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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외압으로 왜곡된 물가, 필연적인 시장의 역습

정부가 물가 잡기에 강공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식품에서 시작해 금융, 통신에 이어 정유, 항공, 주류까지 전방위적이다. 관리당국 수장의 가격인상 자제 요구는 공공연하고 현장조사 엄포까지 이어진다. 주류업계는 즉각 출고가 인상을 보류했다.

물가안정을 위한 정부의 노력을 비난할 수는 없다. 치솟는 물가를 보고만 있어서도 안 된다. 그건 정부의 의무이기도 하다. 전례가 없는 것도 아니다. 1980년대까지 기획재정부의 전신인 경제기획원에 물가국이 따로 있을 정도였다. 이명박 정부도 초기엔 물가 잡기가 경제의 최우선과제였다.

문제는 과도하다 싶을 정도라는 점이다. 물가안정을 위해 기업들도 고통을 분담하라는 요구를 넘어서는 수준이다. 결과는 자명하다. 외부 압력으로 인한 물가의 왜곡이다. 그건 필연적으로 시장의 역습을 불러온다. 모든 역사가 그걸 증명한다. 심지어 현재도 진행 중이다. 가장 간단하게 나타나는 게 ‘용수철 가격’이다. 억누른 이상으로 결국엔 더 튀어오른다. 지난 2년간 두세 배씩 오른 원유와 가스 등 에너지 원자재 상승분을 원가에 반영시키지 않은 결과가 오늘날 부채왕국 한전과 가스공사를 만들었다. 지난해 한전은 32조원 넘는 적자를 기록했고, 가스공사의 미수금은 8조원을 웃돈다. 이로 인해 새로 생긴 부채 이자만 2조원 이상이다.

미뤄뒀지만 결국 올리지 않을 도리가 없다. 오히려 인상 압력만 더 커졌다. 난방비 폭탄에 비명을 지르면서도 에너지 소비의 가격 탄력성은 별로 나타나지 않는다. 따뜻한 봄날이 오기만을 기다리는 처지다.

가격 이외에 나타나는 시장의 역습은 더 무섭고 광범위하다. 일자리와 기업의 경쟁력을 갉아먹기 때문이다. 정유사의 폭리를 막겠다며 만들어진 게 알뜰주유소다. 10년이 넘었지만 기름값 거품 제거 효과는 오리무중이다. 가격인하 효과는 셀프 주유 확대로 인한 게 대부분이다. 대신 문 닫는 주유소와 일자리를 잃은 노동자가 1만명을 넘는다. 연쇄적인 제품가격 인상으로 호된 비난을 받았지만 식품업계의 지난해 영업이익률은 대부분 반 토막 났다. 매출만 늘었지, 1000원어치 물건을 팔아 20원 남기는 게 현실이다.

물론 시장이 실패할 수도 있다. 항상 옳은 건 아니다. 그렇다 해도 가장 자정 작용이 강한 것도 시장이다. 기업은 소비자를 이길 수 없다. 수요와 공급에 따를 뿐이다. 그게 시장경제 아닌가.

정부는 시장이 공정한 룰대로 돌아가도록 하는 심판이지, 개입해서 뛰는 선수가 아니다. 역할도 거기에 한정돼야 한다. 담합을 막고 경쟁을 유도하는 건 당연한 책무지만 시장가격까지 정해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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