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이어지는 아픈 역사
비탈리 킴 미콜라이우 총사령관
러시아군 총공세 막으며 맹활약
알렉세이 킴 러시아 부사령관
군 수뇌부로 전투 진두지휘
비탈리 킴 우크라이나 미콜라이우 지역총사령관 [AFP] |
알렉세이 킴(사진 오른쪽) 러시아군 합동사령부 부사령관 [주러 방글라데시대사관 트위터 캡처] |
중앙아시아 키르기스스탄 고려인 사업가이자 나의 오랜 벗 스베틀라나 리 선생 덕에 우크라이나 남서부지역 전략요충지 미콜라이우주지사 겸 현지 지역총사령관인 고려인 동포 비탈리 킴이 헤럴드경제에 단독 인터뷰 기사로 다뤄질 수 있었다. 〈본지 2월 15일자 1·3면 참조〉
보도가 나온 이후 그녀는 “이분도 우리 고려사람이에요”라며 불쑥 나에게 한 마디 던지고는 러시아어로 된 자료 사진 한 장을 보내줬다. 사진 속 인물은 현재 러시아 연방군 참모차장이며, 동시에 우크라이나에 진주하며 최전선에서 러시아군을 지휘하는 러시아군 합동사령부 부사령관 알렉세이 킴 장군이었다. 우리 고려인 동포 가운데 군인으로는 가장 고위직에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몇 해 전에 러시아 고려인 동포 신문에 소개된 바도 있다.
알렉세이 킴 장군은 야전에서 잔뼈가 굵은, 전형적인 군인이다. 러시아가 참전한 국내외 모든 전투 현장에는 항상 그가 있었다. 수차례 부상도 입었다. 1979년 구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 전투 참전에서부터 소련 붕괴 후 러시아의 타지키스탄 내전, 1994년 체첸자치공화국 독립전쟁 진압작전, 시리아분쟁 러시아 참전, 아제르바이잔과 아르메니아 전쟁 시 평화유지군 활동 그리고 우크라이나 전쟁 참전 등이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지난달 그를 육군참모차장 겸 우크라이나 주둔군사령부 부사령관에 임명했다.
한편 우크라이나 측 비탈리 킴은 러시아군과 치열한 공방전이 벌어지고 있는 크림반도와 항구도시 오데사를 잇는 중간지대 요충지 미콜라이우지역을 책임지는 현지 총사령관으로서 개전 초기에 러시아군 공세를 막아내며 맹활약을 하고 있다. 고려인 4세이며 우크라니아 차세대 정치지도자 가운데 한 명이다. 지난해 주청사 건물이 러시아군의 기습적인 로켓 공격으로 무너져 완파됐을 때 죽을 고비를 넘긴 바도 있다. 이런 그의 공로를 인정받아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으로부터 영웅훈장을 받았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와중에 우리 고려인 동포가 한쪽은 우크라이나 측 최전선에서 공격을 막아내고 있고, 다른 한쪽은 러시아군 수뇌부로서 전쟁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같은 동포끼리 맞서 싸우는 꼴이다. 더구나 같은 김씨끼리의 ‘맞짱 대결’이란 점에서 하늘의 농간치고는 너무 심한 일인 듯하다.
24일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1년을 맞은 가운데 지난달 우크라이나 동부전선 최대 격전지였던 바흐무트지역에 우크라이나 국기를 꽂은 탱크가 서 있다. [로이터] |
러시아 연해주에 거주하는 우리 고려인 동포의 운명은 기구했다. 수난의 역사이자 유랑(디아스포라)의 역사였다.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고려인 동포의 러시아 연해주 이주는 1850~1860년 사이 함경도 출신 13가구가 대기근과 탐관오리들의 착취를 견디지 못한 나머지 두만강을 건너 러시아령 하산 땅에 집단 이주를 하면서 시작됐다는 게 정설이다.
일제의 한일 합병으로 나라를 잃자 새로운 경작지를 찾아 조선인들이 두만강을 건너 대거 이주하게 됐다. 이 가운데는 이동휘 선생 등 독립운동을 위해 이주한 분도 있었다. 1937년 소련 독재자 스탈린이 고려인들을 중앙아시아에 강제 이주시키기 전, 가장 많이 거주했을 때는 무려 20여만명이 연해주에 거주했다고 한다. 고려인 가운데 1917년 러시아에서 볼셰비키공산혁명이 일어나자 지주 출신의 러시아인에 대한 반발로 볼셰비키 적군파 파르티잔 활동에 가담한 자들도 적지 않았다. 박 이리야 씨와 김경천 장군이 대표적인 인물이다.
강제 이주를 당한 고려인 동포는 중앙아시아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 등지로 뿔뿔이 흩어진 채 집단 농장에서 생존을 위해 치열하게 살았다. 이 지역 강제 이주 민족으로는 고려인 동포뿐만 아니라 우크라이나인, 독일인, 체첸인, 타타르인, 유대인 등도 있었다. 이곳에서 우리 고려인 동포는 농업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근면함을 인정을 받아 ‘노력 영웅’들이 많이 탄생했다.
가까스로 중앙아시아에 뿌리를 내리고 살게 됐나 싶었는데 1991년 12월 돌연 소련이 붕괴, 해체됐다. 고려인 동포는 자신들이 그동안 애써 쌓아놓았던 삶의 터전을 일시에 잃어버렸다. 이 지역들이 독립하게 되면서 배타적 민족주의가 기승을 발휘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우리 동포는 러시아로, 우크라이나로, 일부는 다시 연해주로 디아스포라의 고난의 행군을 시작해야만 했다.
구소련 CIS(독립국가연합) 국가들에 분포하는 고려인 동포 숫자는 대략 55만여명으로 추산된다. 이 가운데 한국에 들어와서 살고 있는 고려인 동포는 대략 9만5000여명으로 집계되고 있다. 이들은 주로 경기도 안산의 뗏골마을, 인천 연수구 함박마을, 광주광역시 월곡동 등지에 모여 살고 있다. 스탈린이 모국어 사용을 금지시켰기 때문에 우리 고려인 동포는 한국어 구사 능력이 떨어진다. 한국 생활 적응에 애를 먹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상대적으로 좋은 직장을 얻는 기회가 중국 동포에 비해 적다. 그래서 적응을 못하고 원래 살았던 곳으로 되돌아가는 경우도 종종 있다.
우리 고려인 동포가 한국 정부에 가장 바라는 것 가운데 하나가 비자면제제도다. 내 할아버지, 할머니 땅에 들어와서 살겠다는데 외국인 취급을 하기 때문이다. 고려인 동포가 조상의 잘못으로 나라를 잃고 지금도 이 나라 저 나라 떠돌이생활을 하게 된 궁극적 책임은 우리에게 있다. 이 문제는 시혜가 아니라 의무다. 이분들에 대한 비자제도는 우리 대한민국 헌법정신에서도 맞지 않는다. 이제 고려인 동포의 디아스포라에 마침표를 찍어줘야 할 때다.
이번 고려인 동포 러시아군 장군 알렉세이 킴과 우크라이나 사령관 비탈리 킴이 각자 갈라선 생존방정식을 지켜보면서 독립운동가 고(故) 장준하 선생이 생전에 한 말이 떠오른다.
“못난 조상이 되지 말자.”
장준영 헤럴드 고문 / 전 한국항공대 국제협력고문 겸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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