 앞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2021년 행정명령을 통해 2030년 전기차 판매량을 신차의 50%로 올리겠다고 발표한 바 있는데 이를 크게 높인 것이다. 10년 뒤 신차 3대 중 2대는 전기차가 된다는 의미다. 지난달 유럽이 2035년 내연기관차 퇴출을 선언하자 대응 강도를 높였다는 분석이다.
지난해 미국에서는 자동차 총 1380만대가 팔렸다. 이 중 전기차는 약 81만대(5.8%)에 그쳤다. 2032년 미국 자동차시장 판매 대수를 지난해와 동일한 수준으로 가정하면 미국 정부 계획이 실현될 경우 전기차 판매량은 약 920만대에 이른다. 전기차 신차시장이 지금보다 10배 이상 커지는 셈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미국 온실가스 배출량을 2030년까지 절반으로 감축시키겠다고 공약한 바 있는데 전기차 효과로 온실가스 감축과 미래차시장 선점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겠다는 포석을 깐 것이다.
미국의 전기차 로드맵은 충전소 네트워크 구축, 막대한 설비투자, 일자리 급감 등 넘어야 할 난관이 많지만 내연기관차에서 미래차로의 모빌리티 대변혁은 거스를 수 없는 거대한 흐름이라는 점은 명확하다. 우리 자동차업계는 미국이 주도할 모빌리티 대변혁의 물결에 올라타 경쟁국보다 더 빠르고 더 멀리 갈 수 있도록 지금부터 착실히 준비해야 한다. 현대자동차그룹의 지난해 자동차 판매량은 세계 3위였지만 미국에서 순수전기차 판매는 5만8028대(3.9%)에 머물렀다. 올 1분기 현대차·기아의 글로벌 점유율은 6%(세계 7위)로, 선두권 기업들과 격차가 크다. 경쟁 기업들이 한 발 뛸 때 우리는 두 발, 세 발 뛰어야 따라잡을 수 있다. 내년 10월 완공 예정인 미국 조지아 공장 등 시설투자와 미래 기술 확보에 사활을 걸어야 한다. LG에너지솔루션, SK온, 삼성SDI 등 국내 배터리 3사가 미국시장에서 우월한 입지를 공고히 하고 있는 점은 우리 완성차업계에 천군만마다. 실과 바늘처럼 긴밀히 연대한다면 제2의 반도체 신화를 쓸 수 있을 것이다.
반도체, 전기차 배터리 등 경제안보와 직결돼 있는 부문은 국가대항전이 된 지 오래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 반도체특별법을 여야 합의로 통과시킨 것은 고무적이다. 우리의 전략산업들이 패러다임 급변의 시기에 승자로 우뚝 설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뒷받침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