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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K칩스법 국회 통과, 美 반도체 갑질 대응도 초당적으로

국회가 30일 반도체·2차전지 등 6대 국가전략기술 분야에 대해 대기업 설비투자 세액공제율을 8%에서 15%로 높인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K칩스법)’을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 지난해 말 세액공제율을 찔끔 올려 처리했다가 윤석열 대통령 지시로 법안을 다시 올리는 혼선을 겪은 탓에 3개월이 더 소요됐다. 직전 3년간 연평균 투자금액 대비 투자증가분에 대해서는 올해에 한해 10%의 추가 공제 혜택도 주어진다. ‘졸면 죽는’ 첨단산업 글로벌 경쟁에서 이제라도 대만, 일본 등 경쟁국에 비해 불리한 투자환경을 바로잡아 다시 뛸 수 있는 토대를 만든 것은 다행이다.

미국 의회는 지난해 8월 미국 내 반도체 생산시설투자에 390억달러 등 5년간 527억달러(약 69조원)의 보조금을 지급하는 반도체과학법을 통과시켰다. 과거 반도체 강국이었던 일본도 미-중 갈등으로 촉발된 공급망 재편을 기회로 삼고자 글로벌 기업 유치에 나섰다. 일본 정부는 지난해 추경예산으로 7740억엔(약 7조5000억원)을 편성하고 대만 TSMC가 일본 내 처음으로 짓는 구마모토 생산시설에 공장 건설비용의 약 40%인 4760억엔을 지원하기로 했다. 우리가 투자환경 개선에 나섰다고는 하지만 경쟁국들의 파격적 움직임을 쫓아가려면 아직 갈 길이 멀다. 국내 기업뿐만 아니라 세계적 투자를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규제 완화에 더 과감해야 한다.

애초 ‘재벌 특혜’ ‘부자 감세’라는 논리로 K칩스법을 반대했던 더불어민주당이 용기 있는 선회를 한 것은 반도체 지원금을 당근으로 과도하고 황당한 요구를 하고 있는 미국의 고압적 태도와 무관치 않다. 미국 상무부가 최근 공개한 반도체지원법 보조금 신청 절차 세부 지침은 우리 기업들을 아연실색하게 했다. 수율(정상품 비율), 웨이퍼(반도체 원재료) 생산능력, 핵심 소재, 판매가격 증감 등을 엑셀파일로 제출하라고 요구했다. 모두 영업기밀사항이다. 경쟁 상대인 미국 마이크론에 이런 기밀이 들어가면 한국 기업 경쟁력이 심대한 타격을 입게 된다. 미국은 앞서 우리 기업의 초과이익을 환수하겠다고 했는데 이를 실행키 위한 사전 포석으로 보인다. 국익과 경제안보 사수에는 여야가 있을 수 없다. K칩스법 통과로 모처럼 협치를 보여준 여야가 초당적 대처로 미국의 갑질에 맞서야 한다.

“차라리 보조금을 안 받는 게 낫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우리 업계는 격앙돼 있지만 1980년대 반도체 패권을 차지했던 일본이 미국과 마찰로 무너졌던 과거를 떠올리면 감정으로 대응할 일이 아니다. 4월 미국을 국빈방문하는 윤석열 대통령은 물론 우리 국회가 원팀이 돼 미 정부와 의회를 대상으로 동맹국에 대한 우호적 배려를 설득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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