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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정파적 이해만 난무하는 정치권의 ‘4·3사건’ 바라보기

75주년을 맞은 ‘제주 4·3 사건’ 추념식을 지켜보는 마음이 착잡하다. 추념식은 희생자 추모와 유가족을 위로하고 비극적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다짐하는 자리다. 하지만 올해 행사도 예외 없이 정파적 이해에 매몰된 여야 간 정쟁의 장으로 얼룩지고 말았다. 정치인들이 대거 참석했으나 겉으로만 추모를 앞세웠지, 서로를 헐뜯고 비난하기 바빴다는 인상이 짙다.

올해는 그 정도가 더 심한 듯하다. 먼저 지적돼야 할 것은 4·3 사건을 바라보는 여당의 인식이다. 특히 국민의힘 태영호 최고위원의 관련 발언은 많은 국민을 불편하게 한다. 태 최고위원은 3일 최고위원회에서 “4·3 사건이 ‘김일성의 지시’로 촉발됐다”는 과거 자신의 발언에 대해 “무엇을 사과해야 되느냐”고 말했다. 북한의 사주에 의한 ‘빨갱이’들의 폭동이라는 주장을 굽히지 않은 것이다. 물론 개인적으로 얼마든지 그런 생각을 할 수는 있다. 그렇다면 그의 발언은 ‘개인의 견해’라고 국민의힘이 공식적으로 밝혀야 했다. 하지만 국민의힘의 내부 견제 기능은 전혀 작동하지 않았다. 당대표 등 핵심 지도부가 추념식에 대부분 불참한 것도 유감이다.

이재명 대표 등 당 지도부가 총출동한 더불어민주당도 큰 틀에서는 다를 게 없다. 이 대표는 제주 현장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정부·여당의 극우적인 행태가 ‘4·3 정신’을 모독하고 있다”며 여당을 맹렬하게 비판했다. 또 윤석열 대통령의 불참을 비난하며 “4·3의 완전한 해결이라던 대통령의 약속은 부도났다”는 말도 했다. 윤 대통령이 참석하지 않은 것은 아쉬운 일이다. 하지만 민주당이 ‘정권 심판’까지 들먹이는 것은 적절치 않다.

제주 4·3 사건만큼 보는 시각에 따라 극단적인 평가를 하게 되는 경우도 드물 것이다. 우파 입장에선 ‘빨갱이들의 무장폭력’이고, 좌파의 관점에서는 ‘독재 권력이 자행한 민중학살’이다. 사건의 본질은 간결하다. 강경 좌파가 남한 우파 단독정부 구성에 반대해 폭동을 일으켰고, 미 군정과 우파세력이 초강경 대응으로 맞서는 과정에서 무고한 양민이 희생된 사건이다. 해방 직후 격변기에 발생한 우리 현대사의 최대 비극이다. 더욱이 아무 잘못도 없이 희생된 양민의 후손이 여전히 ‘빨갱이’ 딱지에 짓눌려 숨을 죽인 채 살아왔다. 그 아픔은 지금도 아물지 않았다는 의미다. 그래서 제주 사람들은 ‘4·3’을 아예 입에 올리려 하지 않는다고 한다.

정작 정치권이 해야 할 일은 이들의 아픔을 보듬고 통합과 화합의 기치를 올리는 것이다. 그런데도 이를 상대 흠집내기의 기회로 삼으려 드니 개탄스러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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